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권
운문종 위앙종 법안종
운문종
1. 운문 광진(雲門匡眞) 선사
/ 864~949
스님은 설봉 의존(雪峯義存)스님의 법을 이었다. 법명은 문언(文偃)이며 수주(秀州) 사람으로 속성은 장씨(張氏)다. 처음 공왕사(空王寺)에서 불법을 배우며 「사분율(四分律)」을 듣다가 그곳을 떠나 목주 도명(睦州道明)스님을 찾아갔다. 목주스님이 보자마자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발목이 부러져버렸는데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아무 쓸모없는 것(秦時轆轢鑽 : 진나라 때 성 쌓는데 쓰던 전차)이로구나!”
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쳤다. 이에 목주스님은 설봉스님을 친견하라고 일러주었다.
스님이 설봉스님의 농막[雪峯莊園]까지 갔을 때 한 스님을 만나 그에게 물었다.
“스님은 산에 오르는 길이요?”
“그렇소!”
“내, 한마디[一則] 부탁할 것이 있는데 절에 가거든 주지스님에게 물어주시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시킨 말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지요.”
“절에 가서 주지스님이 법당에 올라 대중을 모아놓거든 그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 그의 팔을 잡고 ‘이 늙은이야, 목 위에 쓰고 있는 형틀을 왜 벗어던지지 못하느냐! 라고 하시오.”
그 스님은 스님이 가르쳐 준대로 하였다. 그러자 설봉스님은 갑자기 법좌에서 내려와 멱살을 움켜잡고 “빨리 말해라, 빨리!”라고 소리쳤는데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설봉스님은 그 스님을 밀치면서 말하였다.
“이 말은 네 말이 아니다.”
“제가 한 말입니다.”
“시자야! 오랏줄과 몽둥이를 가져오너라.”
“사실은 제 말이 아니라 농막에 저 절강 땅 스님 하나가 저에게 말하게 한 것입니다.”
“대중들아! 농막에 가서 5백명을 거느릴 선지식을 맞이해 오너라.”
그 이튿날 스님이 산에 오르자 설봉스님은 한번 보고서 “뭐하러 여기까지 왔느냐?”고 하니 스님은 손으로 입을 닦는 시늉을 하며 총총히 나가버리자 설봉스님이 대한하게 여겼다.
영수 여민(靈樹如敏 : ?~920)스님은 20년 동안 수좌(首座)를 맞이하지 않았다. 하루는 스님이 그곳을 찾아가자 곧 수좌로 명하니 스님도 사양하지 않고 소임을 맡았다.
당시 유왕(劉王 : 劉龑)이 절에 들어올 때마다 영수스님이 맞이하지 않자 유왕은 그의 허물을 따지려 하였다. 영수스님은 그의 마음을 알고 마침내 입적해 버렸는데, 유왕이 다시 찾아왔을 때 대중이 이를 알리니 유왕이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 없더냐?”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 함을 하나 봉해 놓고 왕께서 오시거든 직접 열어보라 하십디다.”
유왕이 함을 열어 작은 서첩을 펼쳐보니, “인천의 안목은 이 절 수좌이다”라고 쓰여 있었으므로 유왕은 스님에게 주지를 잇도록 명하였다.
전생 인연에 유왕은 향을 파는 장사였는데 절에 들어오면 승당안에서 침을 뱉곤 하였다. 그때 영수선사는 당사(堂司 : 유나라고도 함. 승당의 지도와 감독을 맡음)로 있다가 우연히 그를 보고는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다”고 꾸짖으니 언쟁이 그치지 않자 스님은 충고하고 떠났다 한다.
스님에게는 ‘고(顧)!’ ‘감(鑑)!’이라는 일자로 된 요지[一字關]와 붉은 깃발 아래 해골이 널려 있다[紅旗橫骨]*는 종지가 있다.
입적하실 때 남긴 글[遺書]에서 말했다.
“17년 동안을 풍상에 시달리며 수천리 밖에서 남으로 북으로 다녔느니라.”
찬하노라.
부들풀 숲속에 뛰어난 재목있어
드넓은 그 기운은 하늘을 삼켰도다
공왕사에서 떠나온 것은
사분율의 뒤엉킨 말뚝에 매일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며
목주스님의 문턱을 넘다가
다리 부러뜨리고 아무 쓸모없는 놈이란 말에서 깨달았네
과일이란 서리를 맞아야 익는 법이니
영수스님이 밝은 창 밑에 자리를 마련해 준 마음을 훤히 알았고
금은 손가락에 끼워야 부드러워지니
다시 설봉산에 들어가 큰 풀무 속에서 담금질했네
유왕을 만나보니
승당에서 얼굴에 뱉은 침이 마르지 않은 일 생각나고
현사스님의 벗이 되어
고기잡이 배에서 온몸이 새빨가니 우습구나
동산스님에게 3돈봉(三頓棒)을 때린 것은
간절한 노파심이요
운문산에 일자관을 세워서
종사들의 눈을 멀게 하였다
물 위에 세운 붉은 깃발 거두지 않았는데
어둠 속에 널린 해골 추려보니 한이 없구나
17년을 나그네 길에서 온갖 풍상 겪었으나
수백년 후까지 매운 연기 가득한 성벽에 큰 공훈을 세웠네
승려 중에 봉황이요, 사람 중에 용이로다
누가 순임금 풍악을 연주하여 깊은 연못 휘저어
늦은 가을 텅 빈 조사의 뜨락에 춤추는 봉황이 날아들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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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의 종지에 대해 오조법연(五祖法演)스님이 평한 말. “붉은 깃발 번뜩이는데 그 아래는 해골이 널려 있다[紅旗閃爍 橫骨其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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