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면 '사람'을 찾아야지 1
(1984년 3월 17일 조선일보, 법정스님, 안병훈 편집부국장
안전길 문화부장, 서희건 기자와의 대담)
★ 지난 겨울은 몹시 추었습니다. 그동안 스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나는 본시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 늘 대하는 것은 푸른 산, 흰구
름입니다. 푸른 산이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흰구름이 자유로이 오
고 가는 것을 보며 사는데, 거기에서 모든 것의 실체를 볼 수 있습
니다. 또 무궁무진한 변화도 보면서 살고 있지요."
★ 연세도 많으신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건강, 국민학교 3학년이지요. 내가 아마 3학년 학생은 될겁니다."
★ 재작년에는 낙상도 하셨고, 최근에는 신경통으로 불편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낙상한 팔은 다 나았는데, 요샌 신경통 때문에 다리가 아파가지
고 마음대로 안되는군요. 보행은 크게 관계가 없는데, 험한 길이나
먼 길은 못 가지요."
★ 스님의 섭생 방법이 독특하다고 들었습니다.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건강 유지라,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요. 살만큼만 먹고사니까
아주 조금 먹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3분의 1 정도 될까. 의사들도
놀랍니다. 밥 적게 먹고 매운 것 안 먹고 무염식으로 수십 년 살았
습니다.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괜찮습니다."
★ 키도 크시고 몸도 크신데, 그렇게 적게 잡수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무염
식을 하시게 된 동기가 따로 있습니까?
"뭐, 동기가 따로 있나요. 몸에 좋으라고 골라 먹는 게 아니니까
요. 그리고 나는 맵고 짠 것을 먹는 성질이 아닙니다. 좋은 음식은
잘 안 먹고, 먹기도 싫어요. 젊었을 때부터 생식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음식에 매달리는 걸 보면 우스워요 대개
가 음식을 보면 정신을 못차리거던, 몸 유지될 만큼만 먹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조금만 먹습니다. 조미료는 절대
안 넣고요."
(종정스님의 식사 상에는 솔잎 가루와 콩, 무 등 두, 세 접시의 반찬만이
오른다고 한다. 밥도 그릇의 3분의 1 정도만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두루마기는 얼마나 입으신 건가요? 아주 많이 해어졌는데 말입니다.
"이 누더기, 오래 되었지요. 한 삼십 년 될까? 많이 떨어져서 앞자
락을 좀 고쳐달라고 했더니 새걸 대가지고 옷을 버려버렸어요.(웃음)
조금 있으면 또 떨어지겠지요"
(함께 자리한 법정스님이 "새 시대의 옷이 됐습니다." 하니 좌중에 웃음꽃
이 피었다 기운 곳이 백여 곳도 넘을 진자 누더기를 소중하게 대하는 종정
스님의 태도가 퍽 이상적이었다.)
★ 종정이 되신 지 3년이 되셨지요. 요 몇 해 동안 한국 불교계는 불행히도
줄곧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지난해 종헌 개정으로 스님께서는 한국 불교
교단의 상징적인 존재에서 실질적인 종단의 대표자가 되셨습니다. 그동안 종
단을 위해 많은 심려가 계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산중에만 계셔서 그 역할
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상징이니 대표니 하지만 그런 말이 나한테는 실제로 관계가 없
습니다. 종정 역할이 어떤 건지도 몰라요. 다만 '안 한다'는 소리만
하지 말라고 해서, 안 그러면 종단이 큰일난다고 합디다. 그래서
'한다'소리도 안 했지만 '안 한다' 소리도 안 했어요."
★ 국정자문위원으로 임명받으시고도 안 나가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요. 청와대에서 사람이 와서는 국정자문위원회를
만드는데 신임종정이 들어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 거 뭐하는
거요'하고 물으니 뭐라고 이야기를 합디다. 나는 그런 재주도 없고
생각도 없어서 못하겠다고 했지요. 그거야 세속 사람들이 할 일이
지요. 그네들 갈 길이 따로 있듯이 난 또 내 갈 길이 따로 있는 거고"
★ 돌아가신 청담스님하고 친하셨다고 하던데요, 청담스님은 가끔 만나
기도 했습니다만,
"그건 사람마다 개성이 달라서지요.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사람
도 있지요. 청담하고 가까운 편이었습니다. 친하긴 했지만 성격은
정반대였지요. 정혜사에 만공스님 계실 때니 내가 서른 살 때쯤
만났습니다. 그이는 나보다 열 살 위였지요. 정혜사에 있는데 청
담스님이 오시더군요. 이야기를 해보니 통해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았지만 좋아하더군요."
(청담스님이 성철스님을 무척 아끼고 좋아했다고 법정스님이 일러줬다. 사
진 기자가 실례지만 좌중의 자리를 좀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찍었잖아. 그래, 조선일보 돈 많으면 많이 찍어가."
(좌중에 또 웃음이 터졌다.)
★ 스님을 만나려면 부처님께 3천 배를 먼저 해야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
습니다. 스님을 만나뵙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이해되기도 하고, 스님이 오만하
기 때문이 아니냐는 오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 당신들은 3천 배 하셨소? (웃음) 왜 3천 배를 시키는가, 이
말이지요? 중이 신도를 대하는데 사람은 안보고 돈과 지위만 본다
말입니다. 그래서 난 백련암에 들어올 때는 돈보따리와 계급장은
소용없으니 문밖에 걸어 놓고 알몸만 들어오라고 합니다. 사람만
들어오라 이 말입니다.
들어오면 '내가 뭐 잘났다고 당신들을 먼저 만날 수 있겠는가.' 합
니다. 부처님 찾아왔다면 부처님부터 뵈라는 말이지요, 부처님을 정
말로 뵈려면 절을 3천 번은 해야지요. 부처님한테는 신심이 제일입
니다. 부처님을 알 때까지 절하는 정신이 중요한 것지요. 그래야 부
처님께서 '너 왔구나'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이면 나도 옆에
서 좀 도와주지요. 중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을 믿어야지요."
★ 그런데 어떻게 해서 스님이 되셨습니까?
"지리산에 대원사가 있었지요. 집에서 가까웠거든, 거기 가서 한
동안 있었습니다. 그러데 살생을 금하는 게 불교의 근본인데 경찰
서장이 온다니까 중들이 법석을 떨며 큰 돼지를 잡고 술을 몇 통씩
메고 개천에 나가고 난리더군요. (일제 때인 당시 대원사에는 대처승들
이 살았다고 한다.)
젊었을 때 사상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가 불경을 보니까 불교가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그래서 참선 좀 하려고 찾아갔던 절인데 그
모양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믿고 불교는 믿어도 중은 안되겠다고
결심했지요. 당시에 대원사 탑전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 그곳에 들
어가서 좀 있자니 누가 펄쩍 뜁디다. 본시 탑전이란게 스님만 있는
곳이지 속인은 들어가지 못한다면서
그래서 한판 했지요. '너희들은 계집 다 있고, 소 잡아먹고, 술장
사 떡장사 다 하고 그러고도 중이냐,' 된다, 안된다 한참 실랑이를
하는 도중에 주지가 바뀌고 젊은 중이 주지 대리인가를 맡았는데
그와는 말이 통했어요. 그래서 그 탑전에 있으면서 한겨울을 보냈
는데, 중들이 보기에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보기도 싫고 그래서 해
인사에 공문을 보냈다나 봐요(대원사의 본사가 해인사였다고 법정스
님이 알려주셨다.) 이상한 청년이 와서 있는데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
겠느냐고 물어본 게지요.
그때 해인사에는 백용성스님, 송만공스님이 계셨어요. 유명한
도인들이었지요. 그분들이 나를 데려오라고 했다는군요. 그래,
최범술이라는 스님이 대원사로 와서는 해인사가 절도 크고 좋은
곳이니 가자고 합디다, 나는 이곳도 조용한데 해인사는 왜 가느냐
고 반대했지요. 꼭 오라고 하면서 그이는 떠나고, 얼마쯤 있다 생
각해보니 큰절도 괜찮겠다 싶어서 여기 해인사로 왔는데 그 범술
스님은 없고 이고경이란 스님이 주지를 하고 있더군요.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중은 싫어하는데 부처님을 좋
아해 공부를 좀 하려고 그런다고 이리저리 말을 해보니까 통하더
군요. 유명한 스님이었습니다. 화엄학도 연구하고
그 이튿날 다시 나는 공부하러 왔다고 했더니 원주스님을 부릅디
다. 그런데 그 원주가 안된다는 거야, 속인을 선방에서 받은 일이
없다는 거지요. 주지가 이 청년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면서 야단치
더군요. 주지가 받으라면 받지 무슨 말이 많으냐면서, 그러니까. 모
르겠다며 고개를 흔들면서 나를 선방으로 데려가더군요
(속인이 선방에 들어간 것은 전무후무한 예외라고 법정스님이 설명했다.)
그래, 내가 처음이고 마지막일거야, 당시 해인사에 김법린이라고
전에 문교부장관 하던 이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나를 볼 때 마다
책을 내놔요. 그리고 자꾸 책을 바꿔 주면서 교학을 함께 공부했
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참선하지 말고, 그래서 내가 '우리 집이 부
자는 아니지만 책 살 돈은 있소이다.'하고 거절했지요"
★ 그때 연세가 몇이셨지요?
"스물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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