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고애만록枯崖漫錄

서 (1)

쪽빛마루 2015. 11. 14. 08:12

서 (1)

 

 석계(石谿心月 : ~1254)스님과 언계(偃谿廣聞 : 1189~1263)스님은 중생을 사랑하고 불법을 숭상하여 단평 · 가희(端評 · 嘉熙 : 1234~1240) 연간에 어느 스님들보다도 훌륭한 분이었다. 노년에는 영은사(靈隱寺)와 경산사(徑山寺)에 머물면서 나와 더욱 친밀한 사이가 되었는데, 글을 짓고 도를 논함에 있어서 한마디도 거리끼는 일이 없었다. 이에 고애(枯崖 : 언계스님의 제자)스님과 중간(仲簡)스님을 두 분 스님(石溪 · 偃溪)에게 말씀드려 훗날 경산사 사중의 기록을 맡긴 적이 있었는데, 중간스님은 풍부한 문장력을 지녔으나 애석하게도 요절하였고, 고애스님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 분발하여 정종(正宗)을 공부하였다.

 내가 머무는 갈석암(喝石嵓)의 길 양편에 옥잠화가 피는 날이면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어떤 이는 "스님께서는 꽃만 바라보고 계시니 겨울추위를 어떻게 겪으려는지 딱하시구려…"라고 비웃으며 제각기 갈길을 찾아 동분서주 떠나가는데, 고애스님만은 너덜거리는 창가에 앉아 아무런 수심 없이 태연자약하였다. 언제나 이불을 싸들고 갈석암으로 나를 찾아와 함께 밤을 지새며, 달밝은 밤이면 누각에 오르고 눈발이 멈추면 산을 바라보면서 서로의 가슴 속엔 정이 깊어만 갔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금계(錦谿)의 보자사(報慈寺)에서 연평(延平) 함청사(含淸寺)로 돌아갔었다.

 간간히 전해오는 소문에 의하면 고애스님이 옛 분들의 이야기를 모아 어록을 편집하였고, 언계스님은 "그가 수집한 기연(機緣)은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이라고 기뻐하였다"고 들었다. 후촌(後村)도 "어느 때나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그와 다시 이야기를 해볼까"하였으며, 죽계(竹谿)는 "뒷날 승보전(僧寶傳)에 넣어야 할 책"이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고애스님이 남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책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으나 때마침 나는 광효사(光孝寺)로 떠나야 했으므로 대강 훑어보고는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고애스님은 천남(泉南) 흥복사(興福寺)의 주지가 되었는데, 기장주(起藏主)가 이것을 간행하고자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스님은 정안종사를 참례하였고 날카로운 기연으로 학인을 지도하였으며 고매한 인품과 기상은 탐욕에 찌든 중생을 일깨우고 나약한 이를 일으켜 세웠는데 이러한 내용을 이 책 속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이 일을 계기로 돌이켜보니, 석계스님이 태백산(太白山)에 한가히 머물 당시, 중선 부(仲宣孚), 비암 광(非庵光), 간암 기(艮嵓沂), 승수 정(勝叟定)스님 등의 옛 저술을 간행하려 했으나 주지를 맡게 되어 온갖 일에 시달리느라 한가한 겨를이 없었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하여 고애스님은 당연히 그의 뜻을 받들어 끊임없이 사적을 찾아 모아 오등(五燈)*의 뒤에 또 하나의 등불을 밝혀 찬란히 천하를 비췄으니 이를 어찌 「만록(漫錄)」*이라 하겠는가?

 고애스님의 이름은 오(悟)이며 복주(福州) 복청(福淸) 사람이다.

 

 함순(咸淳) 8년(1272) 2월 북산(北山紹隆)이 고산(鼓山) 노선암(老禪庵)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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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덕전등록」「천성광등록」「연등회요」「속등록」「가태보등록」이 다섯 가지 전등서의 총칭.

* 만록 : 붓 가는 대로 적어간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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