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원오 극근(圓悟克勤)선사
/ 1063~1135
스님의 법명은 극근(克勤)이며, 동산(東山 : 五祖法演)의 제자로 팽주 낙씨(彭州駱氏) 자손이다. 처음엔 성도에서 강론을 들었는데 범촉공(范蜀公 : 范鎭)이 시를 지어 행각을 권유하였다. 그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성도 땅은 본디 번잡스런 곳이니
여기 눌러앉음은 오직 계집과 술의 유혹 때문이로다.
成都本是繁華國 打住只因花酒惑
스님은 마침내 촉 땅을 떠나 동산스님에게 귀의하여 참구하였으나 깨치지 못하고 불감 혜근(佛鑑慧懃)스님과 함께 하직을 고하니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들이 절강(浙江)까지 가서 열병을 앓아야 그제서 나를 생각할 것이다.”
그 후 스님은 금산사에서 큰 병을 앓았고 혜근스님도 정혜사에서 병을 앓았다. 편지를 보내 서로 약속하고 병이 낳은 뒤에 다시 동산스님에게 돌아와 비슷비슷한 시기에 종지를 깨쳤다.
스님은 어느 날 불감 혜근, 불안 청원(佛眼淸遠)스님과 함께 동산스님을 모시고 밤에 좌선을 하다가 돌아가려는데 달이 없어 캄캄하였다. 이에 동산스님이 세 사람에게 각기 한마디씩 해보라 하였다.
혜근스님은 “오색 봉황새가 하늘에서 춤을 추도다” 하였고, 불안스님은 “무쇠 뱀이 옛 길목에 가로누워 있도다” 하였는데, 스님은 “발밑을 보라!” 하였다.
그러자 동산스님은 말하였다.
“우리 종문을 멸망시킬 놈은 극근이다.”
그 후에 스님은 소각사(昭覺寺)의 주지가 되었는데 남당 원정(南堂元靜)스님이 환속했다는 말을 듣고 그를 그리워해왔다. 그런데 그가 성안에서 향을 판다는 풍문을 듣고 동자를 시켜 그에게 향을 사되 향을 건네주거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고 그가 대답하는 말을 기억해 오도록 하였다. 동자가 스님이 시킨대로 물으니, 남당스님은 향을 들고 말하였다.
“이 한 봉지 향은 닷푼에 팔겠다.”
동자가 돌아와 이 말을 전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놈이 아직도 그대로구나!”
그리고는 드디어 몸소 권유하여 다시 스님이 되게 하였으며, 대수사(大隋寺)의 주지로 천거하고 이어서 소각사의 주지를 잇도록 하였다.
대혜(大慧)스님이 회하에 있을 때였다.
하루는 스님이 상당하여 ‘많은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신 곳은 어떤 곳이냐’는 물음에 ‘동산이 물 위로 간다[東山水上行]’ 하신 운문(雲門)스님의 화두를 들려주고는 말하였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많은 부처님이 나타난 곳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에게 ‘훈훈한 바람이 남녘에서 불어오니 법당 모서리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구나’ 라고 말할 것이다.”
이 말에 대혜스님은 느낀 바가 있었다. 그 후 대혜스님은 수좌가 되어 불자를 잡고 설법하였는데, 그 이튿날 시골뜨기 스님 하나가 올라와 물었다.
“어젯밤 수좌의 설법이 어떻습니까?”
스님은 손가락으로 코를 쥐어 보이고 한 차례 북을 치자 대중들이 크게 웃었다. 이에 대혜스님이 곧장 방장실로 올라가 떠나겠다고 하니 스님은 말하였다.
“어젯밤에는 3세 모든 부처님이 너에게 욕을 먹었고 육대 조사 또한 너에게 욕을 먹었는데 내가 코 좀 쥐었다 해서 네가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혜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스님은 협산(夾山)에 있을 때 설두 중현(雪竇重顯)스님의 어록에 염(拈)을 달고 「벽암록(碧巖錄)」이라 이름하였다.
「삼국지(三國誌)」에 의하면 “아들을 낳을라치면 마땅히 손중모(孫仲謀 : 孫權)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하니 유경승(劉景升 : 劉表)의 아들들은 개나 돼지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금압향송(金鴨香頌)’은 스님이 소옥의 이야기에서 깨친 게송이며, ‘석선화계(石禪花偈)’는 스님이 입적할 때 금강(錦江)에 묻어줄 것을 당부하는 글이다.
찬하노라.
소잡아 먹을 기상에
하늘을 나는 학의 정신이로다
범촉공은 번화한 곳 떠나라 권유하였고
동산 노스님은 강남에서 열병 앓아라 저주하였네
소옥아! 부르는 소리에
당나귀 안장다리가 아버지의 아랫턱인 줄 알았고
훈훈한 바람 운운하는 시구에
다람쥐 잡아보니 자기네 식구였네
동자시켜 향을 사오게 하여
남당 원정스님 붙잡아 구슬을 합포(合浦)로 돌려보냈고
청림에 흙짐지는 사람을 천거하여*
불안 청원스님 놓아주어 칼이 용진(龍津)에 뛰게 하였다
「벽암록」을 제창하여
진창을 뒤집어쓰고
소각사를 일으켜 세우니
쇠소리 옥소리가 맑게 울리네
‘발밑을 보라!’는 한마디에
종문을 멸망시키리라는 수기를 받았고
코끝을 쥐었지만
어찌 송아지를 핥아주는 마음이 없으랴
금압향(金鴨香) 불 스러질 때
취한 사람 부축하여 피리가락 울리는 총림으로 돌아왔고
석선화 꽃 필 무렵
웃음 지으며 비단같은 강가를 지나왔네
하늘이 우리 불교를 도우사
임제의 11세손으로 손궈같은 아들을 낳아주시니
설령 유경승의 여러 아들이
범을 타고 용을 타고 달린다 해도
꽃다운 뒷먼지를 따를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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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림 사건(靑林師虔)스님은 신참이 오면 하루 세 짐씩 흙을 퍼 날라오라고 시켰다. 여기서 흙짐지는 사람은 초학자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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