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조동록曹洞錄

[조산록/ 오가어록(五家語錄)] 2. 시중 56~62.

쪽빛마루 2015. 5. 3. 04:44

56.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요지입니까?"

 "도랑과 골짜기를 꽉 메웠다."

 

5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짐승이 사자입니까?"

 "아무 짐승도 가까이 하지 못하지."

 "어떤 짐승이 사자새끼입니까?"

 "부모를 능히 삼킬 수 있는 자이다."

 "이미 뭇 짐승이 가까이 하지 못한다 했는데 무엇 때문에 새끼한테 먹힐까요?"

 "새끼가 포효하면 할애비까지도 다 없어진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는가?"

 "다한 뒤엔 어찌됩니까?"

 "온몸이 아비에게 돌아가지."

 "할애비가 없어졌는데 아비는 어디로 돌아가는지요?"

 "돌아갈 곳도 없다."

 "앞에서는 무엇 때문에 온몸이 아비에게 돌아간다 하셨습니까?"

 "비유하면 왕자가 한 나라의 일을 해내는 것과 같다."

 다시 말씀하셨다.

 "여보게, 이 일은 한쪽에 막혀서는 안되니, 고목 위에서 다시 몇 송이 꽃을 따와야 하리라."

 

58.

 한 스님이 물었다.

 "시비가 일자마자 어지럽게 마음을 잃을 땐 어찌합니까?"

 "베어버려라."

 

59.

 스님께서 두순(杜順: 화엄종 초조)과 부대사(傅大士)가 지은 법신게(法身偈)를 읽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다."

 문도들이 다시 지어주십사 청하여 게송을 짓고 거기에 주석을 달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본래 나 아니며(내가 아니요)

나도 본래 그가 아니라오(그가 아니요)

그는 내가 없으면 죽고(너 때문에 살아가노라)

나는 그 없으면 나라네(따로 있지 않도다)

그가 나와 같으니, 부처이고(그래도 부처는 아니고)

내가 그와 같으니, 노새라네(둘 다 될 수 없도다)

공왕(空王 : 佛)의 봉급을 먹지 않는데(임금의 밥을 받거든 그대로 토해낼 것이요)

어느 겨를에 기러기 서신 전하랴(소식이 통하지 않는구나)

나는 횡신창(橫身唱)을 부르리니(멋대로 불러봐라)

그대는 배상모(背上毛)를 추어라(너와는 같지 않다)

백설곡(白雪曲 : 고상한 노래)을 부르려나 했더니(백설곡이라 여겼더니)

파가(巴歌 : 저속한 노래)가 될까 두렵구나.(이 구절에는 주를 붙일 수 없다)

 

60.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허공에 떴을 땐 어떻습니까?"

 "그래도 섬돌 아래 있는 자이다."

 "스님께서 섬돌 위로 맞이해 주십시오."

 "달이 진 뒤에 보세."

「조주어록(趙州語錄)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도 그대로 실어 둔다.」

 

61.

 스님께서 법어를 내리셨다.

 "만 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겠느냐?"

 대중이 대꾸가 없자 도연(道延)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없다는 것이 무엇인데?"

 "이제는 후려쳐도 부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를 깊이 긍정하셨다.

 

62.

 서원(西園)스님이 하루는 스스로 목욕물을 데우는데 한 스님이 물었다.

 "왜 사미를 시키지 않습니까?"

 서원스님은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 스님께 물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무리들은 손뼉을 치며 손바닥을 비볐는데 그 중 서원스님은 이상하구나. 구지(俱胝)스님의 한 손가락 선(禪)*은 알아차릴 곳에서 살피지 못했다 하리라."

 그 스님이 되물었다.

 "서원스님이 손뼉을 쳤던 일은 종[奴]이나 하는 짓이 아닙니까?"

 "그렇지."

 "본래자리[向上]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본분사[向上事]입니까?"

 스님께서는 "이 중놈아!" 하면서 꾸짖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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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삿갓을 쓰고 구지(俱胝)스님을 찾아 세 번 돌고 난 뒤에 말했다. "바로 말하면, 삿갓을 벗으리다." 이렇게 세 번 물었으나 모두 대답치 않으니, 비구니가 그대로 떠나려 하자 스님이 말했다. "해가 이미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어가라." "바로 말하면 자고 가겠소." 대답이 없자 비구니가 떠나니 이렇게 탄식하였다. "나는 비록 대장부의 형체를 갖추었으나 대장부의 기개가 없다." 그리고는 암자를 버리고 제방으로 참선을 하러 떠나려 하니, 그날 밤에 산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산을 떠나지 마시오. 오래지 않아 큰 보살이 와서 스님께 설법을 해주실 것이오." 과연 천룡(天龍)스님이 암자에 오니 스님이 맞이하고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천룡스님이 한 손가락을 세워 보이매 스님이 당장에 깨달았다. 이로부터 학인이 오면 스님은 손가락 하나만을 세울뿐, 다른 말은 없었다. 스님께서 외출하셨을 때 누군가 찾아와 "스님께서 어떤 법을 말씀하시든가" 하고 물으니 동자가 손가락을 세웠다. 돌아와서 말하니, 스님이 칼로 손가락을 끊었다. 펄펄 뛰면서 달아나는 것을 "동자야!" 하고 부르니, 동자가 머리를 돌렸다 스님이 손가락을 세우니, 동자가 활연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