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방회 화상 후록
(楊岐方會和尙後錄)
1.
스님께서 처음 절에 들어가 개당하실 때 소(疏)를 선포하고 나서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여러분이 해산해버린다 해도 벌써 두 번째 세 번째에 떨어질 것이며, 해산하지 않는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하리라.
의양(宜陽)에 물이 수려하니 부평초가 초강(楚江)에 가득하다.
[宜陽秀水 萍實楚江]"
드디어 법좌에 올라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 향 하나로 우리 황제 천년토록 성수(聖壽)를
누리시고 불일(佛日)이 영원히 창성하기를 받드옵니다. 다음 향 하나로는 주현의 관료와 신심있는 신도들을 위해 바칩니다.
이 향의 귀착점을 여러분은 아느냐? 귀착점을 안다면 더 이상 두입술을 벌릴 것이 없겠지만, 모른다면 먼저는 남원(南源)에 머물렀고, 다음으로 석상(石霜)에 머물렀으며, 지금은 담주의 흥화선사(興化禪寺)에 머무는 분을 위한 것이다. 여러분은 흥화선사를 아느냐? 모른다면 윗 조사에게 누 끼침을 면치 못하리라."
그리고는 가좌부를 하고 앉았다.
유나(維那)가 백추(白槌)를 친 후에 말씀하셨다.
"벌써 제2의(第二義)에 떨어졌구나. 대중들이여, 그냥 해산했다면 그래도 좋았으려만 이미 해산을 하지 않았으니 의심이 있거든 질문하라."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어느 집안의 곡조를 부르며 누구의 종풍을 이으셨는지요."
"강 건너서 북을 치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흥화의
맏이며 임제의 자손이시군요."
"오늘은 재가 있으니 경찬(慶讚)을 베풀겠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다시 질문할 자가 있느냐? 그러므로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수승하다 하였다" 하시고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백천의 부처님들과 천하의 노스님들이 세간에 출현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을 곧장 지적하여 견성성불하게 하였다. 여기에서 알아낸다면 백천의 모든 부처님과 자리를 함께 하려니와[同參] 여기에서 알아내지 못한다면 내가 구업 짓는 일을 면치 못하리라.
더구나 여러분은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은 사람이니
어찌 스스로 퇴굴하려 하는가. 그래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 보라. 영산의 마지막 한마디[末後一句]를 무어라고 해야겠느냐? 기억하지 못한다면 오늘은 낭패를 보았다.
나는 그저 '방회'로서 구름 깊은 곳에 못난 자신을
숨기고 대중을 따라 세월이나 보내고 싶었으나 군현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신도들도 모두 3보(三寶)를 숭상하여
부처님의 수명을 잇고 법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 산승에게 이 절에 주지하게 하였으니 역시 작은 인연이 아니다. 터럭만큼의 착함을 다하여 위로는 황제의 만세를 축원하고 재상들의 천추를 빈다.
대중들이여 말해 보라. 오늘 일은 어떤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내년에 새 가지가 돋아나 쉴새없이 봄바람에 흔들리리니 기다려 볼 일이다."
2.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머리는 이고 있으나 책은 짊어지지 않았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 하였다" 하고는 주장자를 들어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다.
"대천세계가 산산이 부서졌다. 발우를 들고 향적세계(香積世界)에서 밥을 먹어라."
3.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움직이지 않는 분[不動尊]입니까?"
"대중들이여, 일제히 힘쓰도록 하여라."
"그렇다면 향과 등불이 끊이지 않겠군요."
"다행히 관계가 없다."
스님께서 다시 말을 이으셨다.
"모든 법이 다 불법이어서 법당은 절문[三門]을 마주하고, 승당은 부엌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을 알았다면 주장자와 발우를 걸머지고 천하를 마음대로 다녀도 되겠지만 모른다면 다시 면벽(面壁)을 하도록 하라."
4.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스님께서는 "도둑질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하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만법은 마음의 빛이며 모든 인연은 다만 본성의 밝음이라. 미혹한 이 깨달은 이가 본래 없음을 이 자리에서 알면 될 뿐이니, 산하대지에 무슨 허물이 있으랴. 산하대지와 눈앞에 있는 법 모두가 여러분의 발꿈치 아래 있으나 스스로가 믿지 않을 뿐이니, 가히 옛날의 석가가 이전 사람이 아니며 지금의 미륵이 뒷사람이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이런 나를 두고 모자를 사놓고 머리를 맞춰본다[買帽相頭] 하리라."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은 6근(六根)이며 법은 6진(六塵)이다. 이 두 가지는 마치 거울에 낀 때와 같아서 때가 다할 때 빛이 비로서 나타나듯, 마음과 법을 둘 다 잊으니 성품 그대로가 진실이다."
그리고는 선상을 손으로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산하대지가 어디에 있느냐. 자, 남에게 속지 않을 한마디를 무어라고 하겠느냐? 말할 수 있다면 네거리에서 한마디 해 보아라. 없다면 내가 오늘 손해를 보았다."
6.
상당하여 "한 티끌 일기만 하면 온누리를 다 거둬들인다" 하더니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수미산 위에서 말을 달리고 큰 바다 속에서 깡충 뛰나 시끄러운 시장 가운데서 홀연히 이것에 부딪치고서야 사람들은 그것이 있음을 안다.
말해 보라. 깜깜한 속에서 바늘을 뚫는 한 구절을 무어라고 하겠는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평소에 입을 자주 열려 하지 않음은 온몸에 누더기를 입었기 때문이다."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은 만가지 경계를 따라 바뀌는데, 바뀌는 그곳은 실로 오묘하고 흐름 따라 본성을 알아내니 기쁨도 근심도 없다."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천당 지옥이 그대들 머리를 덮었고, 석가노인이 그대들 발꿈치 아래 있다.
밝음을 마주하고 어둠을 대하고서야 사람들은 그것이 있는 줄 아니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 콧구멍을 붙들어 오너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앞에 나와서 한번 기상을 뿜어 보라. 없다면 내가 오늘 손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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