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위앙록潙仰錄

[위산록/ 사가어록(四家語錄)] 2. 상당 42~49.

쪽빛마루 2015. 4. 27. 07:34

2. 상 당

 

42.

 스님께서 상당(上堂)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대기(大機)를 얻었을 뿐 대용(大用)을 얻지는 못하였다.”

 이때에 구봉 도건(九峯道虔)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쓱 빠져나갔다. 스님께서 그를 불렀으나 다시는 돌아보질 않았으므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법기(法器)가 될 만하군.”

 하루는 스님을 하직하며 구봉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스님을 이별하고 떠나갑니다만 천리 밖에서도 좌우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안색이 변하여 말씀하셨다.

 “잘 해보게.”

 

43.

 영운 지근(靈雲志勤)스님이 처음 위산에 있으면서 복숭아꽃을 보고는 도를 깨닫고 게송을 읊었다.

 

검(劍)을 찾기 30년 세월

몇 번이나 낙엽지고 싹이 돋았나

복숭아꽃 한번 본 뒤로는

지금까지 다시는 의심치 않네.

 三十年來尋劍客  幾回落葉又抽枝

自從一見桃華後  直至如今更不疑

 스님은 이 게송은 보시고 그가 깨달은 것을 따져 물어 서로 부합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연 따라 깨달아 통달하였으니 영원히 물러나거나 잃지 말고 잘 간직하여라.”

 

44.

 상림(上林)스님이 와서 참례하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하여 왔는가?”

 “갑옷과 투구를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모조리 풀어버리고 와야만 나를 만날 수 있네.”

 “풀어버렸습니다.”

 스님은 혀를 차시면서 말씀하셨다.

 “쯧쯧, 도적도 아직 쫓지 않았는데 풀어버리고 어찌 하겠다는건가?”

 상림스님이 대꾸자 없자 앙산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좌우의 사람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스님께서 손으로 읍(揖)을 하시며 “네, 네” 하셨다.

 상림스님은 그 뒤 영태(永泰)스님을 참례하고서야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45.

 소산 광인(疏山匡仁)스님이 참례하러 왔다가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시는 것을 들었다.

 “행각(行脚)하는 선객이라면 모름지기 소리나 물질[聲色] 안에서 잠을 자고, 소리나 물질 안에서 앉고 누워야만 하느니라.”

 그러자 소산스님이 질문하였다.

 “어떤 것이 소리나 물질에 떨어지지 않는 소식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번쩍 세우자 소산스님은 말하였다.

 “이는 소리나 물질에 떨어진 소식입니다.”

 스님께서 불자를 내려놓고는 방장실로 돌아가 버리셨다. 소산스님이 깨닫지 못하고 바로 향엄스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가려 하자 향엄스님이 물었다.

 “왜 더 머물지 않는가?”

 “저는 스님과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인연을 말하는지 어디 얘기나 좀 해보게.”

 소산스님이 이윽고 앞에 했던 대화를 전해주니 향엄스님은 말하였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말이 나와도 소리가 아니고 물질[色] 이전이어서 물건도 아니다.”

 “본래 여기에 눈 밝은 사람이 있었군요.”

 이윽고 향엄스님에게 “앞으로는 스님께서 머무는 곳이면 제가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는 떠나갔다.

 스님께서 향엄스님에게 물으셨다.

 “소리와 물질에 관하여 물었던 그 조무래기 중은 어디에 있느냐?”

 “이미 떠났습니다.”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해보게.”

 향엄스님이 앞에 했던 대화를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가 뭐라 말하더냐?”

 “저는 매우 칭찬하였습니다.”

 스님은 비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그 조무래기에게 봐줄만한 데가 있는가 했더니 원래 그랬었구나. 그 사람은 이후로 어디에 머물더라도 산이 가까이 있어도 땔감을 구할 수 없고, 물이 가까이 있어도 물을 마실 수 없으리라.”

 

46

 자국 감담(資國感潭)스님이 참례하자 스님께서 달을 가리켜 보여 주었는데 자국스님은 손을 세 번 내저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보지 못했다고 말하진 않겠네만 다만 대강 보았을 뿐이다.”

 

47.

 스님께서 법당에 앉아계신데 고두(庫頭)스님이 목어를 치자 화두(火頭)스님은 불덩이를 던지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스님께서는 “대중 가운데 저런 사람이 있다니” 하시고, 이윽고 불러서 “왜 그랬느냐?” 하고 물으시니 화두스님은 말하였다.

 “제가 죽을 먹지 않았더니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목어소리를 듣고 기뻐하였습니다.”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뒷날 경청 도부(鏡淸道怤 : 864~937)스님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위산스님의 대중 가운데 사람이 없는 줄 알 뻔하였다.”

 와룡 구(臥龍球)스님이 말하였다.

 “하마터면 위산스님의 대중 가운데 사람이 있는 줄 알 뻔하였다.”

 

48.

 스님께서 진흙으로 벽을 바르시는데 상공 이군용(李軍容)거사가 찾아와 관복을 입은 채로 스님 뒤에 와서 홀(笏)을 단정히 들고 서 있었다. 스님께서 돌아보시고는 다시 곁의 진흙 소반에서 진흙을 집으려는 시늉을 하자 이군용거사는 홀을 움직여 진흙을 받아내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께서는 진흙 소반을 던져버리고 함께 방장실로 돌아갔다.

 

 암두 전활(巖頭全豁 : 828~887)스님은 이 말을 듣더니 말하였다.

 “아아! 약해져가는 불법이여, 가엾은 위산스님이 벽 바르는 것도 마치질 못하다니.”

 명초 덕겸(明招德謙)스님은 말하였다.

 “당시에 어떻게 했어야 암두스님에게 간파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더니, “진흙 소반을 돌려 벽을 바르는 시늉을 하다가 버리고 돌아갔어야지”라고 대신하였다.

 황룡 오신(黃龍悟新)스님은 말하였다.

 “암두스님이 평을 잘못했으니, 위산스님과 이군용거사의 기막힌 솜씨가 졸작이 되는 줄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49.

 시어사(侍御史)* 육(陸)거사가 큰방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

 “스승 노릇하는 많은 스님네들이 밥이나 축내는 스님들입니까? 아니면 참선하는 스님들입니까?”

 스님께서 이 소리를 듣고 말씀하셨다.

 “밥이나 축내는 스님도 아니고, 참선하는 스님도 아니라네.”

 “그러면 여기서 무얼 합니까?”

 “시어사께서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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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사(侍御史) : 비법(非法)을 검찰하는 벼슬아치의 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