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황룡 혜남(黃龍慧南)선사
/ 1002~1069
스님의 법명은 혜남(慧南)이며, 자명(慈明)스님의 제자로 신주 장씨(信州章氏) 자손이다. 회옥산(懷玉山)에서 출가하여 처음 늑담 회징(泐潭懷澄)스님에게 인가를 받았다. 그 뒤 스님들을 거느리고 여러 곳에 기개를 자부하고 다니다가 우연히 운봉 문열(雲峯文悅)스님을 만나 그와 함께 서산(西山 : 雙峰寺)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운봉스님이 늑담스님에게서 전수받은 종지가 무엇이냐고 묻자 스님은 그 요지를 말해 주었다. 그러자 운봉스님이 말하였다.
“늑담스님이 전수한 바는 마치 약으로 쓰는 수은(水銀)과 같아서 장난거리는 될 수 있어도 대장간 풀무에 넣으면 금방 녹아버린다. 그대가 이 대사(大事)를 해결하려 한다면 자명스님을 친견해야 할 것이다.”
스님은 버럭 화를 내며 운봉스님에게 베개를 던졌으나 운봉스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에 스님은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였다.
“문열스님은 취암사(翠巖寺)의 스님인데 나에게 자명스님을 친견토록 하니, 설령 나에겐 얻은 바 있다 하여도 문열스님에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날이 새자마자 길을 떠났는데 도중에 자명스님이 이제는 절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서 가지 않고 마침내 복엄사(福嚴寺)에 머물게 되었다. 복엄사의 주지 현(賢)스님이 그에게 서기(書記)를 맡겼는데, 현스님이 죽자 그 고을 군수는 자명스님에게 주지자리를 잇도록 하였다. 이에 스님이 말하였다.
“문열스님이 나에게 그를 만나라고 하더니만 이제는 여기 앉아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구나.”
멀리서 자명스님이 오는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과 용모가 모두 엄숙해 보였다. 만참법회에서 자명스님이 여러 총림의 삿된 견해를 통렬히 비판하자 스님은 “대장부가 이 대사를 해결하려 하는데 어찌 가슴속에 의심을 남겨두랴”하고는 향을 들고 가서 가르침을 구했다.
자명스님은 말하였다.
“서기는 스님들을 거느리고 행각한 일이 있으니 함께 앉아 이야기해 볼 만하다.”
그리고 시자를 시켜 의자 앞으로 나오도록 하였으나 스님은 굳이 사양하였다. 그러자 자명스님이 스님에게 말하였다.
“서기는 운문종의 선(禪)을 배웠으니 아마도 그 종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운문스님이 동산 수초(洞山守初)스님에게 몽둥이 석 대를 때리겠다 하였는데 몽둥이 석 대 맛을 보는 것이 합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
“몽둥이 맛을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자명스님은 얼굴빛을 굳히며 말하였다.
“몽둥이 소리만을 듣고서 매를 맞는 것이 합당하다 한다면 아침나절부터 저녁까지 까마귀 까치 우는 소리, 종소리 목어소리 북소리 운판소리 따위를 듣고서도 몽둥이 맛을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몽둥이 맛을 보는 언제쯤이나 그만두게 되겠는가?”
스님은 얼굴이 달아오르며 비지땀을 흘렸는데 그리고 나서 마침내 깊은 뜻을 깨치게 되었다.
뒷날 스님은 황룡산에 머물면서 부처님 손, 나귀 다리, 태어난 인연[佛手 · 驢脚 · 生緣) 이 세 가지 화두로 학인을 시험하였는데 이를 ‘황룡3관(黃龍三關)’이라 하며, 또한 ‘뿔난 호랑이 자명[角虎慈明]’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찬하였다.
석상산의 뿔난 호랑이
그 눈빛은 저 먼곳까지 뒤흔드는 위엄이 서려 있네.
石霜角虎 眼光搖百步之威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명월주(明月珠)와 야광주(夜光珠)를 어두운 곳에 던져버리니
칼을 어루만지며 찾지 않는 이가 없도다.
찬하노라.
회옥산에서 경전을 배우다가
휴지더미를 뚫고 나오니
천지를 가득 메운 담력은 치솟아오르고
강호 가득히 납짝머리 남스님[南扁頭]이라는 명성이 자자하였네
베개를 던져 운봉스님을 때리고
수은이 풀무에 들어가면 녹는다는 말 이상히 여겼으며
가슴속 의심을 풀어달라 자명스님에게 묻다가
뼈아픈 몽둥이 소리듣고 맛보는 것이 합당하단 말 부끄러워했네
방회 감사(監寺)의 밤송이 화두와 함께
10년을 동참하였고
족보 없는 회징스님에게 쓸모없는 인가를 받아
반생애를 굴욕당하였네
네거리에 앉아 물건을 팔면서
비녀며 귀고리를 잃어버려도 찾을 맘 없고
‘3관’으로 학인을 시험하니
부처님 손, 나귀 다리를 가까이 하면 넋을 잃는다
뿔돋힌 호랑이의 눈을 빼앗으니
멀리까지 쏟아지는 그 빛의 위엄이여
황룡의 코를 떨치니
그 기세는 깊은 늪에 움츠린 용을 깨웠어라
이른바 임제의 대를 이어댔다 하리니
고금을 비춤이여! 명월주, 야광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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