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중(中)] 실중어요(室中語要) 132~149.

쪽빛마루 2015. 5. 14. 09:52

132.

 목주(睦州)스님이 한 스님을 부른 것*과 조주스님이 차를 마시고 물에 들어갔던 일과 설봉스님이 나무공을 굴렸던 일*과 귀종스님의 맷돌이야기*와 경두(經頭)스님의 이자(以字), 혜충국사의 물주발, 나한(羅漢)스님의 서자(書者)*,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출신처를 묻는데 동산(東山)이 물 위로 간다 한 화두를 들려주면서 “이 모두가 본분[向上]의 경계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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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주(睦州) 용흥사(龍興寺) 진존숙(陳尊宿)이 “대덕(大德)이여!” 하고 한 스님을 부르니 그 스님이 돌아보자 목주스님은 “한쪽밖에 못보는 놈이로다” 하였다.

* 설봉의 화두는  실중어요 108의 주 참조.

* 귀종 지상(歸宗智常)스님이 운력시간에 한 스님이 맷돌질하는 것을 보고 “맷돌은 그대가 돌리거니와 중쇠(중심에 박힌 축대)는 흔들지 말라” 하니 그 스님은 말이 막혔다.

* 나한서자(羅漢書字)화두를 「조정사원」에서는 앙산 혜적(仰山慧寂)스님의 ‘식자(識字)’ 화두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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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스님께서 시중하셨다.

 “눈에 닿는대로 막히지 않고 개념[名身]이나 설명[句身] 등 모든 것이 공함을 안다 하자. 그리하여 산하대지는 명칭일 뿐이며 그 명칭조차도 성립하지 못함을 통달한다면 삼매의 본성마다가 완전해졌다고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은 바람도 없는데 빙빙 도는 파도와 같다.

 깨달음[覺]에서 앎[知]을 잊어버릴 수 있으면 깨달음 그대로가 불성이니, 이를 일 없는 사람[無事人]이라 부르나 여기에 다시 향상의 구멍 하나가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134.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어느 곳이든 설법하지 않는 데가 없으니 종을 치고 북을 칠 때도 아니라 하지는 못한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곳이 있지도 않으며 또 모든 곳이 없지도 않다.”

 다시 말씀하셨다.

 “말할 땐 있다가 말하지 않을 땐 별안간 없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종지를 펴는 입장에서라면 안된다 하겠지만 중생을 위한 방편의 입장에서라면 옳다 하겠다.”

 

135.

 “생사와 열반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한 말을 들려주더니 부채를 잡아 일으키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무엇인데 한 덩어리가 되지 않았느냐? 이렇게 영리하질 못하다면, 아니 그렇다 해도 귀신의 굴 속에서 살 궁리하는 격이다.”

 

136.

 한 스님이 남전(南泉)스님에게 물었다.

 “우두(牛頭)스님이 4조(四祖)스님을 뵙기 전에는 어째서 모든 새들이 꽃을 따다가 바쳤을까요?”

 “걸음마다 부처님의 계단을 밟았기 때문이다.”

 “뵈온 뒤에는 어째서 꽃을 따다가 바치지 않았을까요?”

 “설사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나의 한 가닥 길보다야 나은 편이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남전스님은 걸음마다 높이 오를 줄만 알았을 뿐 공중에서 뛰어내릴 줄은 몰랐다.”

 그러자 한 스님이 말씀하셨다.

 “무엇이 걸음마다 높이 오르는 것입니까?”

 “ 향적세계(香積世界 : 佛界)이다.”

 “무엇이 공중에서 뛰어내리는 것입니까?”

 “도량과 골짜기를 꽉 메운다.”

 

137.

 스님께서 언젠가는 말씀하셨다.

 “가령 불법(佛法)이라는 두 글자를 누가 묻는다면 동서남북 사방으로 자재하게 아침에 인도까지 갔다가 저녁에 이 나라에 돌아온다 하리라. 그렇긴 해도 뒷날 잘못 들먹거려서는 안되느니라.”

 

138.

 “마음은 모든 경계를 따라 구르는데 경계는 실로 오묘하구나” 하신 조사의 게송을 들려주자 한 스님이 물었다.

 “‘구르는 경계는 실로 오묘하구나’ 한 말은 무슨 뜻입니까?”

 “더듬거리는 혀끝으로 나는 거꾸러져 3천리를 도망간다.”

 다시 물었다.

 “무엇이 흐름을 따라 본성을 터득하는 것입니까?”

 “만두, 찐 떡, 마하반야바라밀.”

 

139.

 위감군(韋監軍)이 현사(玄沙)스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차에 말하였다.

 “점파국(占波國 : 서역) 사람의 말은 상당히 알아듣기 어렵더군요. 더구나 5천축국의 범어(梵語)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현사스님은 큰 찻잔을 들어 올리더니 말씀하셨다.

 “이것을 알 수 있다면 알 수 있지.”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현사스님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구구한 말을 썼을까?”하더니 “조금 전에 무슨 말을 하였지?”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무슨 알아듣기 어려움이 있으랴.”

 

140.

 “빈 이름[空名]으로 빈 색[空色]을 부른다” 한 옛사람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주장자는 빈 이름이 아니며 그렇게 불리는 것도 빈 것이 아니다. 무엇이 "주장자는 빈 이름이 아니다" 한 것이냐?”

 

141.

 남전스님이 시중하셨다.

 “어려서부터 물소 한 마리를 길렀는데 시내[溪] 동쪽으로 놓아주자니 어쩔 수 없이 남의 나라 물과 풀을 먹겠고, 서쪽 시내로 놓아주어도 그래도 남의 나라 물과 풀을 먹게 되겠으니 차라리 전혀 보이지 않게 가는대로 조금씩 들여 보내느니만 못하겠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하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전스님의 물소는 가는대로 조금씩 들여보냈다. 자, 말해보라. 소 안으로 들어갔는지, 소 밖으로 들어갔는지를. 설사 그대들이 여기에서 들어간 곳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해도 나는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소를 찾으니 뒤에 있던가?”

 장경(長慶)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대 말해보라. 옛사람의 앞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었는지. 뒷일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었는지를.”

 

142.

 왕대왕(王大王)이 설봉스님에게 말하였다.

 “법당 한 군데에 기와를 올릴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공왕전(空王殿) 한 곳을 골라 덮는 것이 어떨는지요?”

 “스님께서 견본을 보여주십시오.”

 설봉스님은 양손을 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한 번에 49를 드는구나.”

 

143.

 보자(報慈)스님이 용아(龍牙)스님을 찬탄하는 게송을 지었다.

 

해는 첩첩 산중에 뜨고

달은 두렷이 문에 와 있네

몸이 없는 것은 아니나

완전히 드러내고 싶지 않다오.

日出連山  月圓當戶

不是無身  不欲全露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완전히 드러내 주십시오.”

 그러자 용아스님은 휘장을 열더니 말하였다.

 “보았느냐?”

 “못 보았습니다.”

 “눈을 가져 오너라.”

 그 뒤 보자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한마디 하였다.

 “용아스님은 반쯤을 말했을 뿐이다.”

 스님은 내가 말해 주마 하면서 한 스님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 스님이 말하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그대에게 말해 주어도 무방하겠다.”

 

144.

 스님께서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방에서는 다들 법도[繩墨]에서 벗어난다고들 하나 여기 나는 그렇지 않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짚신 한 컬레에 30푼[文]이다.”

 

145.

 “진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니 모습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변함 없도다” 한 것을 들려주자 한 스님이 불쑥 물었다.

 “무엇이 변함없는 것입니까?”

 “등불이 보이느냐?”

 “보입니다.”

 “고요한 곳이로다. 사바하…”

 

146.

 스님께서 시중하셨다.

 “여러분은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안부 묻는 일이라면 없질 않았다. 물을 지날 때는 무엇을 가지고 지나겠느냐?”

 오래 살던 스님 하나가 “걸어가지요” 하고 대꾸하자 스님은 매우 기뻐하였다.

 

147.

 한 스님이 대수(大隨)스님을 하직하자 대수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아미산(峨眉山) 보현보살께 참례하러 갑니다.”

 대수스님은 불자를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문수고 보현이고 모두 여기에 있다.”

 그 스님은 일원상(一圓相)을 그려 등뒤로 던지더니 별안간 두손을 폈다.

 대수 스님은 “시자야, 이 스님에게 차 한 첩 주어라” 하셨다.

 “나라면 그렇지 하지 않겠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서천에서 베인 목과 팔을 여기에서 받아가지고 나간다.”

 

148.

 황벽(黃檗)스님이 하루는 손가락을 까딱하는 시늉을 하면서 말씀하셨다.

 “천하의 큰스님이 모두 여기에 있다. 내가 만일 한 가닥 길을 놓아준다면 그대들이 마음대로 종횡무진하겠지만 놓아주지 않는다면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지 못하리라.”

 그러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한 가닥 길을 놓아준다는 것은 어떤 경우입니까?”

 “종횡무진이다.”

 “놓아주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지 못하리라 한 것은 어떤 경우입니까?”

 “두루하다[普].”

 다시 한 스님이 이를 들려주며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종횡무진입니까?”

 “내 나이 많은 것이 염려스럽다.”

 “무엇이 두루함입니까?”

 “하늘의 빛이 돌이켜 비춘다.”

 “무엇이 하늘의 빛이 돌이켜 비추는 것입니까?”

 “백골과 썩은 고기를 아는 사람이 적구나.”

 

149.

 스님께서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덩이 두렷한 빛이 밝은 지가 오래되었구나. 누구 질문할 사람이 있느냐?”

 그러자 한 스님이 불쑥 물었다.

 “한 덩이 두렷한 빛이 밝은 지가 오래 되었다는 뜻이 무엇인지요?”

 “인도에서는 목을 베고 팔을 끊는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수미산을 없애버리고 법당 대들보를 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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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는 논쟁을 하다가 자기의 오류를 시인하게 되면 분해서 자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