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14. 보녕 인용(保寧仁勇)선사

쪽빛마루 2015. 2. 7. 08:10

14. 보녕 인용(保寧仁勇)선사

 

 스님의 법명은 인용(仁勇)이며, 사명 축씨(四明竺氏) 자손이다. 어려서는 천축교(天竺敎 : 천태학)를 익히다가 옷을 바꿔 입고 설두(雪竇)스님을 찾아갔다. 설두스님은 한참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더니만 혀를 차며 꾸짖었다.

 “허우대만 멀쩡한 강사로군!”

 스님은 매우 언짢고 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 설두산을 바라보고 3배한 뒤 맹세하였다.

 “내가 이생에서 행각 참선하여 나의 명성이 설두스님만 못하다면 결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그 길로 곧장 양기(楊岐)스님을 찾아가 종지를 깨치고 보녕사(保寧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아가 도가 총림에 널리 알려지니 그의 말과 같이 되었다.

 

 스님은 운개 혜옹(雲蓋慧顒)스님에게 송을 올렸다.

 

지팡이 뽑아드니 가로세로 길이 트이고

온 누리에 맑은 바람 솔솔솔 불어오네

북두성 비스듬한 자루 가볍게 굴려서

당나라 사람들을 꼼짝없이 눈멀게 하였네.

拈將櫛栗路縱橫  大地淸風颯颯生

北斗柄斜輕撥轉  大唐人眼直須盲

 

 상당하여 말하였다.

 “하나는 하나, 둘은 둘, 셋은 셋, 넷은 넷이다. 숫자의 눈금은 몹시 분명하고 아래 위 차례대로 있는데 그 차례대로라면 무슨일이 있는가?”

 주장자로 금을 하나 쭉 그으면서 말을 이었다.

 “대중이여! 60갑자(六十甲子)가 한꺼번에 흐트러졌다.”

 

 입춘(立春)날 상당하여 말하였다.

 “입춘에 봄 소를 때리니 한 대, 두 대, 천 마리, 만 마리.... 눈송이 깊이 덮여 꽃인지 눈인지 분별하기 어려운데 정수리에 눈 있다고 부질없이 유유(悠悠)하구나.”

 손뼉을 치면서 말하였다.

 “라라라, 마음 어지럽히는 봄바람 끝끝내 그치지 않네.”

 

 상당하여 말하였다.

 “나뭇가지엔 바람이 울고 비는 흙덩이를 부숴뜨리는데 새벽녘 꾀꼬리소리 베갯머리에 부서지고 청개구리 지렁이마저 함께 울어대는구나. 묘덕 공생(妙德空生 : 대중승)은 깨치지 못하고 모두 깨치지 못한 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아리땁고 아름답게 하늘하늘 날아갈듯 남북으로 동서로 배꽃 오얏꽃 꺾어들고 한 송이 두 송이 가슴에 달았구나.”

 

 목동송(牧童頌)을 지었다.

 

하늬바람 드넓은 초 땅의 가을

쓸쓸하여 사람 없는 들 나루터에

늦게사 차아온 물새들 모두 흩어지니

음매하고 우는 소리에 거꾸로 소를 타고 돌아가노라.

西風浩浩楚天秋  索寞無人野渡頭

沙鳥晩來俱散盡  鳴咿歸去倒騎牛

 

 진천 수재(陳遷秀才)에게 화답시를 보냈다.

 

원숭이 새끼들 가장 또록또록 하여

천년 묵은 귀신의 눈동자를 가지고 놀지만

고뇌라면, 상을 볼 줄 모르고

때로는 내게 와서 머리를 밟고가는 것이라네.

胡孫兒子最惺惺  愛弄千年鬼眼睛

懊惱不知能要相  有時來我頂頭行

 

 찬하노라.

 

집은 사명 땅인데

보령사에 머무시며

 

귀신 눈동자 가지고 사람을 만나면 놀려주고

기량을 다해 곳곳에 베풀어 보였네

 

몽둥이로 봄 소를 때리며

깊이 덮인 눈과 꽃을 구분하기 어렵다 하고

 

지팡이 끝에 북두성 걸어놓고

당나라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였구나

 

새벽녘 베개머리에 지저귀는 새소리 그윽히 맴도는데

배꽃 꺾어 한 송이 두 송이 가슴에 달고

들 나루터 물새 모두 흩어진 곳에

음매하는 소울음소리 서너 마디 들리는구나

 

노린내나는 달마 늙은이 가리키며

짚신신고 그의 배 위로 지나가겠노라 하고

진천수재를 원숭이라 욕하며

상(相)보아 달라 하니 내 머리 위를 밟고 간다 하였네

 

엉터리 순라꾼이

60갑자를 반지 위에서 한꺼번에 흩어버리고

겉만 멀쩡한 좌주는

천태교 뒤꿈치 아래 열십자로 이리저리 오가네

 

천하를 활보할제 설두스님과 함께 달렸고

맨주먹 휘둘러 양기스님의 허물어진 집을 지탱하였네

 

수은은 가짜없고 아위(阿魏 : 약초)는 진짜 없어

그 아무도 값을 더 주려 하지 않으니 방회사형과 타합해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