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양기록·황룡록 楊岐錄·黃龍錄

[양기방회화상 후록] 17~34.

쪽빛마루 2015. 5. 31. 11:01

17.

 상당하자 세속의 선비가 물었다.

 "사람의 왕과 법이 왕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낚싯배 위의 사씨네 셋째 아들[謝三郞]이다."

 "이 일은 이제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만 운개 가풍의 일은 어떻습니까?"

 "머리에 두른 삼베모자를 벗어 술 값을 치른다."

 "홀연히 손님이 찾아오면 어떻게 대접해야 합니까?"

 "두잔, 석잔, 한가한 일이니 취한 뒤에는 주인이 남을 웃길 것이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다 불법이다" 하고는 선상을 손으로 한 번 내려치며 말씀하셨다.

 "산하대지가 산산이 부서졌다. 나에게 불법을 가져와 보아라."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하늘을 한 바퀴 도는 매[鶻]는 무엇과 같이 생겼는가. 만리에 구름 한 점만이 떠 있구나."

 

18.

 상당하여 손으로 선상을 치고는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낚싯대가 다 쪼개져 대나무를 다시 재배하려는데 일하는 것을 계산하지 않아야 바로 쉴 수 있다."

 

1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가이없는 국토에 나와 남이 털끝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고, 세고금의 처음과 끝이 지금 당장의 생각을 여의지 않았다."

 선상을 손으로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석가노인은 나이가 몇이나 되었는지 아느냐? 알았다면 인간천상에 자유롭게 출입하겠지만, 모른다면 내가 말해 주겠다. 여래는 2천년."

 

2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하늘 땅 붙잡기를 몇 만번이었던가. 문수 보현이 어찌 볼 수 있으랴. 오늘은 그대들을 위해 거듭 설명해 주노니 남산에서는 자라코 독사를 잘 살필 일이다."

 주장자로 한 번 내려쳤다.

 

21.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가 일체[一卽一切], 일체가 하나[一切卽一]이다" 하고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산하대지를 삼켜버렸으니 과거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천하의 노스님이 모조리 이 주장자 끝에 있다."

 주장자로 한 획을 긋고는 "() 한 번도 필요치 않다" 하셨.

 

2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화살을 전하여 명령을 내리니 석가노인이 선봉을 서고, 보리달마가 후미가 되어 진()의 형세가 이미 완벽하니 천하가 태평하구나. 말해 보라. 걸음을 떼지 않는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한 가지 일을 겪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나지 않는다. 참구하라."

 

2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 편안하며, 왕은 하나를 얻어 천하를 다스린다. 납승은 하나를 얻어 무얼 하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발우 입이 하늘을 향하였다.

 

2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만가지 경계를 따라 변하는데 변하는 곳은 실로 깊고 묘하다."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하였다.

 "석가노인이 초명(蟭)벌레에게 잡혀 먹혔다. 기쁘다천하가 태평해졌구나."

 그리고는 악하고 할을 한 번 내질렀다.

 

2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때맞은 비가 주룩주룩 내려 농사꾼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물물마다 찬란하니 금을 금과 바꿀 필요가 없다. 참구하라."

 

2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의 모습이 항상하다.석가노인의 콧구멍은 하늘을 돌고, 누지여래(樓至如來)의 두 다리는 땅을 밟았다. 말해 보라. 이 두사람에게 허물이 있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개는 문득 짖고 소는 쟁기를 끈다. 납승이 그래가지고는 껍데기도 못 더듬어 본 것이다."

 

27.

 상당하여 대중을 돌아보며 악하고 할을 하고는 주장자를 세워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다.

 "맑고 평화로운 세계에서는시장에서 마음대로 빼앗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2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석가노인이 처음 탄생했을 때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눈으로 사방을 돌아보고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요즈음 납자들은 이것을 본떠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니 나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본보기를 지어주겠."

 한참 잠자코 있더니 "()의 기운이 움틀 때는 굳은 땅이 없" 하셨다.

 

2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미륵, 참 미륵이여. 몸을 천백억으로 나누어서 당시 사람들에게 때때로 보이나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구나."

 스님께서는 주장자를 던지고는 바로 방장실로 돌아가셨다.

 

30.

 상당하여 "향상일로(向上一路)는 모든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하신 반산(盤山)스님의 말씀을 들려주더니 "입에서 집착을 냈구" 하셨다.

 "학인이 육신만 수고롭게 하는 것이 원숭이가 달그림자를 잡으려 하는 것과 같구나"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반산스님의 이러한 말씀도 자기 때문에 남을 방해한 것이" 하셨다.

 

 

3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미륵, 참 미륵이여. 천백억으로 몸을 나투어서 때때로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으나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스님께서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주장자가 어찌 미륵이 아니랴. 여러분은 보았느냐. 주장자가 눕는 것은 미륵이 빛을 놓아 대지가 진동함이며, 주장자가 서는 것은 미륵이 빛을 놓아 33천을 비춤이다. 주장자가 눕지도 서지도 않음은 미륵이 여러분의 발꿈치 아래서 여러분을 도와 반야를 설명함이다. 알았다면 콧구멍을 잡고 발우 속에서 한마디 해 보아. 아는 이가 없다면 내가 손해를 보았다."

 

3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마디 말에는 범부와 성인이 함께 들어 있다. 낚시를 파하고 낚시줄을 거두어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3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이 32일이구나. 구담(瞿曇)이 깨어나지도 않고 꽃가지를 들고 여러 이야기를 하니 가섭은 취()한 채로 다시 끝말[後語]을 하였다. 이 이야기를 잘못 들먹여서는 안된다."

 

3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아침에는 개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오니 백성들이 임금의 다스림을 기뻐한다. 구담노인은 아직 뒷말을 하지 않았으니 내가 오늘 대중을 위해 말해 주리라.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태평은 본래 장군이 이룩하는 것이나 장군에게는 태평을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