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내용을 설법할수 있읍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능엄경」에서 말하기를, '내가 멸도한 후 보살이나 아라한이 말법 세상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들과 동사섭(同事攝)을 하면서도, 내가 진실한 보살이며 참된 아라한이다'라고 스스로 말하고,'부처님의 밀인(密因)을 누설하고말세의 학자들에게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오직 생명이 끝날때에 은밀하게 부촉하는 것만은 제외된다'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스승의 위치에 앉아있는 스님들을 살펴보니 여러 무리 앞에서 깨달은 연유를 말하고, 혹 배우는 시람들이 믿지 않으면 정말이라고 거듭 맹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옛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기고 후세 사람의 허망한 습속을 조장하는 듯합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이 말에는 그 유래가 있읍니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모든 조사스님들의 본전(本傳)을 뽑아 편찬할 때 반드시 그가 깨달은 연유를 우선적으로 실었습니다.
그가 깨닫던 때에는 마치 오랫동안 잊었던 것을 갑자기 기억한 것 같기도 했으며, 벙어리가 꿈을 꾸는 듯도 했으며, 오직 자신만이 알뿐 그 밖의 사람들은 알 수 조차 없었읍니다. 이야말로 스스로 몸소 증득한 삼매(三昧)이기 때문에 입을 막고 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어찌 들오리〔野鴨〕에게 묻고, 포모(布毛)를 불며, 도화(桃花)를 보고, 뿔로 만든 피리〔畵角〕를 듣는다는 따위의 허깨비 같은 말이 있을 수조차 있겠읍니까! "
대체로 이런 말이 있게된 데에도 그 까닭이 있읍니다. 그것은 스승이 따져 물어서 마지못해 그렇게 대답한 경우도 있고,혹은 어떤 경계를 굳이 설명하자니 그렇게 한것이며, 혹은 증오한 깨달음이 전혀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오랜 뒤에 그렇게 대답하기도 했으며, 혹은 그 당시에 나쁜 소문이 나돌지 못하도록 하려고 그런 말을 하기도 했으니, 모두가 어쩔 수 없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깨달은 것을 걸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그런것도 있읍니다만, 이미 깨달은 대열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뒷받침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도 있읍니다. 다만 아주 비밀스럽게 감추어 걸으로 드러나게 하지 않으려고 했었을 뿐입니다.
정말 도를 체득한 분들은 일찌기 깨달았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산속에 훌륭한 옥(玉)이 묻혀있는데도 겉에는 그저 초목만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과도 같고, 또 연못에 보배 구슬이 들어 있는데도 걸으로는 그저 파도와 물결만 출렁이는 것처럼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진짜 깨달은 스님〔本色宗匠〕은 자신이 체득했다는 사실을 구차하게 끌어들여 남들이 믿어주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또한마음을 내고 사념을 요동하면서까지 기연(機緣)을 교묘하게 만들어서, 그 당대의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나아가 후배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대의 능력에 알맞게 자세히 지도하다가 혹 제자들이 믿지 않더라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실로 생멸심을 망령되이 내어서는 절대로 삼매(三昧)를 바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깨닫는 이치를 어찌 비밀스럽다고만 하겠으며, 또 어찌 누설했다고만 할 수 있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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