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심의 현량(現量)이란 무엇인가?
화복의 싹도 자기마음에서 트는데, 증오와 사랑인들 어찌 다른 곳에서 오겠는가? 한 때에 발생한 번뇌는 3세(三世)를 통하여 나타나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소멸하지 않고 털끝만큼도 빗나가지 않는다. 일대장교(一大藏敎)에서는 과(果)를 들어 인(因)을 밝혔는데, 모두가 자기 마음의 현량(現量)으로서 한 법도 마음 밖에 다른 곳에서 온 것이 없다. 도인은 생각마다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하여 그것의 형상은 물론 그림자도 구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옛날보다 밝고, 미래세가 다하도록 뚜렷하여 다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능엄경>에는, "새어나감이 없는 진정(眞淨)이다"고 하였다. 그러니 어찌 이 가운데서 다른 무엇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그 때문에 옛 스님들은 이것을 금강보검(金剛寶劍)이라고도 했고, 청정태허(淸淨太虛)라고도 했다. 그 칼(劍)은 베지 못하는 물건이 없고, 허공은 모든 장소를 포섭한다. 한량없는 광명을 지닌 여래의 몸(大光明藏)은 본체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밖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불조는 이것을 깨달아 잘못된 생각을 단박에 비웠고, 중생들은 이것을 몰라 허망하게 알음알이를 좇는다. 그래서 3계(三界)가 생기고 만법(萬法)이 이루어지며, 생멸거래(生滅去來)의 모습이 복잡하게 생기며, 복과 재앙을 받는 이치가 분명해진다. 이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자기 마음의 현량(現量)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복을 좇고 화를 피하려는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싫은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취하려는 감정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허망한 견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업(業)은 더더욱 많아진다. 세속의 사람으로서 세상의 그물에 아교를 붙인 것처럼 딱 붙은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용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욕의 그물을 찢어버리고 출가한 자 면서도 알음알이를 좇는 것을 그만두지 못한다면 책망당해야 할 것이다. 「능엄경」에서도, "미친 마음이쉬지 않았으나, 일단 쉬었다 하면 보리(菩提)이다"고 하였다. 이는 교종에서 하는 질책이다. 언어.문자의 가르침으로 책망한 것이다.
반면에 달마스님은 말씀하시기를, "외부로는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이 헐떡이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고덕스님들도, "불법을 배울 것이 아니라,
마음 쉬기를 힘쓸 뿐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선종의 질책이다. 4무량심(四無量心)· 6도(六度))·만행군선(萬行群善))·37조도품(三十七助道品)등은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으로, 우수한 것이 못한 것으로 바뀌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모두가 훌륭하고 정교한 방편을 써서 책망한 것이다.
바로 마음의 본체를 말해보자. 쉼(歇休)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벌써 황금가루가 눈에 들어간 격이다. 그런데 어찌 우열경중을 더 의론할 것이가?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중생들이 제 마음의 현량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드디어 화성(化城)의 방편을 써서 중생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심(自心)이란 무엇이고, 또 현량(現量)이란 무엇인가? 자심(自心)이란 불조가 증오한 본래부터 있던 원만한 보리의 본체이다. 그리고 현량(現量)이란 중생이 식(識)의 변화에 따라 집착하여 도저히 바꾸어 줄 수 없는 견해이다.
어떤사람이 물어왔다.
"어떻게 이를 버려야 합니까?"
내가 대답하였다.
"버리려 해서는 안됩니다. 일부러 버리려 하면, 버리려는 자취와 함께 현량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장자(莊子)는, '죽은 뒤 점치는데 쓰이는 신성스런 거북이가 되어 호강하느니,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자유롭게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이 낫겠다'고 비유하였읍니다. 믿는 마음이 확고하고 참구를 그치지 않아 확연하게 개오(開悟)하면, 자심(自心)의 현량이 모조리 사라져 도리어 자각한 성지(聖智)로 됩니다. 이것은 마치 미혹했을 때는 황금을 구리로 잘못 알다가, 깨닫고 나서는 그것이 황금이지 구리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아는 것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구리라고 잘못 알았지만, 그것은 본래부터 황금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자각한 성지이며, 본래 황금인 것을 구리라 생각하는 것이 자심(自心)의 현량(現量)입니다. 달마스님은 「능가경」 한 권의 요의(要義)를 지니고 직지(直指)의 마음에 그대로 계합하여 현량을 버렸읍니다. 그리하여 재앙을 재앙으로 여기고 복을 복으로 여기는 자취를 모두 용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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