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산방야화山房夜話

임제스님의 법손들만이 번성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쪽빛마루 2014. 11. 30. 19:02

임제스님의 법손들만이 번성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스승의 위치에 있는 스님들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교화를 드 날리는 목적은 제자들을 길러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승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5종(五宗)의 문중에서 오직 임제스님의 계열만이 북쪽에서 내려와 혈맥을 계승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가 법사(法嗣)가 끊겨버렸읍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법을 전수하고 받을 즈음에 부촉을 안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인연이 그렇게 되도록 된 것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성인의 도는 시절 인연에 따라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상황 인물의 성쇠와 교화하는 방편의 방편침체는, 한 털끝만큼이라도 인위적으로 더 보태거나 덜 수가 없습니다. 옛날 우리 달마조사께서는 인도땅을 떠나지 않고서도 반야다라(般若多羅)존자께서 미리 하신 예언을 받으셨으니, 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청원(靑原)스님과 남악(南嶽)스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때에도 5가(五家)는 이미 정해진 이치가 있었읍니다. 5가(五家)가 한창 성대할 당시에 길고 짧은 운수에 어찌 일정한 이치가 없었겠습니까. 다만 서로가 어리석어서 스스로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임제스님은 자상하여서 자세하고도 간절하게 제자들을 지도하고 또 기연(機緣)도 뚜렷하였고말씀은 활구(活句)였다. 스님이 제자들을 단련하는 것은 마치 손을 뒤집는 것처럼 신속하였다. 그래서 임제가풍의 명성이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스님들은 이와는 달랐기 때문에 그 법이 세상에 오래 가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선철(先哲)을 속이고 비방하며 잘못된 견해로 시비거리만을 삼을뿐만 아니라, 나아가 바른 이치까지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스승의 위치에 있는 스님들이 평등한 마음으로 교화를 베풀어 불법이 이 땅에 오래 가도록 할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 대부분이 제자〔法嗣〕구하는 일에만 급급하여 세속의 못된 풍습만을 본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력과 이익으로써 결탁하고, 명예와 지위로써 서로를 유혹하며, 물욕(物欲)에 끄달리고, 나쁜 생각으로 싱대를 속입니다. 이렇게 하면 제딴에는 수천백년 동안이나 그 법사(法嗣)가 끊기지 않고 전승되리라고 믿지만, 진리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어찌 이익만 없겠습니까? 실로 엄청난 피해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월당(月堂 : 1089∼1171)스님은, '한 낮에 오이밭에 물을 주어서 도리어 오이덩굴을 죽이는 격이다'라고 비유하시기도했고, 석실(fil : 1293N1389)스님의, '겨드랑이를 부비고 신선이 되려고 깃털을 꽂는 격이다'라는 나무람이 승가(僧伽)의 속담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되려고 스스로 뉘우치지 않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옛날 운문(雲門)스님은 목주(睦州)땅의 도명(道明)스님으로부터 법(法)을 얻었읍니다. 그런데 도명스님은 운문스님을 끝내 설봉(雪峰)스님의 법을 계승하게 했읍니다. 그래서 총림에서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읍니다. 또 자수(慈受)스님은 장산(莊山) 땅에서 불감(佛鑑 : 1059∼1117)스님을 친견했는데 집안에서 기이한 만남이라 하여 그 법사(法嗣)를 바꾸려 하자, 불감스님은 끝내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총림에서는 이것을 매우아름다운 일로 돌리고 있읍니다.
 나의 도가 다른 사람에게 널리 전파되지 못할까를 염려할뿐, 법사(法嗣)가 바뀐다고 해서 무슨 흔들림이 있었겠습니까? 비유하면 동쪽에 있는 집의 등불을 붙여다가 서쪽에 있는 등불에 점화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오직 어둠을 타파하여 밝게 하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일 뿐입니다. 어찌 나의 등불이 홀러 들어온 유래에 대해서 상대방이 잘 모른다고 속좁게 그것을 따지겠읍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