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남당 원정(南堂元靜)선사
/ 1065~1135
스님의 법명은 원정(元靜)이며 오조 법연스님의 법을 이었다. 낭주(閬洲)사람이며 속성은 조씨(趙氏)다. 스님이 오조스님 회하에 있을 때였다. 오조스님은 마조 도일(馬祖道一)스님의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 목주 도명(睦州道明)스님의 ‘외통수[擔板]’, 남전 보원(南泉普願)스님의 ‘고양이 목을 벰[斬猫]’, 조주 종심(趙州從諗)스님의 ‘개에겐 불성이 없음[狗子無佛性]’의 이야기를 들어 하나하나 따져 보았는데 스님의 대답은 조금도 막힘이 없었다. 그러나 다시 자호 이종(子胡利蹤 : 800~880)스님의 개 이야기를 들어 묻자 다소 주춤하였다. 오조스님은 얼굴을 돌리면서 말하였다.
“안된다!”
“안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안되면 앞서 이야기한 것도 다 안된다.”
“스님께서 자비로 가르쳐 주십시오.”
“그(자호)의 말을 들어 보아라! 그가 말하기를 ‘자호산에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위로는 사람의 머리를 물고 아래로는 다리를 물어 뜯는다. 우리 산문에 들어오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하였고, 납자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으레 ‘개 조심해라’ 하였다. 그대가 ‘개 조심해라!’ 한 말에 한마디를 던져 자호스님의 혓바닥을 굳게 하면 이 노승이 입에 자물쇠를 채워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깨친 것이다.”
스님은 닭고기를 즐겨 먹었으므로 대중들이 실어하였는데 동산스님이 이 사실을 알았다. 하루는 입실하였을 때 스님은 소매 속에 닭을 숨겨두었는데 동산스님이 이 이야기를 하면서 따졌다. 스님은 소매 속에서 닭을 내놓고 닭울음소리를 내니 동산스님도 마침내 웃고 말았다.
스님이 대수사(大隋寺)의 주지가 되었을 때였다. 예전부터 용 한 마리가 방장 침실에 살고 있어서 대대로 감히 가까이 가지도 못하였다. 스님이 그곳에 도착하여 잠을 자려 하자 주수(主首 : 절의 관리를 맡은 직분으로 主事라고도 함)가 이 사실을 아뢰었다. 스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침내 방장실로 들어가 누웠는데 침상 위에 용이 누워 있었다. 스님은 손으로 용을 밀쳐내면서 말하였다.
“이 늙은 축생아! 이 늙은 스님의 자리로 반쯤은 남겨 두어야지!”
그 옆에서 자고 깨어나 보니 용은 보이지 않고 그 뒤로 다시는 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섭현 귀성(葉懸歸省)스님에게 법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한주(漢州) 방수사(方水寺)에 주지를 하면서 게송을 지어 대중법문을 하였다.
방수사 연못에 사는 자라코 독사여!
마음먹고 상대하려 하면 야유만 하니
누가 이 뱀대가리를 뽑을 수 있나
2백년 동안 여기에 착어할 사람이 없겠네
方水潭中鼈鼻蛇 擬心相向便揄挪
誰人拔得蛇頭出 二百年無人下語
스님은 세째 마디에 착어(著語)하였다.
“방수사 연못의 자라코 독사여!”
한 스님이 물었다.
“사람은 빼앗아도 경계는 빼앗지 않음[奪人不奪境]이란 무엇입니까?”
“마왕을 사로잡아 코끝을 꿰뚫는 것이다.”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음이란[人境俱不奪] 무엇입니까?”
“대낮에 소를 타고 저자거리 한복판을 뚫고 지나가는 일이다.”
우구 거정(愚丘居靜)스님이 참구할 때였다. 스님이 향엄 지한(香嚴智閑)스님의 ‘마른 나무에 용이 우는 소리[枯木龍吟]’ 화두를 들어 이리저리 묻고 따지는 가운데 마침내 거정스님이 깨치자 이렇게 말하였다.
“차가운 바위 위에 돋아난 기이한 풀을 붙들지 말라. 흰 구름 속에 눌러앉으면 우리 종지가 묘할 것이 없다.”
거정스님이 말했다.
“그대로 칼을 휘둘러야 합니다. 만일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어부가 새 둥지에 살게 됩니다.”
스님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이 어린애가... 잘 있거라.”
그리고는 곧장 가버렸다.
석두 자회(石頭自回)스님은 대대로 석공 집안이었다. 그는 글자를 몰랐는데 출가를 동경하는 마음에 누군가에게서 「법화경」을 구전(口傳)으로 전해 듣고 마음속으로 외워왔다. 그러다가 스님에게 귀의하여 시봉을 맡았는데 하루는 스님이 그에게 돌 일을 맡겼다. 자회스님이 손에 망치를 쥐고 바위를 치면서도 쉴 새 없이 경을 외우자 스님이 말하였다.
“오늘도 탁탁, 내일도 탁탁, 돌만 때리다가 생사가 닥쳐오면 어떻게 대응할꼬?”
자회스님은 깜짝 놀라 쥐고 있던 연장을 놓고서 스님에게 절하고 깨치는 법문[究竟法]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스님을 따라 방장실에 가니, 스님은 그에게 「법화경」 외우는 일을 그만두고 조주스님이 ‘오대산 노파를 간파한 화두’를 들게 하였다. 그 후 한참 지나서 돌을 다듬다가 단단한 돌을 만나 망치를 힘껏 내려쳤는데 불똥이 탁 튀기는 것을 보고 깨쳤다. 그리고는 송을 지어 올렸다.
힘을 다해 공부했건만
깜깜하여 단서가 잡히지 않다가
불똥이 튀겨 흩어지니
원래 도는 여기에 있었도다
用盡工夫 渾無巴鼻
火光逬散 元在者裏
스님이 듣고서 깨쳤다고 인가하니 그는 다시 송을 지어 올렸다.
삼군이 움직이지 않는데도 깃발은 번득이고
오대산 노파는 바로 마왕의 다리였다
조주스님 자루없는 쇠 빗자루로
연기 티끌 모두 쓸어 찬바람이 솔솔 분다.
三軍不動旗閃爍 老婆正是魔王脚
趙州無柄鐵掃帚 掃盡煙塵風颯颯
스님이 이를 보고 수긍하여 마침내 출가하게 하였는데 그는 뒷날 세상에 나가 스님의 법을 이었다.
진운(縉雲 : 馮時行) 선생이 「석두어록(石頭語錄)」에 서문을 썼는데 이런 말이 있다.
“오조스님이 만년에 남당스님을 얻었는데 거칠고 사납기로는 극근과 청원스님보다도 더해서 하늘 땅이 좁다 하였다. 남당스님은 대수사 노스님에게 몸을 맡겼다. 자회 석두스님은 망치를 움켜쥐고 돌을 다듬던 손으로 높고 단단한 그의 도를 뚫었는데, 그 힘이 어찌나 거칠던지 일격에 뚫리고 말았다. 만년에는 조어산(釣魚山)에 앉으니 깎아지른 절벽은 스승보다도 열곱절이 더하고 그의 무서운 독약은 목구멍에 삼킬 수 없었다.”
스님은 남보다 뛰어나고 호방하였기에 동산스님은 남당(南堂)을 지어 그곳에 거처케 하였으므로 ‘남당스님’이라 불리게 되었다.
찬하노라.
뛰어난 행각승이요
타고난 몰의지(沒意智 : 사량분별이 없는 사람)라
마왕을 사로잡아 콧구멍을 꿰뚫으니
백장산 총림이 황폐할 뻔하였네
눈을 부릅뜨고 어머니 노려볼 때
음산한 바람은 숲에서 호랑이 나오듯 하고
시골뜨기 기풍이 사람들을 눌러서
대낮에 황소타고 저자거리 들어오네
방수사의 뱀대가리 뽑아내지 못하니
온 힘을 다해도 꾀를 쓸 수가 없고
자호산의 개 화두에 대답이 늦다 하여
앞서 말한 대답도 모두 잘못됐다 하였네
전단향에 쇠똥이 뒤섞여
이 한 봉지 향은 닷푼에 팔겠다 하고
깎아세운 절벽과 험한 언덕을 보고
어린아이가 작은 재주 보인 줄 알았네
닭을 삶아 먹으니 온 입에 비린내투성이요
용과 함께 잠을 자니 온몸이 흙탕이로다
소나무 끝에 갈쿠리같은 초승달을 차갑게 걸어놓고
화림봉(樺林峰)에서 몇 번이나 회포를 펴보았던가
두어 차례 향기바람 꽃소식이 불어오는데
모란병풍 펼쳐놓고 잔치한들 무슨 운치가 있을손가
보검을 휘저으니
우구 거정스님은 번갯불 그림자가 공중에 번득이고
내리치는 쇠망치에
석두 자회스님의 쇳소리는 땅에 나뒹군다
성인이다 범인이다 하는 생각이 다한 곳은
불안(佛眼)으로 찾아봐도 그 자취 없으니
포허 등씨(蒲許鄧氏 : 오조 법연)가 노스님에게
따로 요사 한 채 지어 준 일 이상치 않네.
'선림고경총서 >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 불안 청원(佛眼淸遠)선사 / 1067~1120 (0) | 2015.02.07 |
---|---|
19. 불감 혜근(佛鑑慧懃)선사 / 1059~1117 (0) | 2015.02.07 |
17. 원오 극근(圓悟克勤)선사 / 1063~1135 (0) | 2015.02.07 |
16. 오조 법연(五祖法演)선사 / ?~1104 (0) | 2015.02.07 |
15. 진정 극문(眞淨克文)선사 / 1025~1104 (0) | 2015.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