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조주록趙州錄

[조주록 上] 1. 행장

쪽빛마루 2015. 6. 5. 17:42

조주록

 

1. 행 장

 

 스님은 남전(南泉 : 748~835)스님의 문인이다. 속성은 학()씨이며, 본시 조주(曹州) 학향(郝鄕) 사람으로 법명은 종심(從諗)이다. 진부(鎭府)에 있는 탑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스님께서는 칠백 갑자*나 나 살았다! 무종(武宗)의 폐불법란(癈佛法難 : 842~845)이 있자, 저래산(岨崍山)으로 피신하여 나무열매를 먹고 풀 옷을 입으면서도 승려로서의 위의(威儀)를 바꾸지 않으셨다.”

 

 스님께서 처음 은사스님을 따라 행각하다가 남전스님 회하에 이르렀다. 은사스님이 먼저 인사를 드리고 나서 스님(조주)이 인사를 드렸는데, 남전스님은 그때 방장실에 누워 있다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불쑥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모습[瑞像]은 보았느냐?”

 상서로운 모습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만 누워 계신 여래를 보옵니다.”

 남전스님은 이에 벌떡 일어나 물었다.

 너는 주인 있는 사미냐, 주인 없는 사미냐?”

 주인 있는 사미입니다.”

 누가 너의 주인이냐?”

 정월이라 아직도 날씨가 차갑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기거하심에 존체 만복하소서.”

 남전스님은 이에 유나(維那)를 불러 말씀하셨다.

 이 사미에게는 특별한 곳에 자리를 주도록 하라.”

 스님께서는 구족계를 받고 난 다음, 은사스님이 조주(曹州)의 서쪽 호국원(護國院)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곳으로 돌아가 은사스님을 찾아뵈었다. 스님이 도착하자 은사스님은 사람을 시켜서 학씨에게 알렸다.

 귀댁의 자제가 행각길에서 돌아왔습니다.”

 학씨 집안 친척들은 몹시 기뻐하며 다음날을 기다렸다가 함께 보러 가기로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속세의 티끌과 애정의 그물은 다할 날이 없다. 이미 양친을 하직하고 출가하였는데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그리고는 그날 밤으로 짐을 챙겨 행각에 나섰다.

 그 후 물병과 석장을 지니고 제방을 두루 다니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말씀하셨다.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스님께서는 나이 80이 되어서야 조주성(曹州城) 동쪽 관음원(觀音院)에 머무셨는데, 돌다리(石橋)에서 10리 정도 되는 곳이었다. 그때부터 주지살이를 하셨는데, 궁한 살림에도 옛사람의 뜻을 본받아 승당에는 전가(前架 : 승당 앞에 설치된 좌선하는 자리)나 후가(後架 : 승당 뒤쪽에 설치된 세면장 등)도 없었고, 겨우 공양을 마련해 먹을 정도였다. 선상은 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타다 남은 부지깽이를 노끈으로 묶어 두었는데, 누가 새로 만들어 드리려 하면 그때마다 허락지 않으셨다. 40년 주지하는 동안에 편지 한 통을 시주에게 보낸 일이 없었다.

 

 한번은 남방에서 한 스님이 와서 설봉(雪峰 : 822~908)스님과 있었던 일을 거론하였다.

 “제가 설봉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태고적 개울에 찬 샘이 솟을 때는 어떻습니까?’ 

 설봉스님이 말하였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도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마시는 이는 어떻습니까?’

 입으로 들이마시지 않는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셨다.

 입으로 들이마시지 않으면 콧구멍으로 들이마시겠군.”

 그 스님이 스님(조주)께 물었다.

 태고적 개울에 찬 샘이 솟을 때는 어떻습니까?”

 쓰다().”

 마시는 이는 어떻습니까?”

 죽는다.”

 설봉스님은 스님의 이 말을 듣고 찬탄하였다.

 옛 부처님이시다,옛 부처님이시다!”

 설봉스님은 이런 일이 있은 뒤로 학인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뒤로 한번은 하북(河北)의 연왕(燕王)이 군사를 이끌고 진부(鎭府)를 점령하기 위하여 경계까지 이르렀는데, 기상(氣像)을 보는 사람이 아뢰었다.

 “조주 땅은 성인이 사는 곳이라 싸우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연왕과 조왕(趙王)은 연회를 베풀고 싸우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연왕이 물었다.

 조나라에 훌륭한 분이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화엄경을 강의하는 대사님이 계시는데, 절개와 수행이 높으십니다. 만약 그 해에 큰 가뭄이 들어 모두 오대산에 가서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면, 대사께서 돌아오기도 전에 감로 같은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이에 연왕은 말하였다.

 그다지 훌륭한 것 같지는 않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여기서 120리를 가면 조주 관음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선사(禪師) 한 분이 계시는데 나이와 승랍이 높고 도를 보은 안목이 밝습니다.”

 그러자 모두 말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상서로운 징조가 아니겠는가.”

 두 왕이 수레를 풀고 이미 절 안에 이르렀는데, 스님께서는 똑바로 앉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셨다. 연왕이 물었다.

 인왕(人王)이 높습니까, 법왕(法王)이 높습니까?”

 인왕이라면 인왕 가운데서 높고, 법왕이라면 법왕 가운데서 높습니다.”

 연왕은 그렇다고 하였다.

 스님께서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물으셨다.

 어느 분이 진부(鎭府)의 대왕입니까?”

 조왕이 대답하였다.

 저올시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승은 그저 산야에서 남루하게 지내다 보니 미처 찾아뵙지도 못했습니다.”

 잠시 후 주위사람이 대왕을 위하여 설법을 청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주위사람이 많은데 어찌 노승더러 설법하라고 하십니까?”

 이에 주위사람에게 명하여 스님 주변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문원(文遠)이라는 사미가 있다가 큰소리로 말하였다.

 “대왕께 아룁니다. 그 주위사람이 아닙니다.”

 그러자 대왕이 물었다.

 “어떤 주위사람 말입니까?”

 대왕에게는 존호(尊號)가 많아서 스님께서는 그 때문에 설법하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연왕이 말하였다.

 “선사께서는 이름 따위는 개의치 마시고 설법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아십시오. 과거세의 권속은 모두가 원수입니다. 우리 부처님 세존의 명호는 한 번만 불러도 죄가 소멸하고 복이 생기는데, 대왕의 선조들은 사람들이 이름을 입에 담기만해도 금방 성을 냅니다.”

 스님은 자비롭게도 지치는 줄 모르고 많은 설법을 하셨다. 그때 두 대왕은 머리를 조아리고 찬탄하며 존경해 마지않았다.

 다음날 두 왕이 돌아가려고 하는데, 연왕 휘하의 선봉장이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임금에게 오만하게 대하였음을 힐책하기 위하여 새벽에 절 안으로 들어왔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듣고 나가서 영접하니 선봉장이 물었다.

 어제는 두 대왕이 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으시더니, 오늘은 어째서 제가 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맞아주십니까?”

 그대[都衙]가 대왕만 같다면 노승도 일어나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오.”

 선봉장은 이 말을 듣고 스님께 두 번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 뒤 조왕은 사신을 보내 스님을 모시고 공양 올리고자 하였다. 스님께서 성문에 다다르자 온 성안이 모두 예의를 갖추고 영접하였다. 스님께서 성안에 들어와 보배수레에서 내리자마자 왕은 절을 올리고 스님께 전각[殿]의 가운데 자리에 앉으시라고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이마에 손을 대고 내다보면서 말하였다.

 계단 아래 서 있는 이들은 무슨 관청의 책임자입니까?”

 주위사람들이 말하였다.

 여러 절의 노스님들과 대사 대덕들입니다.”

 저 분들도 각기 한 지방을 맡아 가르침을 펴는 분들인데, 그 분들이 계단 아래 서 있다면 노승도 일어나겠습니다.”

 그러자 왕은 모두 전각 위로 오르도록 하였다.

 이 날 법회[齊宴]가 끝나려고 할 때, 승려든 관원이든 위로부터 아래까지 차례차례 한 사람이 질문 하나씩을 하도록 하였다.

 한 사람이 불법에 대해 묻자 스님께서는 멀리 바라보면서 물었다.

 무얼 하는건가?”

 불법을 묻고 있습니다.”

 노승이 이미 여기에 앉아 있는데, 어디에 무슨 법을 묻는건가? 두 부처님은 함께 교화하지 않는 법이오.”*

 왕은 여기서 그만두도록 하였다. 그때 왕비[王后]가 왕과 함께 곁에서스님을 모시고 서 있다가 여쭈었다.

 선사께서는 대왕을 위하여 마정수기(摩頂授記 : 부처님께서 수기하시면서 제자의 이마를 만져주심)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손으로 대왕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노승만큼 장수하소서.”

 이때 스님을 임시로 가까운 절에 계시도록 하고, 날짜와 장소를 택하여 선원을 세우기로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스님께서는 사람을 시켜 대왕에게 알렸다.

 만약 풀 한 포기라도 건드리면 노승은 다시 조주로 돌아갈 것이오.”

 그때 두행군(竇行軍)이란 사람이 과수원 한 곳을 희사하였다. 그곳은 일만 오천 관의 값이 나가는 땅이었는데, ‘진제선원(眞際禪院)’ 또두씨네 동산(竇家園)이라고 불렀다.

 스님께서 그 절에 들어오시자 바다 같은 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때 조왕은 예의를 다하여 연왕이 유주(留州)에서 조정에 아뢰어 받은 금란가사[命服]를 바쳤으며, 진부(鎭府)에서는 위의를 갖추어 이를 영접하였다. 스님께서는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으시니, 곁엣 사람들이 상자를 스님 앞에 옮겨 놓으면서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선사님의 불법을 위하시기 때문이니, 이 옷을 꼭 입으시기 바라십니다.”

 노승은 불법을 위하기 때문에 이 옷을 입지 않습니다.”

 곁에서 말하였다.

 그렇지만 대왕의 체면을 보아 주십시오.”

 그게 속관(俗官)에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마침내 대왕이 몸소 옷을 들어 스님 몸 위에 걸쳐드리면서 두 번 세 번 절하고 축복해 드리자, 스님께서는 그저 받기만 할 뿐이었다.

 

 스님께서는 조주(曹州)2년을 살았는데,* 세연을 마치려 하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을 뜨고 나면 태워버리되 사리를 골라 거둘 것 없다. 종사의 제자는 세속 사람들과는 다르다. 더군다나 몸뚱이는 허깨비니, 무슨 사리가 생기겠느냐, 이런 일은 가당치 않다.”

 스님께서는 제자를 시켜 불자(拂子)를 조왕에게 보내면서 말을 전하였다.

 이것은 노승이 일생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한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무자(戊子)1110일에 단정히 앉은 채로 임종하셨다. 그때 두씨네 동산에는 승속의 수레를 끄는 말과 수많은 사람의 슬피우는 소리로 천지가 진동하였다. 이리하여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는데, 비탄의 눈물은 쿠시나가라(부처님이 열반하신 곳)에서 황금관()이 빛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높다란 안탑(贗塔)*을 세우고 특별히 커다란 비석을 세웠는데, 진제선사광조지탑(眞際禪師光祖之塔)」이라 시호하였다.

 후당 보대(保大) 11(953) 413일에 한 학인이 동도(東都) 동원(東院)의 혜통(惠通)선사께 옛스승 조주스님께서 교화하신 유적을 찾아 묻고는 절하고 물러나오자, 이에 붓을 주어 기록토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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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주스님은 120세를 살았는데 (778~897) 그 날짜수가 700갑자(甲子)에 해당한다.

* 조주(趙州)는 진부(鎭府)에 속하였으므로, 지중한 예의로써 알렸다.원문주

* 이 구절은 경에 나오는 말씀이다.원문주

* 조주(曹州)는 진부(鎭府)인 듯하다.

* 안탑(贗塔) : 청정한 수행승을 위하여 세운 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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