선림고경총서/총림성사叢林盛事

총림성사 上 46~51.

쪽빛마루 2015. 9. 24. 11:58

46. 태주 태수 우연지(尤延之)

 

 시랑(侍郞) 우연지(尤延之)는 종문(宗門)에 마음을 크게 쏟은 사람이다. 처음 낭중(郞中)으로 있다가 태주(台州) 태수로 나갈 때 효종황제를 알현하자, 황제가 말하였다.

 "경(卿)이 남태주(南台州)로 가는 길에는 어떤 명소가 있는가?"

 "국청사(國淸寺)와 만년사(萬年寺)가 있습니다."

 그러자 효종은 매우 기뻐하면서 다시 농담 삼아 말하였다.

 "그 사찰에는 500나한이 모셔져 있으며 그들은 원래 힘이 세다고 하는데 그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나타나면 경은 무슨 법으로 맞서겠는가?"

 그러자 우연지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곧추세우고 말하였다.

 "신(臣)에겐 금강왕(金剛王) 보검이 있습니다."

 이에 효종은 기쁜 빛이 얼굴에 역력하였다. 우연지는 태주에 이르러 너그러움과 사랑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백성들도 그를 몹시 사랑하였으나 남태주는 가뭄과 홍수가 잦은 곳이기에 우연지는 이에 대해 시를 지었다.

 

하루 아침만 비가 와도 온통 질퍽거리고

겨우 사흘 비 내리지 않으면 사람들은 가뭄 걱정

예로부터 하늘의 일이란 어렵다 말하지만

하늘이 태주에 대해선 너무나 어렵게 하는구나

來雨一朝成汗漫  纔晴三日人憂乾

向來盡道天難作  天到台州分外難

 

 그러나 고을의 정사를 다스리고 남은 여가에는 많은 시간을 보은사(報恩寺)에서 보내며 불조(佛照德光)스님과 도를 논하였다. 불조스님이 뒷날 냉천사(冷泉寺)에 청을 받고 부임하자 그를 이어 이암 유권(伊菴有權 : ?~1180)스님을 초빙하여 주지로 삼았는데 대중이 항상 4,5백명이나 되었다.

 

 

47. 묘희스님의 인가를 받다  / 무착 묘총(無著妙總)선사

 

 무착도인(無著道人) 묘총(妙總)은 소태사(蘇太師)의 손녀로서 여러 큰스님을 두루 찾아뵈었고, 뒤에 경산사 묘희스님을 찾았다. 어느 날 묘희스님은 법상에 올라 "이렇게 할 수도 없고 이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라는 석두(石頭希遷)스님의 화두를 들어 설법하였다. 그때 시랑(侍郞) 풍제천(馮濟川)이 법회에 있다가 갑자기 느낀 바 있어 방장실로 달려가 아뢰었다.

 "스님께서 거론하신 석두스님의 화두를 이 풍즙(馮楫 : 풍제천, ?~1153)이 깨달았습니다."

 "시랑은 어떻게 깨달았소?"

 "이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은 소로사바하. 이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것은 시리사바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는 것은 소로시리사바하."

 때마침 묘총이 밖에서 들어오자 묘희스님은 풍즙의 말을 그대로 전하니 묘총이 웃으며 말했다.

 "예전엔 곽상(郭象)이 「장자(莊子)」에 주석을 붙였다 하지만 유식한 자는 장자가 곽상의 글에 주석을 붙였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묘희스님은 마음 속에 이 말을 새겨두었는데 그 이튿날 묘총이 방장실에 들어가자 묘희스님이 물었다.

 "옛 큰스님들은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밭에서 인절미를 먹을 수 있었느냐?"

 "스님께서 저의 허물을 눈감아 주신다면 곧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그대의 허물을 눈감아 줄 터이니 한 번 말해 보아라."

 "이 묘총이 스님의 허물을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기름바른 인절미는 어떻게 하고?"

 묘총이 할을 하고 밖으로 나가고 나서는 이어서 '투기송(投機頌)'을 지어 올렸다.

 

갑자기 진면목을 부딪치니

기량이 얼음 녹듯이 없어졌네

달마는 어찌하여 서쪽에서 왔는가

이조는 부질없이 세자리 헛 절을 올렸구나.

여기에 이럴까 저럴까 의문을 붙여

한무리 초적들이 대패하였지.

驀然撞着鼻頭  伎倆氷消瓦解

達磨何必西來  二祖枉費三拜

更問如何若何  一隊艸己大敗

 

 이에 묘희스님은 북을 울려 그를 인가하고 게를 지어 주었다.

 

그대는 이미 조사의 뜻을 깨달아

단칼에 두 동강이를 내버렸구나

기연에 임하여 하나하나 천진스러우니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조금도 부족함 없기에

 

내, 이 게를 지어 증명하노라

사성 육범 모든 이가 놀라 자빠지리라

놀라 자빠질 것 없다

푸른 눈 오랑캐 중도 알지 못하니

 

汝旣悟得祖師意  一刀兩叚直下了

臨機一一任天眞  世出世間無欠少

 

我作此揭爲證明  四聖六凡盡驚撓

休驚撓  碧眼胡僧猶未曉

 

 

48. 40년 동안 산문을 나가지 않다 / 경수좌(瓊首座)

 

 경(瓊)수좌는 사명(四明) 사람이다. 여러 노스님을 두루 친견하고 설봉산(雪峰山)에서 40년 머무는 동안 산문 밖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선열요(禪悅寮)의 선판 자리를 차지하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누더기 한벌로 지내니 아무도 그를 가까이하거나 멀리하지 못하였으며, 철암(鐵菴)스님만을 모시고 있었다.

 민현(閩縣) 태수 조여우(趙汝愚)가 그의 풍모를 우러러 여러 차례 큰 사찰의 주지자리를 마련해 놓고 산에서 나오기를 청하였지만, 그는 굳이 산 속에 머물 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여우는 꼭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철암에게 부탁하여 계략을 꾸며 관아로 들어오게 하고는 크게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는 그 앞에서 자기 청을 들어 달라고 부탁하였지만, 경수좌는 끝까지 뜻을 바꾸지 않았다. 이에 조여우는 더욱 존경한 나머지 시를 지어 산으로 돌아가는 그를 전송하였다.

 

만길 높은 봉우리에 눈더미 쌓였는데

한 그루 차가운 나무 바윗가에 서 있노라

푸르고 푸른 절개는 사계절 변함없고

봄바람이야 불던말던 아랑곳하지 않네.

萬仞峰頭雪作堆  一枝寒木倚巖隈

靑靑不改四時操  任待春風吹不回

 

 부판(府判) 이하 관료가 모두 경하하였으니, 불법을 빛낸 그의 영광은 적지 않았다. 그는 소개장을 써들고 다니면서 주지자리를 찾는 요즘 사람들과는 함께 논할 수 없다.

 

 

49. 여러 선지식을 천거하여 부처의 혜명을 잇다 / 이덕매(李德邁)

 

 시랑(侍郞) 이덕매(李德邁)가 남태주(南台州) 태수로 있을 때, 홍복사(鴻福寺) · 만년사(萬年寺) · 천선사(薦善寺)의 주지로 졸암(拙菴德光) · 이암(伊菴有權) · 철암(鐵菴祖證), 스님을 초빙하여 세상에 나오게 하니 훌륭한 납자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 후 국청사(國淸寺)의 주지로 밀암(密菴咸傑)스님을 초청하니, 밀암스님은 당시에 구주(衢州) 오거사(烏巨寺)의 주지로 있었다. 이들은 오직 응암(應菴曇華 : 이덕매는 응암스님의 제자)스님의 법을 위해서 나왔으므로 개당에 있어서는 모두 그럴만한 자질이 있었다. 참으로 이러한 일이란 각기 알맞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지, 인정으로 사대부의 환심을 산다하여 되는 일이 아니다.

 뒷날 이덕매가 벼슬을 그만두고 번양(番陽)으로 돌아가 한가히 지낼 때 어느 사람에게 말하였다.

 "내(浩)가 비록 일생동안 벼슬하였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자급할 수 없었고, 재물이 없어 남을 구제하지도 못했지만, 단구(丹丘 : 台州의 별칭)에 있을 때 세분의 선지식을 청하여 세상에 나오게 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게 하였으니, 그 공덕이란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50. 법을 잇길 바랬지만 / 불조 덕광(佛照德光)스님

 

 불조 광(佛照德光)스님이 처음 앙산사(仰山寺)의 야암 조선(野菴祖璇)스님의 회중에 있다가 태주(台州) 홍복사(鴻福寺)의 주지로 부임하는 길에, 삼구(三衢)를 지나 오거사(烏巨寺)에 이르자 밀암(密菴咸傑)스님이 게를 지어 그를 전송하였다. 이는 응암(應菴曇華)스님의 법을 이었으면 하는 의도에서였다.

 

눈먼 당나귀가 눈먼 새끼 낳아

악착스러워 그의 이름 사방에 사무치는데

또다시 소림(달마)의 구멍없는 피리를 잡았으니

사람 만나면 아마 바람을 거꾸로 부르리라.

瞎驢生得瞎驢兒  齷齪聲名徹四維

更把少林無孔笛  逢人應是逆風吹

 

 그가 무주(婺州)보림사(寶林寺)에 이르렀을 때는 당시 월암(月菴善果)스님의 제자 혜원(轄堂慧遠)스님이 그곳의 주지로 있었는데 운문(雲門)스님의 "말에 떨어졌다(話墮)"는 화두를 들어 그에게 가려 보라 하니 이는 그가 월암스님의 법을 이었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단구(홍복사)에 와서 개당함에 묘희스님의 법제자가 되었다. 총림에서는 모두 그가 묘희스님의 문호가 높고 크기 때문에 그랬다고 비난했지만 그들은 애당초 원수에게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었다.

 

 

51. 정수리에 뼈가 솟다 / 도독 지책(塗毒智策)스님

 

 도독 책(塗毒智策)스님이 상주(常州) 화장사(華藏寺)의 주지로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프며 사흘 동안 그치지 않자, 문도들은 아마 뇌에 종양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통증이 멎자 마침내 정수리 뼈가 솟아올라 마치 다른 뼈를 꼽아 놓은 듯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열흘이 못되어 쌍경사(雙徑寺)의 주지로 임명하는 조서가 내려졌다. 사람이 만년에 불과(佛果)를 이루게 되면 환골(換骨)의 징조가 있는 듯하다.

 쌍경사로 가려는 차에 설림 자광(雪林慈光)이라는 스님을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불지(佛智端裕)스님에게서 두 눈이 멀었기에 혜산사(慧山寺)에 머물고 있었는데, 게송 세 수를 지어 오봉(五峯)의 화장사로 보냈다.

 

도독스님 작은 번뇌 모두 다하자

전우(도독의 스승) 생각 불조 생각 모두 사라지고

웃으며 조칙 받들어 남쪽으로 떠나니

천고의 총림에 반짝거리는 등불이로다.

塗毒離微及盡  典牛佛祖俱亡

笑捧天書南去  叢林千古耿光

 

천태산 산마루 깎아지르듯 우뚝 섰고

큰 호수에는 백설같은 파도 꽃이 휘날린다

묻노니 오호의 스님들이여

오늘에 어느 누가 있단 말인가

台嶺危峰壁立  大湖雪浪華飛

試問五湖禪衲  如今天下有誰

 

늙고 병든 이 몸, 스님의 덕 입었고

부처님께서 나의 소리를 거두셨네

천리마 꼬리에 붙어가는 파리처럼 그를 따라 갈석암 구경하니

용을 올라 타고픈 생각이 부질없이 일어나네.

衰殘正賴餘潤  紫泥掇我賞音

附驥觀光喝石  攀龍徒有此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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