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면 '사람'을 찾아야지 3
★ 요즘 우리나라 종교계 일각이 물량주의가 거대주의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
습니다. 아직도 많은 서민들의 생활 수준은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나라는 빚에 허덕이는 실정인데, 수십 억짜리 교회나 성당을 세우고 야단스런
법당을 짓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신적인 양식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사람이란
물질에 탐착하면 양심이 흐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물질보다 정신을 높이 여깁니다. 부처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호사스
런 왕궁을 버리고 다 해진 옷에 맨발로 바리때 하나 들고 여기저기
빌어먹으면서 수도하고 교화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교화
의 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철저한 무소유에서 때묻지 않은 정신이
살아난 것이며, 그 산 정신을 널리 전파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난 그 의미를 알야야 합니다. 우
리가 진정한 불교도 혹은 기독교도라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생활
태도 그대로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정신이 병든 것은 물질 때문입
니다. 종교인이 청정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려면 최저의 생활로 자
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유 있는 물질은 반드시 사회로 환원해야
죄를 덜 짓게 됩니다."
★ 산중에 있는 이름 있는 절은 정부가 추진하는 국토 개발의 시책으로 거의
공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교적 덜 오염된 송광사나 봉암사까지도 당국에서
는 공원으로 개발하겠다고 서두릅니다. 이에 대해서 불자들이 크게 분개, 그
개선책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찰은 수도장입니다. 도를 닦고 교화하는 곳이지 관광하고 유
람하는 유흥장이 아닙니다. 사찰을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사찰을
완전히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사찰이 수도원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유흥장으로 변모된다면, 거기에 와서 노는 국민의 정신마저 결국
황폐하게 되고 말 겁니다. 그윽한 수도원의 환경이 파괴된다면 시
민들은 어디에 가서 정신적인 양식을 찾고 휴식을 할 것인지 당국
에서는 배려해야 할 줄 압니다.
이러한 문제는 특정 종파의 문제이기 이전에 국민의 정신 계발
차원에서도 재고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불자들도 사찰을 이 이상
관광위락지로 만들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반대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 우리 민족의 과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통일입니다. 분단 체제로 인해서
민족의 저력은 남과 북 모두 부질없이 소모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도 마침내 이 분단 체제의 틀에 걸리고 맙니다. 스님이 생각하시는 국가나
통일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남과 북으로 분단
된 것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국제적인 사정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38선이 혹은 휴전선이 몇 개 그어졌다 해도 남쪽이나
북쪽이 다 같은 한 민족 아닙니까. 선을 그어 놓았다고 피가 달라지
겠습니까. 민족이 달라지겠습니까. 언젠가는 하나를 이루고 말 것입
니다. 서로가 인내력을 가지고 아집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한 덩어
리가 되도록 노력해야지요."
★ 로마 카톨릭 교황께서 사월 초파일 직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십니다. 초청
일자와 행사 장소를 두고 교단 일각에서는 말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측에서도 미안해하면서 불교계 지도자와 만나 협조 방안을 의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스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동안 초파일 행사를 여의도 광장에서 해 왔는데 하필 초파일
무렵에 교황을 초청, 남의 행사를 방해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
들이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1천 6백 년 동안
초파일 행사를 해마다 해 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니, 교황 같은 종교
계의 지도자가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타종교의 입장에서도 같이 환
영하고 경사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설사 우리 행사에 다소 지
장이 있더라도, 어떤 장소에서든지 행사가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불
교도들이 협력을 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 스님의 뜻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일반인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인
데요, 스님의 하루 일과를 이런 기회에 조금 열어 보이시겠습니까?
"나는 해가 뜨는지 달이 뜨는지 그런 걸 모르고 살아요. 배고프면
밥 한술 뜨고 곤하면 자는 것이 내 하루야."
★ 한도인(閑道人)의 거리낌없는 일과를 남들이 부러워하겠습니다. 스님은 인
간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생사(生死)란 바다의 파도와 같습니다. 끝없는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났다 꺼졌다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났다가 죽었다 합니다.
그러나 바다 자체를 볼 때는 늘고 줌이 없지요. 삶과 죽음 그 자
체도 그렇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의 자체는 바다와 같이 광
대무변(廣大無邊)하고 영원해서 상주불멸(常主不滅)이며 불생불멸(不
生不滅)입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삶과 죽음은 하나이지 둘로 볼
수 없습니다. "
★ 스님께서 젊었을 때 읽고 감명이 깊었거나 영향을 받은 서적이 있으면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젊어서는 다독주의였어요. 처음 볼 때는 뭔가 있나 하다가 곧 싫
증을 내곤 했지. 그래서 지적으로 방황도 했어요. 그러다가 불교의
『신심명』과 『증도가』를 얻어 보고 캄캄한 밤중에 횃불을 만난 것
같고 밤중에 해가 드는 것 같았지요. 내 갈 길이 환히 비치는 것 같
았습니다. 그래서 출가하기 전에도 감명 깊게 많이 외웠습니다. 지
금도 『신심명』과 『증도가』로 생활해 가고 있는 셈입니다."
★ 가장 좋아하는 선사(禪師)를 한 분 들라면 누구를 드시겠습니까?
"나는 조주(趙州)스님을 좋아합니다. 조주스님 법문은 아주 평범
하면서도 뜻이 깊고 높아요. 그 생활이 참으로 도인의 생활입니다.
철저한 무소유의 수도인이였지요. 신도들 신세 안 지고 자작자업으
로 살아갔습니다. 나중에 세상에 덕망이 알려지자 왕이 큰절을 지
어 주려고 했는데, 펄쩍 뛰면서 '나를 위해 돌 한 덩이 풀 한 포기
건드리면 여기 살지 않고 떠나겠다'고 할 정도로 결백했어요"
★ 스님은 선(禪)과 교(敎)에 당대 제일이 아니십니까?
"모르는 소리예요. 모르는 사람들은 천자문 하나만 외어도 문장
같이 보거든, 알고 보면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 스님께서는 장좌불와(長坐不臥) 8년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도 눕지
않고 8년을 지나신 것이 아닙니까?
"8년 동안 기대지도 않았지. 나는 성질이 고약해서 염분을 안 먹
는다면 철저히 무염식을 하듯 한번 안 한다 하면 안 하지요. 그러나
억지로 하려면 안됩니다. 자기가 좋아서 해야지요."
★ 그런 고된 수행을 통해서 얻은 소득이라면 무엇이 있는지요?
"뭐, 소득? 어떤 소득이라면 알겠나? 봉사를 보고 단청을 보라는
이야기지."
(그 경지를 모르는 사람은 설명을 해줘도 모를 것이라는 뜻이다. 질문한 기
자가 한 순간에 장님이 되어버린 격이니 좌중에 다시 한번 폭소가 터졌다.)
★ 깨달음의 경지는 어느 정도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큰스님을 포함해서 묻는
다면 실례가 되겠습니다만.
"온 천하가 피바다지"
★ 예? 모르겠는데요.
"깨달은 것은 전부 '무(無)'입니다. '무'라고 가정을 하거든요. 그
렇다면 온천하가 피바다가 되는거지 그래, 알겠소?
("깨달음의 경지가 되면 온 천하가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답
입니다." 법정스님이 설명했지만 쉽게 깨달을 수 없는 선답이었다.)
★ 단청 말씀이 나왔으니까 말입니다만 백련암에는 단청이 전혀 안되어 있던데요.
"단청? 무엇하려고?"
★ 불교 예술의 한 분야가 아니겠습니까?
"단청이라, 난 그거 반대해요. 신도들이 아무리 와서 단청하자고
해도 내가 안 듣지요. 어떤 스님은 단청을 하면 집의 수명이 배로
늘어난다고 그럽디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2백 년 갈 것이 4백 년
간다 이건데, 하지만 나는 싫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몰라도 살
아있을 때는 절대 안된다고 하지요"
★ 대부분의 법당에는 단청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부처님이 계신 곳이니까. 사람 사는 곳에 단청한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자들이 화장하는 것도 이해 못하겠습
니다. 속은 썩었는데 겉만 번지르르 하면 뭐하나. 본시 마음이 문제
지. 겉에만 잔뜩 바른다고 그 마음이 바뀌어 지나요."
★ 요즘 절에는 없는 것이 없더군요. 텔레비젼, 냉장고, 가스레인지, 전화, 심
지어 자가용까지도 있고.
"승려는 최저 생활을 하며 남을 위해 기원하는 사람입니다. 출가
한 남자를 '비구'라고 하지요. 그 비구라는 말이 걸인이라는 말입니
다 얻어먹는 사람이에요. 옷도 마음대로 입는 게 아닙니다. 버린 헝
겊을 주워 깨끗이 해서 입는 거지요. 그것도 두 벌 이상 가지면 안
되요. 옷은 헌 것을 입고 밥은 얻어먹고, 이게 부처님이 가르친 철
칙이지요. 부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 승려들이니,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검소하게 살아야지요. 내가 오늘 조선일보에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법정스님이 말을 받아 "종정스님 오늘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지요"하고 말
했다. 좌중은 다시 한 번 웃었다.)
★ 신문은 보십니까?
"천하 신문 다 봅니다. 인쇄 안된 내 신문 늘 보지요. 시자들이
오려서 오는 불교 관계 기사도 보고 TV도 있어요. 뭘 보냐하면 불
교 성지 등을 테이프로 봅니다. 카메라도 있어요. 놀러오는 어린이
들을 찍어주곤 하지요. 나는 어디 가든지 사람이 눈에 잘 안 들어오
는데 꼬마들은 눈에 쏙 들어옵니다. 꼬마들이 내 친구예요. 노래도
부르고 춤도 함께 추지."
★ 요즘도 불쌍한 어린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미혼모들이 버리는 경우도 있
고 갈 곳이 없는 노인들도 적지 않은 것 같구요. 불교계에서 이들을 돌봐줄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사회 복지 운동을 편다면 큰 효과
가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남을 돕는 것을 알게 하면 안돼요. 모르
게 모르게 해야합니다. 남이 알게 하는 것은 자기 선전에 불과해요."
★ 보충설명을 안 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법정스님이 덧붙였다.)
"불교의 사회 봉사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금강경』
이나 반야 사상 같은 데서 어떠한 선한 일을 하더라도 아무 자취
없이 하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을 상(相)이라고 하는데 생각의 자취
마저 남기지 못 하도록 합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면
벌서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기독교 단체에 비해 불교가 미온적인 것 같지만 제가 알기로는
남들 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불교 신자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 교도소나 고아원, 양로원 같은 곳에 정기적으로 가는 단체
도 있습니다"
★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
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조직
적인 것이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조직적으로 하더라도 비밀결사를 하듯이 쥐도 새도 모르게 하면
참말로 남을 도울 수 있겠지요."
★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그 선한 일 자체로 부자유로 얽을 수 있다는 것입
니다. 쇠사슬만이 사슬이 아니고 황금사슬도 사슬이 된다는 것입니다.(법정스
님이 부연 설명을 했다.)
"그렇지요. 황금사슬도 사슬이지요. 참으로 남을 돕는 사람은 아
무 말 안 하고, 오히려 남이 볼까 두려워합니다. 좋은 일이라도 남
이 알게 하면 위선자가 됩니다. 그래서 남모르게 도우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합니다. 이게 보살정신의 기본입니다.
또 하나 조건이 있습니다. 남을 도와줄 때 불쌍한 생각을 하지 말
라는 겁니다. 인간의 가치란 누구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
면 다리 없는 사람, 코 깨진 사람, 눈먼 사람도 있어 다 다르지만
사람의 속은 똑같은 겁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불쌍한 생각을 한
다면 저쪽 인격을 무시하는 겁니다. 남을 도우려면 존경하는 마음
으로 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불교에서는 가르칩니다."
★ 고민하는 현대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치관의 혼돈 속에 갈피를 못 잡
고 있다고나 할까요. 현대인들에게 삶을 위한 법문을 주시지요.
"그거 별거 아닙니다. '내가 사람이다'하고 생각하면 모든 고통이
없어질 겁니다.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하거든요
개, 돼지 같은 짐승처럼 날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개는 똥만 보면
뛰어가지요. 사람도 물질만 보면 쫒아가는 이들이 있어요. 뭐 다를
게 있습니까. 욕심의 노예가 되며 동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사람
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없지요. 사람들이 욕심을 없애면 바로 이
곳도 극락입니다. 사람이면 '사람'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대
체 천지간(天地間)에 '사람'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는 사람이다'하고 살아야지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산
다면 뭐 걱정할 게 있겠습니까.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날
카로워야지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법칙(因果法則)이란 무엇입니까?
"인과법칙이란 우주의 근본 원리입니다. 불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지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선인선과(善因
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가 나지요 남을 위해 기원하면 나를 위한
것이 되고, 남을 해치면 결국 나를 해치는 게 되는 겁니다. 생태학
에서도 그렇다고 할겁니다. 농사에서도 그렇지요. 곡식이 밉다고 곡
식을 해쳐보십시오 누가 먼저 배고프겠어요."
★ 스님의 좌우명 같은 것도 듣고 싶습니다.
"내가 무슨 좌우명이 있겠습니까. '차나 한 잔 마셔라' 하는 것으
로 좌우명을 삼지요. 차란 불교 안 믿는 사람도 마시지 않습니까."
★ 스님, 차 한 잔 마시고 다들 정신을 바짝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른 아침
부터 장시간 귀찮게 굴어 죄송합니다. 좋은 말씀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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