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헌의 ‘선사, 애물단지를 깨다’]
7. 조주, 이름표를 떼다
허명 벗고 열린 눈으로 보면 누구나 선지식
조주, 연왕·조왕 허리 굽히자
비로소 마주보고 긴 시간 설법
임금이라도 이름표 떼어야만
불법의 바다에 들어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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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서울을 갈 때마다 치루는 곤욕이 있다. 서울이란 곳이 워낙 사람이 많은 동네다 보니 이래저래 낯선 얼굴과 마주쳐 인사할 일이 생긴다. 그럴 때면 으레 “처음 뵙겠습니다” 하는 공손한 말과 함께 명함이 건네지기 마련이고, 오고가는 명함세례 속에서 혼자 이방인이 되곤 한다. 그렇게 사람살이의 예의도 모르는 놈이 된 부끄러움에 멋쩍게 웃으며 빈손을 내밀다보면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의 공자님 말씀이 절로 생각난다.
“후생을 두렵게 여겨야 하나니, 앞으로 올 자들이 지금의 나만 못하리라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그러나 40세나 50세가 되도록 세상에 알려짐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이 나이에 내밀 것이 빈손에 이름 석 자뿐이니, 한심스러운 노릇이다. 세상에 알려지기는커녕 명함 박을 일도, 명함에 써넣을 말도 없으니 세상살이로 보면 별 볼일 없는 놈임에 분명하다. 뿐만이 아니다. 남에게 할 자랑은 고사하고 스스로 자위할 거리라도 있으면 다행이겠건만, 아쉽게도 뿌듯한 구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러니 선배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없는 후배요, 후배에게는 본받을 것이 없는 선배임이 자명하다.
상황이 이 지경이면 경쟁사회의 패배자로 전락한 자괴감에 몸서리쳐야 마땅할 듯한데, 그렇질 않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부끄러움도 멋쩍음도 잠시, 도리어 그런 만남이 과장된 몸짓의 연극 같아 약간은 불편하고, 상대방이 훤히 보도록 미리 화투장을 까고 치는 고스톱 같아 약간은 무료하기도 하다. 그 명함이란 것이 이렇게 읽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일을 했고, 이런 일을 하고 있고, 이런 일을 하려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 당신은 나를 이렇게 대하고, 당신은 이런 사람이니 나는 당신을 이렇게 대하면 되겠군요. 그리고 이런저런 면에서 당신과 나는 서로 필요할 수도 있겠군요.”
영락없는 촌놈인 탓인지, 부처님 가르침을 어깨너머로 귀동냥이라도 한 덕분인지, 플라스틱 마네킹이 서로 장갑을 끼고 악수하는 것만 같아 통 살갑지가 않다.
비즈니스로 바쁜 사람들끼리 그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할 분도 있을 것이다. 옳으신 말씀이다. 비즈니스로 숨 가쁜 사회생활에서 공자님 말씀처럼 나이 사오십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그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붓다와 선사들, 선지식과 좋은 벗들을 만날 때는 그리해선 안 된다. 나이 사오십이 아니라 숨이 꼴딱 넘어가기 전에라도 고뇌와 번민을 말끔히 털어버리고 시원하게 한바탕 웃으려면 그리해선 안 된다.
‘조주록(趙州錄)’에 다음 이야기가 전한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당나라가 멸망하고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하며 군왕을 자칭하던 오대(五代)의 혼란기였다. 어느 해 하북(河北)의 연왕(燕王)이 군사를 이끌고 진부(鎭府)로 쳐들어와 그 경계까지 이르렀는데, 기상(氣象)을 보던 자가 연왕에게 아뢰었다.
“조주 땅에 서기가 서린 것을 보니 성인이 사는 곳임이 분명합니다. 싸우면 왕께서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결전을 앞두었다 극적으로 화해한 연왕과 조왕은 조주의 성인을 찾아 관음원(觀音院)을 방문하였다. 그 관음원에 조주 종심(趙州從諗)선사가 주석하고 계셨다. 당시 스님은 110세를 훌쩍 넘긴 연세였다. 서로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선의로 멈추었다고 생각했던 만큼, 두 왕은 상대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수레와 말을 한껏 치장하고 휘하의 장수들까지 총동원해 위세를 떨었다.
두 나라의 왕이 동시에 찾아왔으니, 웬만하면 산중의 온 대중이 호들갑을 떨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조주 스님은 나아가 맞이하기는커녕 법상에 똑바로 앉아 일어나지도 않았다. 한 나라 군주로 군림하고, 그것도 모자라 온 천하에 이름을 드날리려고 전쟁을 벌였던 양왕의 눈에는 별 볼일 없는 노승의 행태가 꽤나 거슬렸을 게다. 연왕은 꾸짖듯 한마디 하였다.“사람의 왕이 더 높습니까, 법의 왕이 더 높습니까?”
“사람의 왕은 사람 가운데서 높고, 법의 왕은 법 가운데서 높겠지요.”
침묵이 흘렀다. 고대의 왕들은 대부분 최고의 비즈니스맨들이었다. 얻으려는 것이 분명하고, 그 목적에 대한 집착이 누구보다 강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한 상황대처에 매우 민첩한 자들이었다. 애초에 두 왕의 방문목적은 화해를 위한 통과의례였다. 이익과 손실을 저울질하자면 섣불리 화를 낼 수도 없었을 게다. 이때, 눈치 빠른 참모들이 주군의 짐을 덜어주려고 나섰다.
“대사께서는 두 분 대왕을 위해 설법해 주십시오.”
우리의 조주 스님, 비즈니스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뭐 이런 이야기 적당히 해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으련만 굳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왕 주위에 사람이 많은데 어찌 노승더러 설법하라고 하십니까?”
두 왕은 곧바로 주위 사람들을 물렸다. 헌데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 했던가. 새파랗게 젊은 사미인 문원(文遠)이 곁에 있다가 고함을 쳤다.
“그 주위가 아닙니다!”
대왕이 물었다.
“그럼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문원이 말했다.
“두 분 대왕에게는 존호가 많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때문에 설법을 못하시는 겁니다.”
그러자 두 왕은 한껏 허리를 굽히며 공손히 말하였다.
“선사께서는 이름 따위는 개의치 마시고 설법해 주십시오.”
그제야 조주 스님은 노구에도 지치는 줄도 모르고 긴 시간 설법을 했다고 한다. 생사여탈권을 쥔 왕에게 ‘임금’ 이름표 떼고 오라 한 조주 스님의 기개도 놀랍지만, 하늘 아래 첫 사람을 자부하던 왕들이 선선히 고개를 숙이고 귀를 기울인 점은 더욱 아름답다.
비즈니스가 아니라 불법의 이름으로 만난다면 우리도 이렇게 만나야 하리라. 열린 눈으로 바라보면 어디가 도량이 아니고, 누가 선지식이 아니겠는가? 하마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절집 안에서 붓다의 제자들끼리 만날 때만큼은 이름표를 떼고 만나야 하리라. 곰곰이 돌아보면 허망한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에 이름 석 자 붙일 자리마저 어디 있겠나. 하마 이름 석 자는 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DJ DOC 노래처럼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하지는 말아야 하리라.
그래야 숨넘어가기 전에 막힌 속이 뻥 뚫리는 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임금도 이름표를 떼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불법의 바다이다. 하물며 몇 푼 되지도 않는 경력과 업적과 학식일까. 그런 잡다한 살림살이는 때가 꼬질꼬질한 냄새나는 외투에 불과하다. 붓다의 제자라면 겉옷 속옷 훌훌 벗어던지고 살갑게 만나, 불법의 탕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서로의 묵은 때를 빡빡 밀어주었으면 좋겠다.
[출처 : 법보신문 201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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