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나암 정수(懶庵鼎需)선사
/ 1092~1153
스님의 법명은 정수(鼎需)이며 대혜 종고스님의 법제자로 복주 임씨(福州林氏) 자손이다. 본래는 유학을 익혔으나 어느 날 절에서 「유교경(遺敎經)」 몇 갈피를 읽고서 느낀 바 있었다. 출가하려 했지만 어머니가 며느리를 맞이할 날이 가깝다 하여 꾸짖자, 스님은 “복사꽃 살구꽃은 한때 봄바람에 피어나지만 푸른 대나무나 노란 국화는 나의 이번 길에 영원히 반려자가 될 것입니다.”하고 부모를 이별하였다. 삭발한 후 지팡이 하나로 호상(湖湘)지방을 행각하면서 여러 큰 스님을 찾아뵈며, 마
음엔 걸리는 일이 없고 몸은 맡길 곳 없이 돌아다니다가 험준한 산봉우리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 후일 대혜스님을 뵈었는데 하루는 대혜스님이 물었다.
“안에서 내놓지도 않고 밖에서 들여놓은 것도 없는, 바로 그런 때는 어떤가?”
스님이 입을 떼려는데 대혜스님이 죽비를 뽑아들고 등짝을 세차례 후려쳤다. 그 찰나에 스님은 크게 깨쳤다. 대혜스님은 게송을 지어 스님을 인가하였다.
정수리에 마혜수라의 외눈을 세우고
팔꿈치에 염라대왕의 명부(命符)를 비껴 찼다가
눈은 멀어지고 명부도 떨어뜨리니
조주스님은 동쪽 벽에 호로병을 걸어 두었네.
頂門豎亞摩醯眼 肘後斜懸奪命符
瞎却眼卸却符 趙州東壁挂葫蘆
상당하여 말하였다.
“이 게으름뱅이 늙은이는 게으름뱅이 중에서도 게으름뱅인데, 가장 게으른 일은 선을 행함에 게으른 것이다. 나를 대단히 여기지도 않고 선현을 대단히 여기는 것도 아니니 누가 나의 땅을 간섭할 것이며 누가 나의 하늘을 간섭하랴. 세간을 초탈하여 거닐며 아무 하릴없노라니 해가 세발이나 높이 떴는데도 다시 잠을 자는구나.”
상당하여 말하였다.
“말 속에 뜻이 있고 뜻 속에 말이 있으면 수미산은 큰 강물에 솟아오르고, 말 속에 뜻을 없애고 뜻 속에 말을 없애면 열사(烈士)가 미친듯이 화살을 쏘아댄다.
설령 시자의 이빨이 칼숲과 같고 입이 핏덩이 같다 하여도 부질없이 필봉(筆鋒) 휘둘러 헛된 의기만을 과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정명(淨名 : 유마)은 입을 다물었으니 번거로운 말에 끄달린다 하여 일찌감치 마갈타국에서 문을 닫았지만 그때는 벌써 집안의 추태를 내보인 뒤였다.
그 나머지 와관(瓦棺)노인과 암두(巖頭)대사는 험준한 산봉우리로 달려가 바람을 사로잡고 물결을 일으키며 귀신같은 조화를 장난질해 보았지만 발꿈치에 몽둥이 30대를 맞을 짓이다.
말해 보아라!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를.”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었다.
“한광(韓光 : 後漢의 군사전문가로 무기를 잘 만들었음)이 만든 기관(機關 : 무기에서 방아쇠의 역할을 하는 물건)이 아니라면 가슴을 움켜잡고 섣불리 대들지 말아라.”
동짓날 상당하여 말하였다.
“25일 전으로는 모든 음(陰)이 움츠러드니 진흙 속에 묻혀있는 용이 문을 닫으며, 25일 뒤로는 하나의 양(陽)이 다시 회복되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핀다. 바로 25일이 되면 티끌 세속에서는 술취한 길손이 당나귀 타고 말 타고 앞거리 뒷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들 하는구나.
그러나 세간 밖에 한가한 사람은 누더기 옷으로 머리를 감싼 채 화로를 끼고 앉았노라니, 바람소리 쓸쓸하고 빗줄기 우두둑 떨어져 찬기운 으스스한데 그대가 장선생인지 이도사인지 오랑캐달마인지 누가 상관하겠는가.”
목암 안영(木庵安永 : ?~1173)스님이 찾아왔을 때 스님은 외도가 부처님에게 묻기를 ‘말씀이 있음도 묻지 않고 없음도 묻지 않겠거니와...’라고 한 인연을 들려주고서 말하였다.
“ ‘부처님이 한참을 잠자코 계셨다’는 데에서 깨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는 바로 악! 하고 고함치니 목암스님은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오늘 일이 아니었더라면 눈앞에 나타난 기연을 어찌했겠습니까?”
스님이 그를 인가하였다.
분 암주(分庵主 : 劍門安分)를 보내면서 게송을 지었다.
강언덕 세찬 언덕에 파도꽃이 피는데
남북에서 서로 만나 눈썹 펴지 못했지만
안분스님 유독히 빼어난 수단 있어
힘들이지 않고 장원급제 차지하고 돌아가네.
江頭風急浪花飛 南北相逢不展眉
獨有分禪英俊手 等閑奪得錦標歸
찬하노라.
쇠벼루가 닳아 뚫어지도록 공부했건만
마음은 더욱더 황망하였네
문장 두목지(杜牧之)여! 오랫동안 삿된 도를 따르다가
유교경을 한번 보고 바른길로 들어섰네
봄바람 한번 불면 복사꽃 살구꽃 핀다 하니
분부 이미 시행하였고
아침해가 세발이나 솟도록 베개에 누워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는구려
안에서 내놓지도 않고 밖에서 들여보내지도 않을 때
양서암(洋嶼庵)에서 죽비 맛을 보았고
몸을 맡길 곳 없고 마음엔 걸리는 생각 없어
험준한 꼭대기에 암자 지었네
장님이 땅을 더듬듯
마혜수라 정수리의 외눈을 멀게 하고
삿된 귀신 몸에 붙어
팔꿈치의 명부로도 목숨 뺏기 어려워라
수미산이 강에서 솟으니 사나운 병사 화살을 쏘아대고
뜻과 말을 잘라내 헛된 이름 얻었네
진흙 속에 묻힌 용은 문을 닫고 쇠나무에는 꽃이 핀다고
음양을 셈해 보았으나 원래 이는 일정치 못한 일
장원급제의 징표 빼앗겠다고
안분선사 따라서 낭탕(䕞薚 : 먹으면 발광하는 풀) 꽃 바늘 주워 모으고
눈앞의 기연을 모두 잃은 채
목암스님 이끌고서 천리마에게 채찍 그림자를 엿보게 했네
누더기 머리에 덮어쓰고 마냥 앉았으니
온 법계 찾아보아도 자취가 없는데
오랑캐달마고 이도사고 장선생이고 전혀 생각지 않으니
나를 간섭할 이 아무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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