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 물은 물

118. 손님쫓기 골머리

쪽빛마루 2010. 2. 10. 06:04

118. 손님쫓기 골머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모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바로 손님맞이, 아니 정확히 말해 손님 쫓아내기였다.

출가해 7~8년이 지나면서 본의 아니게 원주(院主.작은 암자의 주지) 가 돼 암자 살림을 맡게 되면 덤으로 따라오는 일이 바로 손님맞이다. 살림이야 산골암자니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다. 밥 하고 나무 하는 일쯤은 익숙해지면 그렇게 힘들지 않게 마련이다.

그러나 "큰스님을 직접 뵙고나야 돌아가겠다"며 암자까지 찾아오는 외부인을 내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서남북에서 온갖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불문곡직, 무작정 떼를 쓰는데 삼천배를 하라 말라 타이를 겨를도,여유도 없다.

어떤 때는 지리산 산신령같은 외모에 육환장(여섯개의 고리가 달린 지팡이.원래는 고승의 권위를 상징) 을 짚고 와서는 "성철이 나와라!"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고함치기도 하고, 마디 마디 군살이 박혀 있는 떡대같은 주먹을 내밀며 "지금까지 내공을 연마해 왔는데 성철 스님과 오늘 내공시합을 하러 왔다"는 기인,

"손자가 다 죽게 생겼는데 성철 스님 얼굴만 보고 가면 병이 낫는다하여 큰스님을 뵈러 왔다"는 사연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이어졌다. 대부분 세상 살면서 처음 당해보는 황당한 일이라 그들을 응대하느라 애를 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저런 사연에 대해 성철 스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직 한마디 엄명으로 끝낸다.

"다 쓸데없는 일이니 그런 사람들 오거든 나한테 이야기하지도 말고 돌려보내라."

처음에는 멋모르고 큰스님 말씀대로 그런 사람들이 찾아오면 다짜고짜로 "큰스님 엄명으로 만날 수 없다"고 말했다. 백련암까지 찾아온 사람 중에 그 한마디에 포기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당장 항의가 이어진다.

"여기가 무슨 청와대나 되느냐."

"당신이 뭔데 우리 절박한 사정을 이해 못하고 버티고 서서 큰스님 친견을 막느냐. 절에도 인의 장막이 있느냐."

그러다보면 다시 말이 길어지게 된다. 심산유곡에 사람 한번씩 찾아오는 것이 반가워야 할텐데 계단에 사람이 오르는 것만 보여도 반갑기는커녕 '저 사람에게는 또 어떤 말을 해서 돌려보내지'하는 걱정이 앞섰다.

물론 거기에는 내 성격도 한 몫 했다. 마음이 약해 박정하지 못하니 단칼에 베어버리지 못하고 들을 만큼 들어주니 그것도 화근이었다. 절집에서는 외교적 언사가 필요없다. 그냥 '이다','아니다'만 명백하면 된다. 세상 화법 대로 '생각해보겠다'고 하면 긍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중에 '네가 생각해 본다고 해 그렇게 되는 줄 알았지'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이다'는 긍정적 답변이면 그 자체로 별 문제가 없지만,'아니다'는 경우 부탁하러온 사람이 쉽게 물러나는 경우가 없다. 여기 저기 부탁해 꼭 '이다'로 만들려고 하니 스님들 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철 스님은 내 성격을 뚫어 보고 있었다.그래서 밖에 사람이 왔다 해서 내가 문밖으로 나가면 뒷머리에다 한마디 쏘아붙이곤 했다.

"저거 또 한 시간이나 돼야 들어오겠제. 고만 안된다 하고 들어오면 될 긴데 무슨 말이 그리 많은지…. 쯧쯧."

어떤 때는 연신 혀를 차면서도 옆에 있는 시자(侍者.큰스님의 수발을 드는 젊은 스님) 들에게 "너거 내기 해봐라. 밖에 나간 원주가 얼마 만에 들어오는가.1시간인가, 30분인가 내기해봐라"고 충동질까지 하곤 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이 무엇보다 싫어하는 손님은 따로 있다. 뭣 모르고 강원(講院.불교학을 강의하는 사찰의 학교) 의 학인(學人.학생) 스님들이나 선원(禪院) 스님들이 여신도들을 안내해 백련암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 경우 당장 큰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 보살(여신도) 은 눈이 없나, 발이 없나. 지가 찾아오면 될 낀데 웬 젊은 중을 데리고 오기는 왜 와! 중들 너거도 할 일이 그리 없나. 씰데 없이 보살들 안내나 하고 다니고, 나쁜 놈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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