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도인이 도를 보이는 요체/ 자명(慈明)스님
자명(慈明) 노스님은 호방한 성품에 격식을 중시하지 않아 사람들은 그가 범인인지 성인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웠다.
처음 남원산(南源山 : 廣利禪院)을 떠나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가 은쟁반을 드리면서 장수하기를 축원하니, 어머니는 은쟁반을 땅에 내동댕이치면서 스님을 꾸짖었다.
“네가 젊어 행각승이 되었을 때는 허름한 바랑을 메고 다니더니, 지금은 어디서 이런 물건을 얻어왔느냐? 나는 네가 나를 제도해 주기를 바랐는데 도리어 나를 지옥의 밑바닥에 넣으려 하느냐?”
그러나 자명스님은 아무 부끄러운 빛 없이 천천히 은쟁반을 집어들고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사숙인 신정 홍인(神鼎洪諲)스님을 만나러 갔다. 홍인스님은 수산 성념(首山省念 : 926~993)스님의 법제자로서 총림에 명망이 높았으며 산에 산 지 30년 동안 그림자가 산문 밖을 내려오지 않았으니 여러 선림에서 그 의지를 당할 자가 없었다.
스님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홍인스님의 조카라고 자칭하니 대중들이 다 웃었다. 홍인스님이 사람을 시켜 스님에게 물었다.
“장로는 누구의 법제자요?”
“나는 분양 선소(汾陽善昭)스님을 친견하였소!”
홍인스님이 의아하게 생각하여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마치 강물 흐르듯 유창하게 대답하자 매우 기특하게 생각하였다. 때마침 도오산(道吾山) 주지 자리가 비어 선지식[大禪伯]을 주지로 맞이하려 한다는 관아의 공문이 있었다. 이에 홍인스님은 자명스님을 부름에 응하도록 하니 상중(湘中)지방의 선승들이 명성을 듣고 모여들어 스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생각컨대, 자명스님은 무너져가는 임제종의 도를 다시 일으켜 세운 스님인데도 평소에 그처럼 소탈하고 얽매임이 없었으니, 만일 홍인스님이 아니었다면 곡천(谷泉)스님과 같은 기승(奇僧)의 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인이 도를 보이는 일은 헤아려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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