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제 3 권 조 동 종 1. 동산 오본(洞山悟本)선사 / 807~869

쪽빛마루 2015. 2. 7. 08:28

제 3 권

조 동 종

 

1. 동산 오본(洞山悟本)선사

     / 807~869

 

 스님의 법명은 양개(良价)이며, 운암 담성(雲巖曇晟)스님의 법을 이었고 월주 저계(越州諸曁) 사람으로 속성은 유씨(兪氏)다. 처음 혜충국사(慧忠國師)를 친견하고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물었으나 깨닫지 못하고 그 후 위산 영우(潙山靈祐 : 771~852)스님을 찾아 가니,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내 듣기로 그대는 혜충국사에게 ‘무정설법’을 물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네!”

 “다시 한번 물어 보아라.”

 스님이 다시 묻자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여기 내게도 조금은 있는데 들을 만한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스님이 말씀해 달라고 청하니, 위산스님은 불자를 들어 한 점을 찍었다. 이에 스님이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저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부모가 낳아주신 입으로는 결코 자식을 위해 말하는 게 아니다.”

 “이곳엔 저와 나이가 비슷한 스님은 없습니까?”

 위산스님이 운암 담성스님을 만나보라 하였다. 스님은 위산스님 회하를 떠나 바로 운암스님을 찾아가 무정설법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듣지 못했느냐? 미타경(彌陀經)에 ‘물새와 숲 나무 모두가 염불하며 법을 설한다’한 것을.”

 이 말에 스님은 느낀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신기하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불가사의한 무정설법이여

귀로 듣는다면 끝내 깨칠 수 없으니

눈에서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알 수 있으리.

也大奇也大奇  無情說法不思議

若將耳聽終難會  眼處聞聲方得知

 

 하루는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저에겐 아직도 남은 습기가 있습니다.”

 “그대는 이제껏 무엇을 해왔느냐?”

 “부처의 가르침이라 해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환희지(歡喜地 : 10地의 初位)를 얻었다는 말이냐?”

 “환희지가 없지는 않으나 그것은 마치 똥더미에서 진주 한 알을 주은 것과 같습니다.”

 스님이 운암스님을 떠나면서 물었다.

 “스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누군가 불쑥 스님의 참 모습을 아득하게나마 얻었느냐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하리까?”

 운암스님이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그저 이럴 뿐이다.”

 스님이 깊은 한숨을 쉬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양개스님! 깨닫는 일에서는 정말 자세히 살펴야 한다.”

 스님은 그때까지도 의심을 벗어버리지 못하였는데 그 후 개울 물을 건너다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서 활짝 깨치고 게송을 지었다.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말지니

나와는 아득히 멀어지리라

내 이제 홀로 가노니

가는 곳마다 그를 만나네

그는 이제 나이지만

나는 이제 그가 아니니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만이

비로소 여여한 경지를 깨달으리라.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麼會  方得契如如

 

 대중에게 말하였다.

“말법시대에는 사람들이 흔히 메마른 지혜[乾慧]를 갖게 되는데 만일 진위(眞僞)를 가리고자 한다면 세 가지 번뇌[滲漏]가 있다.

 첫째는 사견[見滲漏]이니, 기연이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기에 독의 바다에 떨어지는 것이다.

 둘째는 망정[情滲漏]이니, 지혜에 항상 일정한 방향[向背]이 있기에 보는 곳[見處]이 치우치거나 메마른 것이다.

 셋째는 망어[語滲漏]이니, 오묘함을 얻고도 종지를 잃어 기연이 시종 어둡게 되는 것이다.

 

 조산 본적(曹山本寂)스님이 스님의 문하를 떠날 때 운암스님에게 전수받은 ‘보경삼매(寶鏡三昧)’와 ‘5위현결(五位顯訣)’을 물려주자 조산스님은 재배를 올리고 떠나갔다.

 

 북원 통(北院通)스님이 찾아왔을 때 스님은 상당하여 말하였다.

 “주인공에 앉아버려야만 두 번째 견해[第二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북원스님이 대중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한 사람으로 반려를 삼기에는 걸맞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 말도 두 번째 견해에 떨어진 것이다.”

 이에 북원스님이 선상을 흔들어 뒤엎자 스님이 말하였다.

 “노형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제 혓바닥이 썩을 때까지 기다리시오. 그때 가서 스님께 말씀 드리지요”

 그후 북원스님이 스님의 회중을 떠나면서 비원령(飛猿嶺)으로 들어간다 하자, 스님은 “비원령은 험준하니 잘 살펴 가시오!”하였다. 북원스님이 한숨을 쉬자 스님은 “통스님! 어째서 비원령으로 들어가지 않소?”하였는데, 이 말에 북원스님은 깨우친 바 있어 다시는 비원령을 넘어가지 않았다.

 

 흠산 문수(欽山文邃)스님이 찾아왔을 때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대자사(大慈寺)에서 왔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을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형상이 나타나기 전에 보았는가? 형상이 나타난 후에 보았는가?”

 “형상의 전이나 후에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스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뒤에 흠산스님이 대중에게 설법하게 되었는데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지난날의 대화를 거론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너무 일찍 스님을 떠나왔기에 스님의 뜻을 다 얻지 못하였다.”

 스님은 그에게 송을 보냈다.

 

고목에 꽃피어 영겁 밖에 봄이 오니

코끼리 거꾸로 타고 기린을 쫓아가네

지금은 높은 봉우리에 깊숙이 숨어 사노라니

달 밝고 바람 맑은 좋은 시절이로다.

枯木花開劫外春  倒騎玉象趁麒麟

而今高隱千峰外  月皎風淸好日辰

 

 찬하노라.

 

운암의 아랫목을 뛰어넘은 아이

모든 티끌과 상대하지 않도다

 

갈대밭으로 달려가 백마를 채찍질하니

종적을 찾기 어렵고

옥 코끼리 거꾸로 타고 기린을 뒤쫓을 때

가는 곳은 분명한 곳이었네

 

물새며 나무들이 언제 설법한 적이 있었기에

부질없이 신기하다 감탄을 하고

담장도 기왓조각도 너를 위해 기연을 열어주는데

또렷이 깨닫지 못하는구나

 

똥무더기 위에서 진주 한 알 주었으니

옛 습기 버리지 못하였고

물에 비친 그림자에서 스승의 참모습을 어렴풋이 보았으니

돈 잃고 죄지은 꼴이로다

 

금바늘에 옥실로

남몰래 천겹 비단 옷을 뚫고 들어가니

석녀(石女)와 목인(木人)이

가만히 보경삼매(寶鏡三昧)를 전해주었네

 

어째서 비원령으로 들어가지 않느냐고 말했다가

수긍않고 혀가 썩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북원의 말을 들었으며

대자대비상을 보았느냐 하고 물어서

흠산스님에게 스님을 너무 일찍 떠났다 뉘우치게 하였네

 

고로(錮鏴 : 구르지 않는 금수레)를 생철(生鐵)에 붙이니

사견과 망정의 갈래가 더욱 많아지고

자리를 안배하는데 온 마음을 쏟았으나

편정군신(偏正君臣)의 본보기를 마련할 길이 없네

 

천리길을 편지 가진 이는 집에 이르지 못했는데

용의 둥지에서 황금봉황이 자는 모습이 보일 때

기우는 달은 야명주 주렴 바깥에 걸려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