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12. 보각 조심(寶覺祖心)선사 / 1025~1100

쪽빛마루 2015. 2. 7. 08:07

12. 보각 조심(寶覺祖心)선사

      / 1025~1100

 

 스님의 법명은 조심(祖心)으로 황룡 혜남스님의 법제자이다. 남웅(南雄)사람이며 속성은 오씨(鄔氏)다. 어려서 유학을 익히다가 19세에 실명하였으나 모친의 기도로 다시 눈이 밝아진 뒤 출가하여 시를 지어 바치고 스님이 되었다. 처음엔 운봉 문열(雲峯文悅)스님을 찾아뵙고 3년을 머물다가 다시 황룡스님에게 귀의하였다. 거기서 4년이 지났으나 들어갈 길을 몰랐다가 하루는 뜨거운 물을 부어 손을 씻는데 느껴지는 것이 있었지만 계기가 트이지 않았다. 그 후 석상산(石霜山)에 머물면서 「전등록(傳燈錄)」을 읽는 중이었다.

 그 중에서 “한 스님이 다복(多福 : 唐末人, 趙州스님의 법을 이음)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다복스님의 한 떨기 대(一叢竹)입니까?’ ‘한 줄기 두 줄기는 기울어 있느니라.’ ‘잘모르겠습니다.’ ‘세 줄기 네 줄기는 굽었느니라.’...” 한 구절에서 단박에 두 스님의 손 털어버린 경계[垂手處]를 보게 되었다.

 그 후 황룡스님이 입적하자 뒤를 이어 주지가 되었는데, 스님은 제자들이 입실하면 으레 주먹을 들어올려 보이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주먹이라고 하면 촉(觸 : 대상에 부딪치는대로 마음을 내는 경계)이요, 아니라 하면 배(背 : 사실과 틀림)가 된다.”

 대중 가운데에 이 뜻을 깨친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무진거사 장상영(張商英 : 1043~1121)이 스님을 찾아뵙고 송을 지어 올렸다.

 

소문도 자자하던 황룡산의 용을 보자 했더니만

와서 보니 산에 사는 늙은이 하나뿐

배니 촉이니 하는 그 주먹 말고

척추골에 통하는 한 점을 알아야 하리

久嚮黃龍山裏龍  到來只見住山翁

須知背觸挙頭外  別有靈犀一點通

 

 당시 여러 총림에서는 이 송을 보고서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지만 대혜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늦게사 송을 보았는데 애석하게도 무진거사는 벌써 죽어 버렸고, 그가 ‘배니 촉이니 하는 그 주먹 말고 척추골에 통하는 한 점을 알아야 하리’ 하였는데, 이 송으로써 회당(晦堂 : 조심의 호)스님의 경지를 엿보려 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동떨어진 일이 아니겠느냐?”

 

 영원 유청(靈源惟淸 : ?~1117)스님은 스님의 초상화에 찬을 썼다.

 

황룡 3관을 거슬러 쳐부수니

현묘한 기틀은 영취봉을 뛰어넘고

한 주머 들어 보이시니

황룡봉에 알몸을 드러내셨네

소문엔 부귀를 누린다 하더니만

막상 와서 보니 가난뱅이로구나

늙은 나이에 미련없이 귀거래사를 불러

사람들에게 ‘산에 사는 늙은이’라 부르게 했네.

三關逆摧  超玄機於鷲嶺

一挙垂示  露赤體於龍峯

聞時富貴  見後貧窮

年老浩歌歸去樂  從敎人喚住山翁

 

 황노직(黃魯直 : 黃庭堅)이 그의 찬을 듣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무진거사가 말한 ‘척추골에 한 점...’은 철부지 개구쟁이가 허공에 귀를 기울이는 이야기이다. 그 때문에 영원스님이 찬을 지어 조금이나마 분을 풀은 것이다.”

 내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한 글자도 보태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이다.

 

 황산곡(黃山谷 : 黃庭堅)이 스님을 찾아뵙자 스님은 물었다.

 “공자의 말씀에 ‘내가 숨긴 게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숨긴 게 없다’ 하였는데 무슨 말이오?”

 황산곡은 여러 가지로 대답했지만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하루는 우연히 함께 거니는데 뜨락에는 꽃향기가 그윽하였다. 또다시 물었다.

 “이 계수나무의 꽃향기를 맡으셨소?”

 “예.”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숨긴 게 없다.”

 황산곡은 이 말끝에 느끼는 것이 있었다.

 

 사심오신(死心悟新 : 1043~1114)스님이 찾아오자 스님은 주먹을 세워 보이는 화두를 참구하도록 하였다. 2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뜻을 알았는데 스님은 오히려 그의 막힘없는 논변을 근심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날카로운 문제에 이르자 스님은 갑자기 말하였다.

 “그만, 그만! 밥 이야기를 한다고 배가 부르겠느냐?”

 그러자 사심스님은 말이 군색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는 이제 활도 부러지고 화살도 다 없어졌으니 스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안락한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한 티끌이 날아도 하늘을 가리우고 한 띠풀이 떨어져도 땅을 뒤덮는 법이다. 안락한 곳에서는 바로 그대의 숱한 잡동사니를 꺼려 하니 무량겁 내려온 도적마음을 당장에 죽여야만 한다.”

 사심스님은 그 길로 달려나가 말없이 아랫자리[下板]에 앉아 있었는데 때마침 지사(知事)가 행자를 때리는 소리를 듣고서 갑자기 크게 깨치고 선사에게 달려왔다. 이에 한 쪽 신발을 신도 있다는 것마저 잊은 채 방장실로 들어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천하사람들이 모두 배우려 하는 것을 나는 깨달았노라.”

 스님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부처를 뽑는 과거장[選佛場]에서 장원급제를 하였으니 누가 그대를 당할 수 있으랴.”

 

 초당 선청(草堂善淸 : 1057~1142)스님이 참방하자 스님은 육조의 바람과 깃발[風幡] 화두를 들어 그에게 물었는데, 초당스님은 깜깜하여 들어갈 곳을 몰랐다. 때마침 고양이 한 마리가 곁에 있었는데 스님은 고양이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대는 저 고양이가 쥐 잡으려 할 때의 모습을 보았는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네 발은 땅에 버틴 채 꼼짝하지 않는다. 모든 촉각을 곤두세워 머리에서 꼬리까지 쭉 곧게 있다가 갑자기 쥐를 덮치면 잡히지 않는 적이 없다. 그대가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마음에 다른 인연이 없어지고 6근(六根)이 저절로 고요해진다. 이처럼 묵묵히 참구하면 만에 하나도 잘못될 일이 없을 것이다.”

 초당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쳤다.

 

 영원스님이 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현사 사비(玄沙師備)스님의 어록을 읽다가 피곤해져서 경행을 하는데 걸음을 재촉한 나머지 신발이 벗겨졌다. 엎드려 신발을 줍다가 크게 깨치고 스님에게 아뢰니 스님은 말하였다.

 “인연을 따라 깨친 사람은 영원히 퇴보하거나 잘못되는 일이 없다.”

 황산곡은 이에 대하여 “황룡스님의 자손은 하늘에 떠있는 해같고 달같다” 하고는 또 말하였다.

 “뿔난 짐승이 많으나 기린 한 마리면 족하다.”

 

 찬하노라.

 

본색이 산에 사는 늙은이가

주먹 하나로 배(背)와 촉(觸)을 구분했네

 

사방을 꿰뚫어보는 눈은 봉사가 되었다가 또다시 밝아지고

집안에 가득한 책을 모조리 버린 채 다시는 읽지 않았지

 

단비 안심(斷臂安心 : 달마스님과 혜가스님의 기연)의 은밀한 뜻을 깨달아

맨손을 뜨거운 물에 씻었으며

부처님 손, 나귀 다리의 험난한 관문을 꿰뚫어

고준한 기봉(機鋒)으로 화살촉을 씹었네

 

산 채로 황산곡을 묻어버리니

암자 앞 계수나무 꽃향기 원근에 가득하고

다복스님 친견했을 때

울타리 대줄기는 굽은 것과 비스듬한 것으로 나뉘어 있었네

 

티끌이 날아 하늘 가리니 쓸어 없애기 어려운데

쓸모없는 잡동사니는 가슴속의 장애이기에 절대 금기하고

고양이 쥐 잡음에 잽싼 솜씨 다하여 서툰 짓이 생겨나니

궁색스런 기량에 그 누가 눈 흘기랴

 

인연따라 깨달으면 잘못이 없다고

영원스님 죽이나니 무딘 칼이 명검보다 낫구려

부처 뽑는 과거장에서 장원급제하였다고

사심스님에게 내려준 약은 비상보다 독하였네

 

야반삼경 푸른 연못에 차갑게 비쳐오는 달빛은 없었지만

옥도끼를 정교히 다듬어 만들고

따뜻한 봄날 맑게 타는 백설곡의 선율이 끊겼으나

봉황새 울음이 아교되어 끊긴 줄을 몸소 잇노라

 

황룡스님의 자손으로 하늘에 빛나는 해와 달이시니

헤아려 알 길이 없으며

뿔 달린 짐승이 많다 해도

한 마리 기린이며 그것으로 충분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