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벽암록碧巖錄

중간원오선사벽암집소(重刊圜悟禪師碧巖集疏) <終>

쪽빛마루 2015. 12. 1. 06:54

중간원오선사벽암집소(重刊圜悟禪師碧巖集疏)

 

 

 설두스님의 「송고백칙」에 원오스님이 여러 번 주석을 붙여 총림에 내보여주시니 종지를 길이 전하는 말씀[經]이 되었다. 그러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그저 이 책의 말만을 외워) 기봉이 민첩하게 되었다. 대혜스님이 이를 밀실에서 시험해보고 실제의 참된 지혜가 없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판목[梓]을 없애 후세에 전하지 못하게 했으니 이는 방편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 책은 모든 부처님의 바른 눈과 많은 조사들의 훌륭한 솜씨로 이루어져 있다. 두 스님의 망치질과 풀무질을 거치면서, 하나의 잘못도 없게 되었다. 이에 대혜스님의 편지글 (「대혜보각선사서」)과 원오스님의 「심요(心要)」와 같이 유행되기를 바란다.

 어두운 세상에 길을 밝혀주는 빛나는 해가 높이 뜨고, 지혜의 바다에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게 되었다. 척 한번 보면 저 여러 어리석음이 사라지며, 모두 함께 분명하게 깨친다면 결코 이익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큰 다행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17세에 「운문록」과 「목주록」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으니 이는 참으로 구두삼매(口頭三昧)라 할 만하다. (대혜스님이 불을 지른 해부터 대덕 4년에 이르기까지) 200년 동안 「벽암집」과 「설두송고」를 보지 못했다. 대혜스님이 불을 지른 뒤로 잠깐 그 가업이 끊어졌으나 자손의 종자마저 없애지는 못했다. 사람이 계속하여 뒤따라 서로 이어가다 보면, 누군가가 용을 낚는 낚시 바늘을 드리울 것이다.

 어떤 눈 밝은 사람이 나온다면 사람을 얽어매는 말뚝은 결코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마치 후인을 위한 뗏목과 같다. 언젠가는 스스로 (물고기를 잡고서는) 통발을 잊을 날이 있을 것이다. 집집마다의 문은 장안으로 통하고, 앞 사람이 부르면 뒷사람이 대답한다. 모든 인연이란 운수에 달려 있어 옛날에 멸망했던 것이 오늘에 다시 흥하기도 한다.

 산승이 말이 많다고 이상하게 보지 마라. 이것은 내내 노파심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중국[東土]의 책을 읽지 않는다면 어찌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일대의 중풍을 거듭 일으키니,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는 없더라도 북쪽에서 오는 물고기를 보시오. 반드시 충분한 소식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같은 모양의 도장을 가지고 다함이 없는 진리의 등불을 이으리라. 삼가 소(疎) 하노라.

 금월일소(今月日疎)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