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자득 휘(自得暉) 선사
/ 1097~1182
스님은 굉지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회계 장씨(會稽張氏) 자손이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나무 위에 사는 새들은 바람 불 것을 미리 알고, 땅속에 사는 동물은 비 올 것을 미리 아니,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쓴 것이다. 그러므로 따지고 헤아려서는 안되니, 오오는 본래부터 이십오이다. 무엇을 하든간에 평범한 일상이 된다는 것이 총림에서 오랫동안 참선한 이들의 말이다. 잘들 알아들었느냐?
들녘의 농부는 요순의 덕을 모르고
두둥둥 북을 치며 강 귀신에게 제사 드리네.”
[野老不知堯舜德 鼙鼙打鼓祭江神]
상당하여 말하였다.
“껍데기도 다 벗겨지고 모서리도 떨어져나가면 몸과 마음이 밝아져서 아무것도 없게 된다. 깊고 고요한 도의 세계에 오묘하게 들어가면 옥으로 된 사람이 단정히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몰게 된다. 오묘하고 밝은 경지를 통달한 자는 매우 적으니 알음알이로는 이를 수 없고 오직 깨친 자만이 알 수 있다.
흰 구름은 신령스럽게 스스로를 비추고 청산은 우뚝우뚝 늘 그대로여서 기봉은 정수리 뒤로 후광을 나누고 지혜는 공겁 이전의 안목에 계합된다.
그러므로 옛말에 ‘신풍 땅 가는 길은 험하고 가파르나 신풍 고을은 담담하고 기름지다. 오를 사람은 올라가되 동요하지 않고 노닐 사람은 노닐되 서두르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정자는 있으나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고 수풀에는 보통 나무는 자라지 않으니 여러 선승들이여, 향상일로는 존귀하여 밝히기 어렵다. 유리궁전에 있다 하여 존귀하다 일컫지 않으니 비취 주렴 앞이라고 짝이 될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러한 때에 바늘땀이 땀땀이 이어지듯 참다운 종지가 떨어지지 않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온 모리에 백발을 이고 깊은 산골을 떠나
한밤중에 구름 뚫고 저자 속으로 들어간다.”
[滿頭白髮離巖谷 半夜穿雲入市廛]
스님은 ‘육우도(六牛圖)’에 대해 법문을 하였다.
첫째, 처음으로 선지식의 가르침을 들으면 곧 신심을 일으켜라. 신심이 싹트면 영원히 도의 근본이 되리라. 그러므로 첫 번째 그림에는 소 머리 위에 흰 점 하나가 찍혀 있다.
한 생각 신심이 근본이 되면
천생토록 도에 들어가는 인연이 되는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각성을 미혹하여
가는 곳마다 티끌에 물든다
들에 자라는 풀은 계절마다 푸르고
미친듯한 꽃은 나날이 새로워지는데
고향이 그리워도 돌아갈 계책 없어
오직 눈물이 수건을 적셔온다.
一念信爲本 千生入道因
自憐迷覺性 隨處染埃塵
野草時時緣 狂花日日新
思家無許得 但覺涙沾巾
둘째, 신심이 일어났으면 생각생각 갈고 닦아야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밝아지면 마음에 기쁨이 생기는데 이것이 도에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그림에는 소의 머리가 모두 하얗다.
이 소가 어디 있느냐 물으니
어쩌면 그렇게도 늦게사 잘못을 알았소!
집을 버린 지 몇 겁을
허구한 세월동안 망령을 쫓아다녔구나
생각생각을 생각이 없는 곳으로 돌리고
생각생각에 생각하는 바를 끊노라면
도의 첫 관문이 여기서 비롯되어
차례로 무위(無爲)를 깨치리라.
問訊者牛兒 知非何太遲
抛家經幾劫 逐妄許多時
念念歸無念 思思絶所思
入頭從此始 次第證無爲
셋째, 이미 밝아졌으면 점차 훈습해야 한다. 지혜가 밝고 깨끗하지만 한결같고 순수하지 못하므로 이 그림은 몸 절반만이 하얗다.
소를 먹여온 지 그 몇 해련가
머지않아 노지우(露地牛)가 되려 하네
거치른 풀 속을 나와
설산(雪山) 가까이서 노닐어라
바른 생각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하나
삿된 생각이 아직은 뒤섞여 있다
시름을 벗어나 마음 자취 다하면
6처(六處)에서 받아들일 것이 없다.
看牧幾春秋 將成露地牛
出離荒草去 向近雪山遊
正念雖歸一 邪思尙混流
脫愁心迹盡 六處不能收
넷째, 다시는 망령된 생각이 없고 오직 하나 참 마음이 청정하고 고요하다. 그러므로 온몸이 밝고 하얗게 된다.
여섯 곳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고
우담화는 불꽃 속에서 피도다
밝게 깨쳐 매임 없고
깨끗하여 가는 티끌마저 끊겼으니
고삐가 필요 없는데
사람과 소가 어디에 있겠느냐
멀고 먼 공겁 바깥이라
부처도 조사도 의심하지 못한다.
六處不能該 優曇火裏改
了然無系屬 明淨絶纖埃
繩索將無用 人牛安在哉
迢迢空劫外 佛祖莫能猜
다섯째, 마음과 법을 모두 잊고 사람과 소가 다 없어졌다. 영원히 만상의 밖에 초월하여 오직 하나 비고 비었으니[空空] 이것을 큰 해탈문이며 불조의 명맥이라 한다.
사람도 소도 소식이 다하니
옛길에 아는 사람 끊겼구나
안개 걷히니 일천 봉우리 고요한데
이끼는 세 가닥 길을 깊숙이 덮었네
마음 비어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생각[情]이 다하여 지금 세상과는 상대하지 않는데
낚싯대 잡는 그대, 어디 계시오?
반계(磻溪)는 녹음 속에 갇혀있다.
人牛消息盡 古路絶知音
霧捲千巖靜 苔生三徑深
心空無所有 情盡不當今
把釣公何在 磻溪鎻綠陰
여섯째, 명근(命根)이 끊어진 곳에 까무라쳤다가 다시 살아나 부류 따라서 몸을 받으며 가는 곳마다 한바탕 놀이를 벌이는구나. 오직 옛사람만 바뀌었지 하던 짓은 옛날 그대로구나.
오묘함이 다하여 다시 지극하게 통하고
6도(六道) 속으로 돌아오니
진진찰찰 모두가 불사요
곳곳마다 가풍이로다
새하얀 옥은 진흙 속에서 빛나고
정선된 금은 불꽃 속에 있으니
무간지옥 가는 길에 느긋하게 노닐고
부류를 따라 떠돌며 바람에 나부끼도다.
妙盡復窮通 還歸六道中
塵盡皆佛事 處處是家風
皓玉泥中異 精金火裏逢
優游無間路 隨類且漂蓬
찬하노라.
전광석화 치는 곳에
천둥소리 한결같이 고요하도다
약야계(若耶溪) 모래 속의 황금이오
저라산(苧羅山) 가시덤불 가운데 포도나무라
진헐스님이 머리에 꽃을 꽂고 노파를 단장한다는 말로 꼬집었는데
부끄러운 줄은 알았을까
굉지스님이 어린아이 주듯 꼭꼭 씹어 먹였는데
감히 스스로 깨쳤다 말할 수 있을까
밝고 어둠의 길을 밟아 뒤집으니
눈동자 닿는 곳 어디나 가시덤불이요
보이지 않는 근원까지 끊으니
발꿈치 아래는 하늘에 닿는 가시나무로다
10성(十成)의 존귀한 지위가
향기어린 수레를 타고가니 어찌 이끼낀 궁중에서 수레 굴리리
한 길이 평상(平常)하여
강 귀신에게 제사 올리나 요순의 덕을 모른다
노을 개인 찬 모래 위에 외로운 백로 서 있으니
들녘 시내에는 흰 눈빛이 아른하고
얼음 녹는 고목엔 늙은 용이 울어도
대나무 사립문 밖엔 봄소식 없네
깊고 고요한 도의 세계에는
머리 뒤의 후광과 공겁 전의 안목도 오히려 황금 티끌이요
알음알이가 녹아지지 않았을 때는
백운청산이며 아들아비가 모두 집안 도둑이 된다
정위(正位)와 편위(偏位)가 모두 이르니
연하십주(煙霞十洲 : 신선계)의 꽃인들 어찌 시들지 않겠으며
거둬들이고 놔주고가 온전치 못하니
육우도(六牛圖)라고 무슨 대단한 일이 있겠나
장경(長庚)의 문하에서
활발한 생애를 쓸어 없애니
명마는 피땀흘리는 공을 이루고
금닭은 새벽을 알리는 덕을 안았도다.
동산스님으로부터 여기까지는 11세이며, 모두 14명이다.
'선림고경총서 >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향림 징원(香林澄遠) 선사 / 908~987 (0) | 2015.02.07 |
---|---|
제 4 권 1. 운문 광진(雲門匡眞) 선사 / 864~949 (0) | 2015.02.07 |
13. 천동 종각(天童宗珏) 선사 / 1091~1162 (0) | 2015.02.07 |
12. 굉지 정각(宏智正覺) 선사/ 1091~1157 (0) | 2015.02.07 |
11. 진헐 청료(眞歇淸了) 선사/ 1089~1151 (0) | 2015.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