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위앙록潙仰錄

[앙산록/ 조당집(祖堂集)] 2. 상당 · 감변 28.

쪽빛마루 2015. 4. 28. 08:35

2. 상당 · 감변

 

28.

 완능(莞陵)의 도존(道存)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폐불 뒤에 다시 호남(湖南)에 가셔서 위산스님을 뵈었을 때, 어떤 미묘한 말씀을 해주셨습니까?”

 “내가 법난(法難) 뒤에 위산으로 갔더니, 어느날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가 앙산(仰山)에서 주지(住持)할 때나 설법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속여 홀리지나 않았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 안목(眼目)을 따를 뿐입니다.’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어떻게 제방에서 온 납자에게 스승이 있는가, 스승이 없는가, 이론을 따지는 납자인가, 선학(禪學)의 종문(宗門)을 배우는 납자인가를 가려내는가? 나에게 말해 보라.’

 ‘가려낼 수 있습니다.’

 ‘제방에서 학인들이 와서 조계(曺溪)의 참뜻을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는가?’

 ‘저는 그에게 <대덕(大德)은 어디서 왔는가> 하고 물어 학인이 <제방의 노숙에게서 왔습니다> 하면 제가 즉시 한 경계를 들어서 <제방의 노숙들도 이렇게 말하던가, 말하지 않던가>하고 묻습니다. 혹은 한 경계를 들어 보이고는 말하되 <이것은 그만 두고 제방 노숙들의 뜻은 어떠하시던가> 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법칙인 경계(境界)와 지혜(智慧)입니다.’

 ‘매우 좋은 말이다. 과연 예부터 전하는 종문의 기둥[아조=牙爪]이로구나.’

 위산스님께서 또 물으셨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묻되 일체 중생은 다만 끝없는 업식(業識)뿐이라 의거할 근본이 없다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갑자기 그 학인을 불러 그가 <녜> 하고 대답하면 다시 제가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묻겠습니다. 그가 모른다고 하면 저는 그에게 말하되 <너 역시 의거할 근본이 없을 뿐 아니라 업식이 망망한 사람이로다!> 하겠습니다.’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사자의 젖[乳] 한 방울과 당나귀의 젖 여섯 섬[斛]이 동시에 쏟아져 나와 흩어지는 경지로구나!’

 위산스님께서 또 물으셨다.

 ‘그대 주변에도 선법(禪法)을 배우는 납자가 있는가?’

 ‘한두 사람이 있기는 하나 그저 얼굴 앞이거나 등 뒷일 뿐입니다.’

 ‘어찌하여 얼굴 앞이거나 등 뒤라 하는가?’

 ‘남 앞에서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면 마치 등 뒤와 같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비추어 밝히는 경계를 따져 보면 업성(業性)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주변에도 선법을 배우는 납자가 있는가?’

 ‘위산에서 나온 지가 오래 되어서 있다 해도 알 수 없습니다.’

 위산스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안목(眼目)이 위산에도 있던가?’

 ‘있다 해도 여러 도반이나 사형사제들과 토론을 한 적이 없으므로 그들의 안목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대안(大安)은 어떤가?’

 ‘그를 모릅니다.’

 ‘종심(從諗)은 어떠한가?’

 ‘그도 모르겠습니다.’

 ‘지화(志和)는 어떠한가?’

 ‘그도 모르겠습니다.’

 ‘지우(至愚)는 어떠한가?’

 ‘그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위산스님께서 ‘내가 물은 것을 그대로 모두 모른다 하니, 무슨 뜻인가?’ 하고 꾸짖으셨다.

 이때, 내가 스님께 여쭈었다.

 ‘그들의 견해(見解)를 알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들의 행해[行解]를 알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그대는 무엇을 그들의 견해라 하는가?’

 ‘그들이 견해를 얻었음을 알고자 하신다 함은 위에 열거한 다섯 사람이 뒷날 스님의 가르침을 받잡고 남의 스승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말해 주되 마치 병에서 물을 쏟는 것 같아서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 것이니, 남의 스승이 된 이가 이러한 여유가 있으면 이를 견해라 합니다.’

 위산스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무엇을 행해(行解)라 하는가?’

 ‘천안통(天眼通)과 타심통(他心通)을 갖추지 못하면 그가 작용하는 경지[照用處]를 알지 못합니다. 행해로 하여 맑고 흐림을 스스로 가리는데, 그 업용(業用)과 성품이 의밀(意密 : 비밀한 생각)에 속하므로 알지 못합니다. 마치 제가 강서(江西)에 있을 적에 전혀 참괴(慚愧)가 없었는데 그때 스님께서 이런 저를 보시고 선법을 배우는 사람이냐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내가 사람들에게 그대는 선을 모른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는가?’

 ‘제가 무슨 개구리나 지렁이라고 선(禪)을 이해하겠습니까?’

 ‘그대의 빛이거늘 누가 감히 그대를 막겠는가?’

 내가 다시 위산스님께 물었다.

 ‘인도 27조인 반야다라(般若多羅)가 선종(禪宗)에서 일어난 3천년 뒤의 일까지 미리 예언하셨는데 때가 되면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답니다. 지금 스님께서도 그렇습니까?’

 ‘이는 행통(行通) 쪽의 일인데 나는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 나는 이통(理通)을 했을 뿐이며 배움도 역시 우리 종지만을 통하였으니, 그러므로 6신통(六神通)을 갖추지 못했다.’

 내가 또 물었다.

 ‘육조(祖)께서 입적[遷化]하실 적에 권속들에게 무게가 두 근 쯤되는 무쇠 자물쇠를 내 목 뒤에다 붙여서 장사를 지내라 분부하시니, 권속들에게 무쇠를 목덜미에다 붙이라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였습니다. 육조께서 말씀하시되, <종이와 먹과 벼루를 가져오라. 내가 예언을 써 주겠다> 하시고는 다음과 같이 쓰셨답니다.

 

오륙년 무렵에 머리 위에 부모를 봉양하고

입 안에는 밥을 먹인다

만(滿)의 환난을 만나면

양과 유[楊柳]가 벼슬아치가 된다.

五六年中頭上養親  口裏須飡

遇滿之難  楊柳爲官

 

 그러자 위산스님께서 물었다.

 ‘그대는 조사의 예언을 알겠는가?’

 ‘알기는 합니다마는 이미 지난 일입니다.’

 ‘지난 일이기는 하나 말해 보라.’

 ‘5 · 6년이라 함은 30년 뒤라는 뜻이요, 머리 위에 어버이를 기른다 함은 효자(孝子) 하나를 만난다는 뜻이요, 입 안에는 밥을 먹인다 함은 자주자주 재(齋)를 지낸다는 뜻이요, 만(滿)의 환난을 만난다 함은 여주(汝州)의 장정만(張淨滿)이 신라의 사문 김대비(金大悲)에게 팔려 육조스님의 머리와 의발을 훔치게 된다는 뜻이요, 양과 유가 벼슬아치가 된다는 것은 양(楊)은 소주(韶州)의 자사(刺史)요, 유(柳)는 곡강(曲江)의 현령(縣令)이니, 이 사실을 깨닫고 석각대(石角臺)에서 붙든다는 뜻입니다. 화상께서도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는 나도 아직 얻지 못한 행통(行通)으로서 6신통의 하나에 속한다.’

 ‘스님께서 지금 남들의 견해를 인가[記]하시는 것은 옳겠지만 사람들이 행해(行解)를 예언하시는 것은 알음알이[人情]에 속하는 것이어서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위산스님께서 기뻐하면서 말씀하셨다.

 ‘백장(百丈)스님께서는 10여 사람에게 불법을 안다, 선(禪)을 안다라고 수기하셨고 그 뒤로 백 · 천명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스님께서 그 숫자에 집착되셨겠는가?’

 ‘그렇게 될까 걱정입니다. 그렇다면 성현의 뜻은 헤아리기가 어려워 거슬리든 맞든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그대도 뒷날 사람들의 공부를 수기하겠는가?’

 ‘만일 수기를 한다면 견해만을 수기하고 행해는 수기하지 않겠습니다. 견해는 말[口密]에 속하고 행해는 마음[意密]에 속하는데, 조계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감히 남을 수기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수기하지 못하는가?’

 ‘이는 연등(燃燈)부처님 이전의 일로서 중생들의 행해에 속하는 일이라 인가할 길이 없습니다.’

 ‘연등 부처님의 뒷일이라면 수기하겠는가?’

 ‘연등부처님의 뒤에는 또 인가할 사람이 있을 것이니, 제가 수기할 바가 아닙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스님께서는 뜬거품 같은 마음[浮漚識]이 요즘 평안하신지요?’

 ‘나는 처음부터 5 · 6년을 경과했다.’

 ‘그러시다면 스님께서는 전생에 이미 삼매의 정수리를 몽땅 뛰어넘으셨겠습니다.’

 ‘아니다.’

 ‘성품자리에서 일어나는 뜬거품도 편안하셨거늘 연등 부처님 이전에 어째서 그렇지 않았습니까?’

 ‘이치로는 그러하나 나는 아직 잘 간직[保任]하지 못했다.’

 ‘어디가 스님께서 잘 간직하지 못하신 곳입니까?’

 ‘그대는 입으로만 해탈치 말라. 듣지 못했는가? 안(安)선사와 수(秀)선사가 측천(則天)에서 시험을 받고 물에 들고서야 비로소 도가 높은 줄을 알게 되었으니 이 경지에서는 무쇠 부처라도 땀이 흐를 것이다. 그대는 용맹정진을 해야지 종일토록 입[口密]으로만 따지 말아야 한다.’

 위산스님께서 또 물으셨다.

 ‘그대는 3생(三生) 중에서 어느 생이 진짜라고 여기는지 말해 보라.’

 ‘생각[想]이 나면 모습[相]이 납니다. 그러나 저는 벌써 담박(淡泊)해졌습니다마는, 지금이야말로 번뇌의 흐름 속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지혜 눈[智眼]은 아직 흐리다. 법안(法眼)의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이 어찌 내 뜬거품 속 일을 알겠는가?’

 ‘태화(太和) 3년(829)에 스님의 분부를 받들고 진리를 참구하여 실상의 성품과 실제의 묘리를 몽땅 구명하여 찰나간에 자기 성품의 맑고 흐림을 가려냈고, 이론과 행의 갈피가 분명해졌습니다. 이로부터는 이어받을 종지(宗旨)는 비록 행과 이치이지만 힘과 작용은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러한 경지를 얻으셨습니까? 얻지 못했다면 해인삼매(海印三昧)로써 맞추어 보시면 앞에 배운 이와 뒤에 배울이가 딴 길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안목(眼目)이 이미 그러하니, 인연따라 아무 곳에서나 수행하면 가는 곳 그대로가 출가한 것과 똑 같으리라.’

 ‘제가 처음 스님께 절하고 하직할 때, 화상께서 지시해 주신 말씀이 있지 않았습니까?’

 ‘있었다.’

 ‘그것이 비록 이치[機理]이기는 하나 현실[事]에 부합됨이 없지 않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대는 정말 진(秦)나라 때 쓰던 탁락찬(鐸落讚 : 성 쌓던 기구, 쓸모없는 물건을 말함)이로다.’

 ‘자만할 일은 아닙니다.’

 ‘그대 마음도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