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중(中)] 실중어요(室中語要) 150~167.

쪽빛마루 2015. 5. 14. 09:54

150.

 스님께서 하루는 가사를 걸치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법신을 털어버렸다.”

 다들 아무 대꾸가 없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나에게 묻도록 하라.”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법신을 털어버린 뜻은 무엇인지요?”

 “나도 그대가 친절하다는 것을 안다.”

 

151.

 현사스님이 시중하셨다.

 “제방의 큰 스님들이 모두가 중생들을 지도하여 이롭게 한다고 말하는데 세 종류의 병든 사람이 찾아오면 어떻게 지도하겠느냐? 봉사 병을 앓는 사람은 백추를 잡고 불자를 세워도 보지 못할 것이며, 귀머거리 병을 앓는 사람은 언어삼매(言語三昧)를 듣지 못할 것이며, 벙어리 병을 앓는 사람에겐 말 좀 해보라 해도 하지 못할 것이며, 벙어리 병을 앓는 사람에겐 말 좀 해보라 해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지도하겠느냐? 이 사람들을 지도하지 못한다면 불법은 영험이 없으리라.”

 한 스님이 이를 들려주며 자세한 설명을 청하자 스님께서는 “그대는 절을 하라” 고 말씀하셨다.

 그 스님이 절하고 일어나는데 스님이 주장자로 밀치니 그 스님이 뒤로 물러나자 말씀하셨다.

 “그대는 봉사 병을 앓지는 않는구나.”

 다시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부르니 그 스님이 가까이 가자 말씀하셨다.

 “그대는 귀머거리 병을 앓지도 않는구나.”

 이어서 주장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벙어리 병을 앓지도 않는구나.”

 그 스님은 여기에서 깨우친[省] 바가 있었다.

 

152.

 “말 한마디 꺼내자마자 온 누리가 다 거두어진다” 한 옛사람의 말을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말해보라 이 무슨 말이냐?”

 그리고는 스스로 “봄새가 올 때 서쪽 고개로 오른다” 하시고는 어떤 스님더러 “그대가 나에게 물으라” 하셨다. 그 스님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묻자 스님은 “아[噫]” 하고 탄식했다.

 

153.

 “모든 언어는 제바종(提婆宗)*이며, 이로써 주체를 삼는다” 한 마대사(馬大師 : 강서 마조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만 묻는 사람이 없구나.”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제바종입니까?”

 “서천에는 96종의 외도가 있는데 그 가운데 너는 가장 못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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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바종 : 제바는 인도 외도였는데 뒤에 용수에게 귀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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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모든 법이 다르지 않다 해서 학 다리를 잘라 오리 다리를 이어 주고 산을 깎아 골짜기를 채우고서 차이가 없다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 조법사(肇法師 : 승조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긴 것은 본래 길고 짧은 것은 본래 짧다.”

 다시 말씀하셨다.

 “이 법이 법 자리에 머물어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

 이어서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주장자는 상주하는 법이 아니다.”

 

155.

 “일념겁(一念劫)에 일체지(一切智)를 받아들인다” 한 옛사람의 말씀을 들려주며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하늘 땅 온 누리가 모조리 이 끝에 있으니 이를 꿰뚫을 수만 있다면 이 주장자도 보이지 않으리라. 설사 그렇다 해도 역시 틀린다.”

 

156.

 수보리(須菩提)가 설법을 하자 제석천에서 꽃비를 내리니 수보리존자가 물었다.

 “이 꽃을 하늘에서 가져왔는가?”

 제석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땅에서 가져왔는가?”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받았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났는가?”

 제석이 손을 들자 존자는 말하였다.

 “그래, 그렇고 말고.”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제석이 손을 들었던 경계는 어떠하냐? 그대의 4대 5온(四大五蘊)과 석가부처님의 그것과는 같으냐 다르냐?”

 

157.

 세존이 처음 태어나시어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일곱 걸음을 걷더니 사방으로 눈을 두리번거리며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하셨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때 보았더라면 한 방에 쳐 죽여 개밥으로 주어 천하 태평을 도모하는 데에 한 몫 했을텐데.”

 

158.

 화산(禾山)스님이 시중하여, “여기 솜씨 좋은 종장[作家]이 있거든 나오너라” 하니 한 스님이 나와 말하기를, “저 가운데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왔구나[格].”

 

159.

 한 스님이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기 전의 경계는 어떻습니까?”

 설봉스님은 주장자를 옆으로 어루만지면서 앉았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항상하다[常].”

 

160.

 덕산스님이 유나(維那)에게 물었다.

 “몇 사람이나 새로 왔느냐?”

 “여덟 사람입니다.”

 “전좌(典座)를 불러 오너라. 한꺼번에 조사하리라.”

 스님께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拈] 말씀하셨다.

 “다시 무슨 조사한다 할 것이 있느냐?”

 

161.

 설봉스님이 한 스님의 속을 떠보려고 말하였다.

 “어디로 가느냐?”

 “알아내려면 가는 곳을 알 수 있을텐데요.”

 “그대는 일 마친 사람[了事人]인데 어지럽게 다녀서 무엇 하려느냐?”

 “사람 모욕하지 마십시오.”

 “내 그대를 모욕했구나. 옛사람(조과 도림선사)이 실오라기 하나[布毛]를 불었던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설명해 보아라.”

 “국 찌꺼기와 쉰 밥은 이미 누군가가 먹어버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앞의 말에 대해 달리 말씀[別語]하셨다.

 “부딪쳤다 하면 바로 똥냄새가 나는구나.”

 뒷말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하늘을 뚫는 독수리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죽은 물 속의 두꺼비였습니다.”

 

162.

 소산(韶山)스님이 한 스님의 속셈을 떠보느라고 이렇게 말하였다.

 “말 잘하는 백두인(白頭因)이 아니냐?”

 백두인이 대답하였다.

 “부끄럽습니다.”

 “그래 입이 얼마나 되느냐?”

 “온몸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똥오줌은 어디에다 싸겠느냐?”

 “스님 입 속에다 싸겠습니다.”

 “내게 입이 있다면 내 입 속에다 싸겠지만 내게 입이 없으면 어디에 누겠느냐?”

 대꾸가 없자 소산스님은 별안간 후려쳤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이런, 말을 해서 속을 들키는 중 같으니, 몽둥이 30대는 맞아야겠구나.”

 또 한마디 대신 말씀하셨다.

 “사자새끼라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다시 말씀하셨다.

 “소산이 오늘은 빙소와해(氷消瓦解)하였군.”

 

163.

 한 스님이 조계(曹溪)에 이르자 가사와 발우[衣鉢]를 지키는 상좌가 옷을 꺼내 들더니 말하였다.

 “이것이 대유령에서 들어도 들리지 않았던 의발입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어찌해서 그대 손에 있습니까?”

 상좌는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모르는구나…”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멀리서 소문을 듣는 것이 직접 찾아가느니만 못합니다.”

 다시 한마디 하셨다.

 “사자새끼라고 여겼더니….”

 

164.

 목주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청화엄(淸華嚴)이 아닌가?”

 “녜, 그렇습니다마는” 하자 목주스님이 말씀하셨다.

 “꿈에서라도 화엄을 보았느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문앞이 떠들썩하군.”

 

165.

 호남의 보자(報慈)스님이 법어를 내리셨다.

 “나에게 어디에나 두루한 한마디가 있다.”

 그러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어디에나 두루해 있다는 한마디입니까?”

 “비거나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지” 하고는 달리 말씀하셨다.

 “왜 바깥에서 묻지 않느냐?”

 

166.

 남전스님이 시중하셨다.

 “어젯밤 삼경에 문수와 보현이 서로 방망이로 20대씩 때리면서 두 철위산(鐵圍山)으로 떨어졌다.”

 조주가 대중 가운데서 나오더니 말하였다.

 “스님의 방망이는 누구에게 먹이시렵니까?”

 “내게 무슨 허물이 있는가?”

 조주스님은 절을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의 자비를 깊이 받고 저는 스님의 법에 귀의하여 안락을 얻었습니다.”

 

167.

 숭수(崇壽)스님이 창너머로 호떡 만드는 한 스님을 보더니 물었다.

 “내가 보이느냐?”

 그 스님이 말했다.

 “보이지 않습니다.”

 “나에게 호떡 값을 되돌려다오.”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호떡 화로에 절이나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