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수행법

명상의 자세

쪽빛마루 2011. 1. 1. 13:27
명상의 자세
 
명상은 기술(technique)이 아니라 마음의 조율이다.
만약 멋지게 앉는 방법론만을 명상이라고 한다면, 로봇이나 인형에게 명상을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명상은 집중과 통찰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명상이다.
마음이 순수하게 깨어있음 가운데 쉴 수만 있다면 어떠한 몸의 자세도 불필요하겠지만, 이왕 명상을 위해 앉는다면 창조적이고 영감적인 자세로 앉는 것이 좋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몸의 자세는 마음가짐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명상의 순서는 우선 몸을 고르고(調身), 다음에 호흡을 고르며(調息), 마지막으로 마음을 고른다(調心).
 
 
앉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결가부좌와 반가부좌인데, 몸의 무의식적인 행동들을 단 하나의 부동한 자세로 환원시킴으로써 정신과 육체의 통합을 꾀하려는 것이다.
앉은 다음에는 호흡의 날숨과 들숨의 미세한 리듬과 정지를 조율한다.
호흡은 특이한 생명현상이다.
다시 말해 호흡은 원래 무의식에서 관장하는 생명활동이지만, 의식적으로도 호흡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의식적인 호흡의 조율을 통해 무의식을 다스리는 가교인 것이다.
결가부좌는 둘로 나뉠 수 없는 하나를 상징한다.
즉 삶과 죽음, 선과 악, 숙련된 방편과 지혜, 남성원리와 여성원리, 윤회와 열반의 일치를 의미한다.
오른발을 먼저 왼쪽 허벅지 위에 올리고, 다음에 왼쪽 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린다.
발이 저려올 때엔 오른발 왼발의 위치를 바꿔도 무방하다.
 
기술을 선호시하는 명상에서는 몸의 자세를 피라미드형으로 고정시키라고 권하는데, 이유는 피라미드 형태가 우주의 에너지를 끌어 모으는 작용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몸의 자세를 피라미드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양 무릎이 바닥에 맞닿도록 해야 하고, 바닥에 맞닿은 양무릎과 척추골 끝의 원숭이꼬리뼈(청량골)가 정삼각형이 되도록 한다.
이렇게 이루어진 바닥의 정삼각형과 머리꼭대기가 입체적인 피라미드를 이루는 것이다.
 
머리꼭대기에서 추를 실에 매달아 늘어뜨린다고 가정할 때, 그 추는 바닥의 삼각형의 무게중심에 가 닿으며, 이 늘어뜨린 가상의 실 위를 코와 배꼽이 지나간다.  
좀더 쉬운 자세를 잡기 위한 방법은 피라미드 대신 산의 모습을 상상하며 산의 모습을 닮는 것이다.
몸을 산처럼 안정시킨다. 산의 위대한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본받는다.
 
우리의 몸은 산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다고 상상한다.
강타해오는 바람이 거세고, 정상을 휘감은 먹구름이 두터울지라도, 산은 온전히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산은 숨을 쉬고, 주변의 환경에 활기찬 생명력을 가득 채우며, 살아있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보급자리와 양식을 제공한다.
 
산은 대기의 힘, 물의 힘, 전자기력 등의 에너지를 모아서 바람과 구름을 생성시키고, 천둥과 번개를 만들고, 폭포수와 강들을 먹여 살린다.
긴장을 풀고 허리를 곧추 세워 산처럼 앉으면, 마음은 떠올라 치솟게 된다.  
 
 
허리를 곧추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래야만 생명 에너지(prana, 氣)가 온몸으로 퍼져나가 원활히 소통되는 미세한 통로(nadi)들이 원활하게 되기 때문이다.
 
엉덩이는 충분히 뒤로 빼고, 배꼽은 앞으로 충분히 내민다.
그리하여 등뼈 아랫부분은 자연스럽게 휘도록 한다.
머리는 똑바로 세워 목 위에서 편안하게 균형을 잡도록 한다.
 
몸 자세의 힘과 은총을 지탱하는 것은 어깨와 몸통의 윗부분이다.
양 귀와 어깨가 수평이 되도록 한다. 코와 배꼽은 수직선상에 일치시킨다.
눈은 거대한 바다처럼 열려 있기 위하여 콧등을 따라 45도 각도로 내리뜬다.
 
마음이 거칠어질 때는 눈을 더 내리뜨고, 마음이 나른해지고 졸릴 때마다 눈을 위로 치켜 뜨는 것이 일반적인 요령이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눈을 감으면 혼침에 떨어지기 쉽다(黑山鬼窟). 또한 눈을 뜨는 이유는 삶을 닫아버리기보다는 모든 것에 열려있고 모든 것과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명상의 목표는 세상을 등진 채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족첸 가르침에 따르면 지혜의 에너지가 발하는 모든 빛은 심장 핵심부에 귀속되어 있으며, 지혜의 채널을 통해 눈과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눈은 지혜의 광명이 흘러나오는 門이다. 따라서 지혜의 채널을 열어놓기 위해서 눈을 떠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잠시 감았다가 서서히 뜨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목의 깊은 곳에서 '아-'라고 발음하는 거처럼, 입도 가볍게 벌린다.
주로 입을 통해 호흡함으로써, 마음을 쉬게 하는데 방해되는 장애물들과 생각이 만들어내는 카르마의 바람들이 훨씬 잔잔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선(禪)에서는 입을 다문 채 혀를 둥글게 말아 입천장에 가볍게 갖다대는 방법이 더 선호된다.
호흡을 관찰하는 수행을 할 때엔 입을 다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콧속을 드나드는 숨결이 느껴지는 부위(인중; 코 바로 밑 또는 입술 위)에 더 잘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은 편안하게 무릎 위에 올려 놓는다.
 
또는 법계정인(法界定印)을 사용할 수도 있다.
 
즉 오른 손 바닥 위에 왼손 등을 가볍게 포개고, 그 위에 마치 야구공을 가볍게 감싸안은 느낌으로 둥글게 정인을 지은 후, 이 동그라미의 중심에 단전이 오도록 손을 가볍게 배꼽아래에 밀착시키다.
 
선방에서는 이 정인이 흐트러질 때 마음 또한 흐트러졌다는 신호로 여긴다.  
의자에 앉아 할 수도 있지만, 항상 등은 곧추세워야 한다.
 
하지만 명상의 자세에서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이 경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앉는 기술에 몸을 맞추기보다는 편안한 느낌이 드는 자세가 가장 좋은 자세이다.
 
모든 감각은 열어놓아야 한다. 들리는 것은 들리는 대로, 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집착하지 말고 지각된 채로 놓아둔다.
 
명상과 시선은 가장 충만하고 넓게 한없이 멀리 뻗어나가도록 한다.
다양한 형태들이 지각되겠지만, 그것들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비어 있다. 그러나 그 비어있음 속에 우리는 다양한 형태들을 지각한다.
 
다양한 소리가 들리겠지만, 그것들은 텅 비어 있다. 그러나 그 비어 있음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소리를 지각한다.

 


 
이상 간단히 명상할 때의 몸 자세를 설명했지만, 어떤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명상의 자세 자체가 목적은 아니므로, 자신의 몸에 가장 편안하고 적합한 방법을 찾는데 있어 참고가 되길 빌 뿐입니다. 다만, 제 글에서 건질게 있다면 앉을 땐 꼭 허리를 곧추세우고 등줄기를 펴야한다는 것입니다.
탄트라 불교에서는 생명력(프라나)이 흐르는 통로인 나디(nadi, 경락)와 차크라(생명력 센터)를 중시하는데, 허리를 세워야 프라나의 흐름이 원활해집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