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
알음알이(情)란 대체 어떠한 것인가? 알음알이란 집착해서 바꾸기 어려운 허망한 견해이다. 알음알이가 있는데도그것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고, 집착이 있는데 알음알이가 없을 수 없다. 알음알이에 집착하는 까닭은 바로 미망(迷妄) 때문이다. 이러한 미혹의 대상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자성(自性)이다. 이 자성을 미혹하여 알음알이가 된다. 중생이 알음알이로 집착하는 것에는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같은 점은 증오과 사랑이 그런 것이고, 다르다는 것 또한 증오와 사랑이 그런 것이다.
생각하는 견해의 차별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모두 한결같을 수는 없다. 예컨대,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은 동쪽을 집착하여 옳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향하는 대상이 모두 동쪽일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서쪽을 집착하여 옳다고 한다면 향하는 대상이 모두 서쪽일 것이다. 동쪽에 집착하여 옳다고 하는 자는 매양 서쪽을 비난하고, 서쪽에 집착하여 옳다고 하는 자는 자기가 비난받는 것을 모른다. 또한 동쪽을 고집하는 자는 서쪽으로 향해 있는 사람이 자기의 동쪽을 가리키며 잘못이라고 하는 것을 모른다. 그는 동쪽으로 가면 갈수록 스스로 옳다고 더 믿어 상대방을 더욱 비난한다. 서쪽을 고집하는 자도 이와 같다. 두사람의 고집은 서로 부수지 못하는 창과 방패와 같다. 이것을 서로 부수지 못한다면 천하의 시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세상에 나와 이를 구제하려 하였다. 말씀과 가르침을 베풀어 시비를 가리는 마음을 해결하고, 알음알이를 따르는 중생들을 교화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성인의 가르침도 그 자취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시비가 더욱 성해졌던 것을 어찌하겠는가?
옛부터 유·불·도(儒佛道) 3교(三敎)가 정립해서 서로 헐뜯었던 것도 각각 자기 파만이 옳다고 주장하여 시비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베푸신 교화는 만법이 모두 한 마음일 뿐이며, 한 마음이 바로 만법이라고 했다. 만법의 측면에서 교(敎)라 하였고, 한 마음의 측면에서 선(禪)이라 한 것이다. 이렇게 명칭은 항상 서로 달랐지만, 그 본체는 항상 같았다. 교(敎)는 문자를 매개로 하였지만, 선(禪)은 문자를 매개로 하지 않았다. 그 까닭을 살펴보면, 선(禪)은 알음알이의 미망(迷妄)을 타파하여 신령한 근원자리인 일심(一心)으로 들어가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문자를 매개로하느니, 문자를 떠났느니 하는 집착을 떠나지 못해서 결국 교와 선이 얼음 과 재처럼 겉돌았다. 문자를 떠났느니, 문자를 매개로 하느니 하는 두 주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교가 교가 아니고, 선이 선이 아닌 경지에 이르러서는 성인이라 해도 옷깃을 여미고 그 앞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다.
또 불성(佛性)의 이치(性理)를 매일 직접 수행하면서도 시비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고 있다. 평소부터 교리(敎理)에 어두운 사람에게 그가 집착 했던 것을 끊어버리고 시비를 따르지 말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마치 배고픈 사람 앞에 밥을 갖다놓고는 그 밥을 먹지 말라고하는 것과 같다. 고덕스님들의 훈계에, "다른 사람의 잘못과 나의 옳음을 들추지 않으면, 자연히 아랫 사람은 윗 사람을 공경하고 윗 사람도 아랫 사람을 공경하며 서로 존경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불법은 시시때때로 드러나고, 번뇌는 그때그때마다 사라지리라"고 한 말씀이 있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이다. 그런데도 그 교훈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까닭은 알음알이가 있어 상대방의 시비를 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데, 집착을 끊는데는 알음알이를 없애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고, 알음알이를 없애는 데는 본성을 깨닫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본성을 깨닫고 나면 알음알이는 굳이 없애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지며, 알음알이가 없어지고 나면 시비에 대한 집착은 봄날 서리가 밝은 햇빛에 녹아내리듯 하리니, 교화가되지 않을 이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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