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진정 극문(眞淨克文)선사
/ 1025~1104
스님의 법명은 극문(克文)이며, 황룡스님의 법제자로 관서 정씨(關西鄭氏) 자손이다. 스님은 위산(潙山)에 살 때, 어느 날 밤 운문스님의 어록을 읽다가 “한 스님이 ‘불법은 마치 물 속에 비친 달과 같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라고 물으니 운문스님은 ‘맑은 물결은 뚫고 갈 길이 없느니라’고 대답하였다”는 구절을 읽고 느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기세가 등등해졌고 여러 총림에서는 스님을 포참[飽參 : 깨침이 충분하여 더 이상 스승을 찾아가 물을 것이 없음]이라 하여 그 기봉과 맞닥뜨리는 사람이 적었다. 이때 적취(積翠 : 황룡 혜남)스님의 명성이 세상에 자자하다는 말을 듣고 곧장 그곳을 찾아갔지만 적취스님은 입실(入室)과 법문[下語]을 모두 허락지 않았다. 이에 스님은 성을 내며 “내게도 깨달은 경계가 있는데 그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하며 마침내 그곳을 떠나 취암사(翠巖寺) 순(順 : 上藍)스님을 친견하자 순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적취사에서 왔습니다.”
“고향은 어딘가?”
“관서(關西) 땅입니다.”
“그대의 스승은 누군가?”
“ 북탑 사광(北塔思廣)스님입니다.”
순스님은 북탑이라는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스님이 그 까닭을 물으니 순화상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거눌(居訥 : 1010~1070) 사숙(師叔)이 오랫동안 그 분에게서 참구하였으나 그의 말씀을 깨칠 수 없었는데 내 참선을 하게 되어 찾아갔었지만 그 분은 이미 죽은 뒤였다.”
그리고 이어 물었다.
“새로 부임한 황벽산 주지를 아는가?”
“알고 있습니다.”
“어떻든가?”
“매우 훌륭합니다.”
순스님이 말했다.
“그는 한마디 긴요한 말[一轉語]를 할 수 있어 황벽산의 주지가 되었지마는 불법이라면 꿈에서도 본 일이 없다.”
스님은 이 말끝에 적취스님의 마음 쓰는 경계를 단박에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난날을 후회하고 다시 찾아가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이 마음을 순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순스님이 말하였다.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 적취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그대가 적취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
스님이 마침내 적취산으로 돌아오자 적취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취암사에서 왔습니다.”
“하필이면 내가 떠나려 할 때 찾아왔구나.”
“어디로 가시렵니까?”
“천태산에서 운력하고 남악에 유람하려 한다.”
“저도 그처럼 자유자재할 수 있습니다.”
“네 발에 신은 신은 어디에서 얻었는가?”
“여산(廬山)에서 7백 50푼을 부르기에 샀습니다.”
“언제 그대가 자재를 얻었느냐?”
“제가 언제 자재를 얻지 못했습니까?”
적취스님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도솔 종열(兜率從悅 : 1044~1091)스님이 도오산(道吾山)의 수좌로 있을 때 하루는 몇 사람의 납자를 데리고 운개 수지(雲蓋守智)스님을 찾아갔다. 수지스님은 몇 마디 주고받지 않아서 곧 종열스님의 공부를 알고 웃어버렸다. 종열스님이 가르침 받을 것[入室]을 청하자 수지스님이 물었다.
“동산 극문(洞山克文)스님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그 관서 사람은 머리가 신통치 않아 무명가사 한 벌을 끌고다니며 똥냄새나 풍기고 다니는데 그에게 무슨 훌륭한 점이 있겠습니까?”
“수좌는 바로 그 똥냄새 나는 곳에서 참구하여야 한다.”
종열스님은 그의 가르침을 따라 동산을 찾아가 스님에게 귀의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선의 요지를 깊이 깨달았다.
불안(佛眼)스님이 오조 법연스님의 회하를 떠나 귀종사(歸宗寺)에 가서 스님을 찾아뵈었는데, 그 후 오조스님이 원오(圜悟)스님에게 말하였다.
“진정스님이 큰 물결로 큰 깃발을 흔들어대는 수단이 있으니 청원(淸遠 : 불안)스님이 그곳에 갔다 하지만 반드시 서로 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
과연 며칠이 되지 않아 불안스님의 편지가 원오스님에게 도착하였다.
“요즘 귀종사에 와서 우연히 그물이 새어 고기를 놓쳤습니다. 운거 유청(雲居惟淸) 수좌가 지은 회당(晦堂)스님 진영찬(眞影贊)에 의하면 ‘소문으로는 부귀를 누린다 하더니만 만나 보니 가난뱅이구나’라고 하기에 그 말을 의심해 왔었는데 진정스님을 만나 보니 과연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한 해가 지나서 다시 오조산으로 돌아오자 대중들이 그에게 불자를 잡고 마음[心]가 성품[性]을 설하기를 청하니 오조스님이 말하였다.
“청원사형이 이와같이 선을 설하면서도 그와 관계가 없다 할 수 있는가?”
무진거사가 도솔스님을 뵙고 청소(淸素)시자의 말후구(末後句)의 일을 물은 적이 있었다. 뒤에 재상을 그만두고 귀종사를 지나는 길에 밤늦게 이야기하다가 이 이야기를 하자 스님은 버럭 성을 내며 말하였다.
“이 무슨 피 토하고 죽을 놈의 헛소리냐! 어떻게 그런 헛소리를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
마침내 무진거사는 그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였다. 그 후 무진거사가 형계(荊溪) 땅에 살 때 혜홍 각범(慧洪覺範 : 1071~1128)스님이 그를 찾아가니 무진거사가 말하였다.
“애석한 일이다. 진정스님이 이를 모르다니...”
“재상께서는 오로지 청소시자의 ‘말후구’만을 알 뿐 진정스님의 좋은 약이 눈앞에 나타났는데에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 말에 무진거사는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과연 그런 것이 있습니까?”
“정히 의심나거든 따로 참구해 보십시오.”
무진거사는 진정스님의 마음쓰는 경계를 단박에 보고 마침내 향을 올리면서 귀종사를 바라보며 후회하는 마음으로 사과하였다.
동산(東山 : 오조 법연)스님이 어느 날 스님의 법문[提唱]을 읽고 매우 기뻐하면서 원오스님에게 말하였다.
“부끄러운 말법 세상에도 이렇게 참선 선지식이 있었다니...”
스님이 여러 곳을 돌아다닐 때 두 스님과 동행하여 곡은사(谷隱寺) 설대두(薛大頭)스님의 처소를 찾자 설대두스님이 물었다.
“세 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슬기로운 이가 하나 있다 하는데 누가 슬기로운 한 사람인가?”
두 스님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였는데 스님이 맨 끝에 섰다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악! 하였다. 설대두가 주먹을 들어치려는 자세를 취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다시 시험해 보려고 수고하실거 없소.”
그러자 설대두는 지팡이를 끌고서 달아나버렸다. 설대두는 석문 자조(石門慈照 : 谷隱蘊聰의 시호)스님을 친견한 스님이다.
찬하노라.
관서 땅에 태어나
선비 의관을 벗어버리고
제방을 다니면서 기개 항상 자부했으나
바로 가리킨 도리[直指] 끝까지 캐내도 마음 편치 못하다
운몽택(雲夢澤) 8, 9백리 물을 다 삼켜도
가슴속에 티끌 하나 걸릴 것 없고
혓바닥 위에 8천리 양자강 물결이 넘실대니
모두가 큰 물결일세
적취스님 두 짚신짝 어디서 얻었느냐 물어서
기연의 활로를 드러내고
도솔스님 무명가사 걸치고서 똥구린내 풍기며
해골 냄새 맡아서 바싹 말려주었네
한 평생 큰 깃발 흔들어대며
용과 뱀이 늘어선[龍蛇陣] 위에 으뜸공신으로 책봉되고
3관(三關)에 당나귀 다리 부러져도
빠른 명마[十影馬 : 한번 뛰면 그림자 열개가 동시에 생길 만큼 빠른 말]를 타고 기마(驥馬) 무리 사이를 누비며 달린다
말후구 화두에 대해 무진거사에게 ‘의심나거든 따로이 참구하라’함은
좋은 약을 뿌려주는 일이며
한 마디[一轉語]에 황벽산의 주지가 되었지만 불법은 꿈속에서도 보지 못했다 함에
의심덩이를 깨뜨렸네
동산 노스님, 뒤에서 찬양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합장하였고
설대두스님은 면전에서 일할(一喝)을 당하고
부끄러운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짐새의 깃은 본디 독이 있고
호랑이 가죽은 원래 알록달록하니
오묘한 곳은 말하려 해도 말이 미치지 못하는데
달빛이 꽃그림자를 옮겨 난간 위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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