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불감 혜근(佛鑑慧懃)선사
/ 1059~1117
스님의 법명은 혜근(慧懃)이며, 오조법연스님의 법제자로 서주 왕씨(舒州汪氏) 자손이다. 처음 오조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오직 하나만이 사실이고 나머지 두 가지는 참이 아니다”는 말을 늘 음미하여 느낀 바가 있었으나 오조스님이 인가해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떠났다가 뒤에 다시 돌아왔는데, 마침 오조스님이 상당하여 법문하고 있을 때였다. 한 스님이 나아가 물었다.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께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하니 조주스님은 ‘노승이 귀가 먹었으니 큰소리로 물어다오’ 하였습니다. 그가 다시 물으니 조주스님은 ‘네가 나의 가풍을 물었는데 도리어 내가 너의 가풍을 알만 하구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은 여기서 크게 깨치고는 방장실에 올라가 인가를 구하니 오조스님이 말하였다.
“삼라만상이 모두 한 법으로 도장찍어 낸 것이다.”
스님이 절을 올리자 오조스님은 한묵(翰墨 : 글 쓰는 소임)을 맡아 보게 하였다.
스님은 원오스님과 이야기하던 차에 앙산 혜적(仰山慧寂)스님의 ‘진해명주(鎭海明珠) 인연*을 들어 말하다가 “아무것도 펴 보일 이치가 없다”는 구절에 이르러 원오스님이 물었다.
“ ‘ 진해명주’를 가져왔다고 말하였기에 스님이 이 명주를 찾기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대답할 말도 없고 펴보일 이치도 없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스님은 대답을 못하였다. 그 이튿날 문득 깨치고 원오스님에게 말하였다.
“동읍사(東邑寺) 회정(懷政)스님은 오직 한 알의 명주를 찾았는데 앙산스님은 궤짝째로 쏟아 놓았다.”
그러자 원오스님은 깊이 수긍하였다.
스님은 처음 태평흥국사(太平興國寺)에 주지를 하다가 다음 금릉의 종산사(種山寺)에 주지하였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 없으니 이것저것 가림을 싫어할 뿐이라 하나 복사꽃은 붉고 오얏꽃은 하얀데 누가 두리뭉실한 색깔이라 하는가. 제비는 재잘거리고 꾀꼬리는 우는데 누가 그것이 한 소리라고 하는가. 조사 관문을 뚫지 못하면 온 산하를 눈동자로 착각하리라.”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오조스님을 친견했다 하는데 그렇습니까?”
“무쇠소는 황금풀을 씹는다.”
오조스님의 기일(忌日)에 상당법문을 하였다.
“작년 오늘 이맘때는 붉게 달궈진 화로 위에 눈조각이 날리더니 오늘 작년 이맘때는 효녀 조아(曹娥)*가 밤에 비문을 읽네. 마지막 한마디는 부처님 눈으로도 엿보기 여려운데 백련봉 정상에는 붉은 해가 수미산을 맴돌고 새는 산호가지를 쪼아대는데 고래는 여수(麗水)의 물소를 삼켰도다. 태평의 창업이 건재하니 천고에 양기스님 뒤를 이었네.”
달마대사가 양무제(梁武帝)를 만난 인연을 송하였다.
아각(阿閣)에 처음 범종소리 울릴 때
한낮에 늙은 용은 깊이 잠들고
두 번째 봉황대에서 북을 쳤을 때
야반삼경 봉황새는 아직도 춤추지 못하였네
제왕의 창업은 반석처럼 굳건한데
오랑캐 중은 평생 헛수고하고
소림사 돌아와 지나온 길 되돌아보니
땅에 가득히 떨어진 꽃잎에 봄은 어지러워라.
始鳴阿閣一聲鐘 日午蒼龍睡正濃
再擊鳳凰臺上鼓 夜半祥鸞未飛舞
帝基鞏固如盤石 胡僧枉費平生力
回首少林歸去來 落花滿地春狼籍
또한 정(定)상좌가 임제스님을 찾아뵌 인연을 송하였다.
번갯불 잡아끄는 기연으로 조주스님 만나 보니
학인을 가르칠 땐 목을 감싸안고 친절하라 했는데
손바닥에 향산자(香山子 : 白樂天)를 떠받들고
높고 높은 열두다락에 올려 놓았네.
掣電之機遇趙州 爲人須到結交頭
掌中擎出香山子 直上高高十二樓
찬하노라.
강회지방에 구름 깊어
용면산이 작아 보이는구나
기린 같고 봉황같은 이가 껍질 벗고 세상에 나오니
산천의 빼어난 기운 모조리 빼앗아갔노라
가슴속에 무기를 감추고 일만 기병(騏兵)이 빽빽히 들어서니
그 기운 가을바람처럼 서늘하고
혓바닥 피리소리 5음(五音)을 조화하니
그 말소리 봄새와 같도다
자소대(煮蘇臺)에서 석달 동안 약을 달이며
동산스님에게 한을 품었고
아각(阿閣)에 범종소리 울릴 때
길을 잃었다가 달마를 만났도다
삼라만상 그림자 속에 가풍을 헤쳐낼 줄을
일찍이 몇이나 알았으며
성색(聲色)의 언덕 위에
조사 관문을 어찌 뚫고 지나왔던가
오로지 말후구를 밝혀내니
고래는 여수의 물소를 삼켰고
스승[先師]을 친견하니
무쇠소가 황금풀을 씹도다
확인을 가르치는 일 모름지기 친절해야 하니
향산자가 조주를 만났을 때 몇 층 다락으로 받들어 올렸으며
의리를 보면 용감해야 하니
진해명주를 앙산스님 대신하여 한 궤짝 쏟아부었네
방장실의 기용이 높아 사람들 모여들기 어려운데
운대(雲臺) 다하는 곳에서 포로되었으며
붓 끝으로 밭갈이 깊이 하니 나는 스스로 풍년인데
한림원 선비들은 오로지 문장에 포로가 되는구나
푸른 군막 아래 앉아 태평의 창업을 세우고
종사에 이르러서는 양(梁)나라 보지(寶誌)스님과 손을 잡고
껄껄껄 크게 웃었네.
------------------------------- * 동읍사 회정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듣자하니 광남 땅에 진해명주가 있다는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생겼던가?” “밝은 달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대가 그것을 가져올 수 있느냐?”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왜 내게 보 여주지 않느냐?” “어제 위산스님께 갔을 때 거기서도 제게 이 구슬을 찾으라 하셨는데 저는 아무 대답할 말도 없고 펴보일 이치도 없었습니다.” “진짜 사자 새끼로구나. 큰 사자새끼로구나.”
* 조아(曹娥) : 후한(後漢) 조정(曹盯)의 딸. 14세에 아버지가 익사하자 강가에서 울다가 물에 투신한 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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