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간록林間錄

임간록(林間錄) 서(序)

쪽빛마루 2015. 1. 3. 11:08

임간록(林間錄) 서(序)

 

 

 혜홍 각범(慧洪覺範 : 1071~1128)스님은 운암(雲庵) 노스님에게서 자재삼매(自在三昧)를 얻었기에 문필계에 자유롭게 노닐 수 있었는데, 그 곳에서 읊고 나누었던 모든 이야기는 아름다운 문장이 되었다. 또한 산림의 스님들과 손을 맞잡고 나눈 법담은 모두 옛 큰스님의 고고한 행실, 총림의 유훈(遺訓), 많은 불보살들의 묘한 종지, 그리고 훌륭한 이들의 한담(閑談)등이었다. 스님은 그러한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기록하여 10여년 사이에 3백여 가지를 수집하였다.

 당시 스님을 따르던 본명(本明)스님은 겉으로는 엉성한 듯하나 속은 매우 꼼꼼하고 날카로운 분이어서 틈틈이 각범스님의 기록들을 상 · 하권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이를 「임간록(林間錄)」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글은 기록한 순서대로 되어 있을뿐 시대순으로 정리하지는 않았다. 또한 어거지로 조작해낸 것이 아니라 대화속에서 나온 내용이므로 문장이 자연스럽고 평이(平易)하여 까다롭거나 어려운 부분이 없다.

 사람들은 본명스님에게 이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님이 가는 곳마다 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법석을 이루었다. 이에 본명스님은 글씨가 마모되거나 베껴쓰는 과정에서 진본과 틀리게 될까 걱정한 나머지, 이를 간행하여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글 자체가 흉년의 기장[黍]이나 겨울의 솜옷처럼 불교문중에 귀중한 도움이 되는데 굳이 내가 서문을 쓴 뒤에야 후세에 길이 전하여지겠는가? 원컨대 이 글을 빌어 오래오래 전하고자 할 뿐이니, 이 점이 내가 잠자코 있으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이유이다.

 옛날 악광(樂廣 : 晋人)은 청담(淸談)은 잘하였지만 문장력이 좋지 못하여 반악(潘岳 : 字  安仁, 문장가)에게 글을 부탁하면서 먼저 2백 마디로 자기의 뜻을 써 달라 하였는데 반악은 그의 뜻대로 그것을 정리하여 명문장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은, “만일 악광이 반악의 문장을 빌지 아니하고, 반악이 악광의 뜻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한다.

 그러나 오늘날 각범스님은 법담과 문장에 있어서 앞서 말한 두 사람의 장점을 한 몸에 겸비하였다. 무슨 까닭일까? 대부분 깊고 치밀한 생각을 가진 문장가라 해서 반드시 아름다운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고, 아름다운 재주가 있는 자라 해서 반드시 깊고 치밀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도를 체득한 자만이 편견과 집착을 여의고 안정과 혼란을 다 녹여 마음이 맑은 거울 같으므로 사물을 대하면 그대로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고 붓 가는대로 글을 써도 어느 곳에서나 진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범스님이 두 사람의 장점을 겸할 수 있었던 까닭은 도를 체득하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사람이라면 도를 몰라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범스님의 이름은 혜홍(慧洪)이며, 균양(筠陽) 사람이다. 지금은 임천(臨川) 북쪽 경덕선사(景德禪寺)에 주지로 있는데, 이는 현모각 대제(顯謨閣待制) 주공(朱公)의 청을 사양할 수 없어 부임한 것이다.

 

대관(大觀) 원년(1107) 11월 1일,

임천 사일(臨川謝逸)이 찬(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