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 물은 물

120. 송이버섯

쪽빛마루 2010. 2. 10. 06:05

120. 송이버섯


성철 스님은 철저한 무염식(無鹽食)에다 소식(小食)을 한다. 간을 전혀 하지 않은 쑥갓. 당근 등 야채와 콩 조림이 반찬의 전부다.

그런 성철 스님이 특별식으로 즐겼던 음식이 한가지 있다면 바로 송이버섯이다.

가야산에 가을이 찾아와 백로쯤 되면 송이가 난다. 언젠가는 송이 철이 되었다기에 나도 '큰스님께 드리겠다'며 산을 올랐다.

처음엔 아무데나 가도 솔방울 줍듯이 송이를 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후 내 뒷산을 헤집고 다녀도 송이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헤매 다니다가 도저히 못 찾겠기에 암자에서 일을 도와주는 노인에게 물었다.

"송이는 어디 있능교?"

"스님, 송이는 아무나 못 땁니다. 가야산이라고 송이가 다 나는 것은 아니고요, 송이 밭이 따로 있심니다. 송이 밭을 알아야 송이를 땁니다.

그리고 스님같이 오후에 가서는 한 꼭지도 못 땁니다. 새벽 일찍이 올라가 남 먼저 다녀야 송이를 따는 깁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인근 암자의 노스님들은 허리춤에 불룩하게 송이를 따 내려 오는게 아닌가.

용기를 내 새벽 일찍 산을 올랐다. 새벽이라 전등은 들었지만 어디가 어딘지, 자주 다니던 곳도 알아보지 못해 그냥 산을 헤맬 뿐이었다.

그런데 아래쪽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 가만 기다려보니 동네 장정 서너 명이 쇠꼬챙이를 하나씩 들고 온다.

"아저씨들, 어디 가능교?"

"송이 따러 갑니다. 스님이 새벽부터 산에 오르시는 거 보니 우리는 오늘 망했네요."

장정들의 농담에 솔직히 토로했다. 송이 밭이 어딘지도 모르고, 또 송이가 어디에 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올라왔다고. 그러자 그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스님, 혹시 송이를 보거든 송이만 뽑지 그 주변을 흐트러트리지 말고 그대로 두시소. 송이 따고 그 주변을 흐트러트려 놓으면 그곳엔 다시 송이가 나지 않슴니데이"

하고 다짐을 둔다. 그리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성철 스님께 올릴 송이를 따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송이 밭이 어딘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며칠이 흘렀지만 송이를 따기는커녕 구경도 못했다.

그저 귀동냥으로 송이는 소나무 뿌리가 무성한 곳, 약간 모래가 섞인 듯한 흙이 있는 곳에서 자란다 고만 들었다. 그나마 솔가리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며칠 새벽 산을 헤매다 만난 동네 사람들에게 '이제는 가야산 송이 밭을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그게 우리 밥줄인데 못 가르쳐 드립니더. 우리끼리도 서로 얘기는 안 해줍니다'며 완강히 거절했다.

허탕치고 다니기를 보름, 어느날 앞산 골짜기를 헤매다가 삿갓처럼 핀 큰 송이를 찾아냈다.

어찌나 반갑던지 힘든 줄도 모르고 골짜기 깊숙이 내려가 따서 신나게 백련암으로 달려와서 자랑했다.

송이를 본 스님들이 웃는다. 송이는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인데, 끝이 우산 펴지듯이 활짝 핀 것은 하품 중의 하품인 까닭이다.

기운이 쭉 빠졌지만, 어쨌든 송이를 찾아냈다는 자신감에 다시 새벽 산을 올랐다.

하루는 동네 사람과 동행하게 됐는데, 그 사람은 내 뒤를 따라오면서 내가 방금 밟고 온 그 솔가리 속에서 송이를 쏙쏙 뽑는 것이 아닌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잘 따나' 하는 마음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지막 결심을 했다.

"오늘도 송이를 못 따면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결심에도 불구하고 송이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접고 백련암으로 내려오기 위해 잠깐 쉬기로 했다. 마침 소나무 밭이라 솔가리가 소복한 공간을 찾아 다리를 폈다.

그런데 솔잎 사이로 무언가 하얀 것이 눈에 얼핏 들어왔다. '뭔가' 하고 헤쳐보니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송이가 열 댓개 솟아 있었다.

어찌나 좋은지 그것을 캐 가지고 한달음에 내려와서 식구들에게 자랑했다.

내 손으로 캔 송이를 성철 스님께 올린 것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노력을 달리 쓰는 것이 큰스님을 더 잘 모시는 길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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