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제록·법안록臨濟錄·法眼錄

[법안록] 4. 거량 16~32.

쪽빛마루 2015. 4. 23. 07:53

법안록

 

 4. 거 량

 

16.

 장폐마왕(障蔽魔王)이 여러 권속들을 거느리고 천년을 금강제(金剛齊)보살이 나타나는 곳마다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하루는 보게 되어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 머물렀는가. 나는 천년을 그대가 나타나는 곳마다 따라다녔으나 보지 못하였다."

 그러자 보살이 말씀하셨다.

 "나는 머뭄 있는 곳에 머물지도 않고 머뭄 없는 곳에 머물지도 않았으니 이렇게 머물렀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장폐마왕은 금강제보살을 보지 못하고 따라다녔으나, 금강제보살은 장폐마왕을 보았겠느냐."

 

17.

 초조(初祖) 가섭존자가 하루는 진흙을 밟자, 한 사미가 보더니 "존자시여, 무엇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하시는지요?" 하고 묻자 가섭존자는 "내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해 해주겠느냐" 하였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그때 보았더라면 진창으로 확 끌어당겼을텐데."

 

18.

 육조(六祖)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나에게 무엇이 하나[一物] 있는데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앞뒤도 없다.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때 하택 신회(荷澤神會 : 670~762)스님이 나와서 "그것은 모든 법의 근원이며, 저 신회의 불성입니다" 하자 육조스님은 한 방 후려치면서 말하였다.

 "이 말많은 사미(沙彌)야, 내가 무엇[一物]이라고 한 것도 틀렸는데 어떻게 하물며 본원이니 불성이니 하겠느냐. 네놈이 뒷날 설사 개당(開堂)한다 해도 지해종사(知解宗師)가 될 뿐이리라."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남에 대해 예언한 것이 결코 틀리지 않다. 요즈음도 지해(知解)를 내세우는데 하택이 장본인이다."

 

19.

 한 스님이 남악 회양(南嶽懷讓 : 677~744)스님에게 물었다.

 "거울이 형상을 만들고 형상이 만들어진 뒤에는 그 빛은 어디로 갑니까?"

 "스님 동자 때의 모습은 어디에 있소?"

 

 스님께서 달리 말씀하셨다.

 "무엇이 스님이 이룬 거울의 형상이요?"

 

20.

 서당 지장(西堂智藏 : 735~814)스님이 길에서 천자의 사신을 만나 점심을 먹던 차에 나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신이 "두타(頭陀)시여" 하여 서당스님이 머리를 치켜들자, 나귀를 가리켰다. 이번에는 서당스님이 사신을 가리켰더니, 그는 대꾸가 없었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시고는 달리 말씀하셨다.

 "나귀 울음소리를 냈을 뿐이다."

 

21.

 등은봉(鄧隱峯)스님이 양주(襄州) 파위의당(破威儀堂)에 살면서 속옷만 입고 다듬이돌 옆에서 방망이를 들고 말씀하셨다.

 "말을 한다면 때리지 않겠다."

 대중들이 말이 없자, 등은봉스님은 그 자리에서 한 방씩 후려쳤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등은봉은 정말 이상하구나. 때렸는데 맞지 않았구나."

 다시 말씀하셨다.

 "그때에 온 대중이 나왔는데, 우연한 일이었다."

 

22.

 양좌주(亮座主 : 좌주는 강사를 높여 부르는 말)가 마조(馬祖)스님을 참례하자, 마조스님이 물었다.

 "무슨 경전을 강의하는가?"

 "「심경(心經)」을 강의합니다."

 "무엇을 가지도 강의하는가?"

 "마음을 가지고 강의합니다."

 마조스님은 말하였다.

 "마음은 솜씨좋은 광대와 같고, 의식은 그것을 부리는 자와 같은데 어떻게 경전을 강의할 줄 알겠는가."

 "마음이 강의하지 못한다면 허공이 강의를 한단 말씀입니까?"

 "도리어 허공이 강의를 하는군."

 양좌주가 옷소매를 떨치며 나가자, 마조스님이 "좌주"하고 불렀다. 양좌주가 머리를 돌리자,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서 늙도록 이것뿐이라네."

 양좌주는 여기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스님께서는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그들 옛사람이 그러한 자비로 사람을 가르쳤던 일을 보라. 요즈음은 어떻게 이해하여야겠느냐. 여기서 머리를 모으고 망상을 부리지 말라."

 

23.

 부용(芙容)스님이 귀종(歸宗)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내가 말해준다면 네가 정말 믿겠느냐?"

 "스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떻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대이니라."

 "어떻게 간직[保任]해야 합니까?"

 "눈병이 한번 나면 허공꽃이 어지럽게 어른거린다."

 

 스님께서는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만일 뒷말이 없었다면 무엇을 보고 귀종스님인 줄 알았으랴."

 

24.

 남전(南泉 : 748~834)스님이 유나(維那)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운력을 하려는가?"

 "연자방아를 돌리렵니다."

 "연자방아는 그대를 따라 돌겠지만 연자방아의 중심에 세운 나무는 움직이지 못할걸."

 유나는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돌지 않겠군요."

 

25.

 염관(鹽官 : ?~842)스님께서 하루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허공으로 북을 삼고 수미산으로 북채를 삼는다면 어떤 사람이 칠 수 있겠느냐?"

 대중은 대꾸가 없었다. 한 스님이 이를 남전스님에게 말씀드리자, 남전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왕노사(王老師 : 남전)는 부숴진 북을 치지 않겠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며 달리 말씀하셨다.

 "왕노사도 치지 못하는군."

 

26.

 염관스님이 불자를 세우며 「화엄경」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은 몇번째 법계(法界)인가?"

 강사가 끙끙 앓는데 염관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각해서 이해하면 귀신의 굴에서 살 궁리하는걸세. 햇빛아래 외로운 등불이 과연 빛을 잃는군."

 

 스님은 이를 들려주면서 대신 손뼉을 세 번 쳤다.

 

27.

 대자 환중(大慈寰中 : 780~862)스님에게 한 스님이 떠나겠다고 인사하자 이렇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강서로 가렵니다."

 "나도 데려갈 수 있느냐?"

 "스님 아니라 스님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 해도 데려가지 못할 것입니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시며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이 가신다면 제가 삿갓을 가져오겠습니다."

 

28.

 대자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어떻게 대답하는 줄을 모르겠고 다만 병통을 알아볼수는 있다."

 그때 한 스님이 나오자 대자스님은 방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대중들이 말하기를 '병이 뻔히 보이는데도 모르는구나' 한다."

 

29.

 한 스님이 대주 혜해(大珠慧海)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니, "이렇게 마주하고 법담을 나누는 이가 부처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하자 대중이 모두 멍하였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그렇다 해도 전혀 빗나간 얘기다."

 

30.

 이제 막 도착한 사람이 조주스님에게 말하였다.

 "저는 장안(長安)에서 여기까지 주장자를 비껴 지고 왔는데 한 사람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조주스님이 "그대의 주장자가 짧은 모양이군" 하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며 대신 깔깔 웃었다.

 

31.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세계가 파괴될 때에도 이 성품은 부서지지 않는다'고 하셨다던데, 무엇이 그 성품입니까?"

 "사대오음(사대오음)이라네."

 "그것도 부서지는 것인데요. 무엇이 그 성품입니까?"

 "사대오음이라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인가 둘인가. 부서지는 것인가 부서지지 않는 것인가? 자,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한번 판단해 보라.

 

32.

 비마암(秘魔菴)스님은 항상 나무집게 하나를 가지고 있다가 납자들이 찾아와 절하면 그때마다 목덜미를 찝으면서 말하였다.

 "말을 한다 해도 찝어 죽일 것이며, 말을 하지 못한다 해도 찝어 죽일테다. 얼른 말하라. 얼른 말해."

 학인들 중에 대꾸하는 사람이 적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살려 주십시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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