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

45. 제4편- 2장 자유로 가는 길. 2. 큰 의심. 1) 아난존자

쪽빛마루 2011. 1. 30. 11:15

1) 아난존자

옛날 스님네는 어떻게 공부해서 어떻게 무심삼매를 성취하여 도를 이루었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읍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뒤
그 제자들이 부처님의 법문하신 것을 모아놓은 것이 경(經)입니다.
그 무렵에는 녹음기도 없고 속기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부처님을 삼십여 년 동안 모시고 다니며 시봉했던 아난 존자는
부처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었읍니다.
그 총명함은 고금을 막론하고 견줄 데가 없으니
한번 들으면 영원토록 잊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는데,
대중 모두가 아난이 주동이 되어야 한다고 했읍니다.
그런데 가장 웃사람인 상수제자인 가섭 존자가 소집 단계에 가서 그에 반대하였읍니다.

"아난은 부처님 말씀은 잘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 진리는 깨치지 못했으므로 참석할 자격이 없다."

가섭 존자는 아난 존자가 아무리 부처님 말씀울 잘 기억하지만,
다시 말하여, 팔만대장경이 모두 자기 뱃속에 있지만
아직 자기 마음을 깨치치 못한 봉사이므로
이 결집에 참여할 자격이 없으니 아주 나가라고 했읍니다.

이에 아난 존자가 애걸복걸 하며 말했읍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나의 대법을 가섭에게 전했으니 그를 의지해서 공부하라'고 하셨는데
이제 가섭 사형이 나를 쫓아내면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섭존자는 절대 안 된다고 했읍니다.
여기는 불법을 깨친 사자(獅子)만 사는 사자굴인데
깨치지 못한 여우가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하면서 쫓아내 버렸읍니다.

할 수 없이 울며 쫓겨난 아난 존자는 비야리성으로 갔읍니다.
그곳에 가니 국왕이며 대신 등을 비롯한 많은 신도들이
큰스님 오셨다고 오체투지를 하고 법음을 청하므로,
아난 존자는 가섭 존자에게 쫓겨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잘난체하며 법문을 했읍니다.

이때 그 부근에서 발기라고 하는 비구가 있었는데
아난이 그곳에 온 뒤로 많은 신도들이 모여 법석을 떠니
시끄러워 도저히 공부가 안 되었읍니다.
그래서 발기 비구가 게송을 하나 지었읍니다.

  좌선하고 방일하지 말아라
  아무리 지껄인들 무슨 소용있는가.

입 다물고 참선하라는 말입니다.
아난 존자가 그 게송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났읍니다.
이제 참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참회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서 불철주야로 앉아서 정진했읍니다.
졸릴 듯하면 일어나 다니고 다리가 아프면 앉았다 하면서 자꾸 선정을 익혔읍니다.

며칠이 되었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여러 날을 공부했읍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찌나 고달픈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잠깐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목침을 베려고 턱 드러눕다가 확철히 깨달았읍니다.

참으로 무심삼매를 성취한 것입니다.

목침을 집어던지고 밤새도록 걸어서 가섭 존자에게 갔읍니다.
가섭 존자가 몇가지 시험을 해보니 확철히 깨친 것이 확실하므로
결집하는 사자굴에 참가할 자격을 주었읍니다.
경에 보면 '여시아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아난의 말입니다.

결국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에 다문제일(多聞第一)은 아난 존자이지만,
근본 법은 부처님께서 가섭에게로 전했고 가섭은 다시 아난에게 전했읍니다.
곧 부처님은 시조이고, 초조는 가섭 존자, 이조는 아난 존자입니다.
아난 존자 밑으로 상나화수 존자로 이어지고...,

이렇게 해서 정법은
이십팔대 달마대사가 중국에 옴으로써 동토(東土)에 정해졌읍니다.

이 선종이 중국에 소개되어
육조스님 뒤로는 천하를 풍미해서 모든 불교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육조스님은 오조 홍인대사 밑의 제일 큰제자로서 일자무식이었읍니다.

당시 홍인스님의 제자로
신수라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 등에서도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대지식가가 있었지만
이 신수스님은 도를 바로 깨치지 못했으므로,
법은 일자무식인 육조스님에게 가고 말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