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조주록趙州錄

[조주록 上] 2. 상 당 1~3.

쪽빛마루 2015. 6. 5. 17:56

2. 상 당

 

1. 평상시의 마음이 도이다.

 

 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시의 마음이 도이다."

 "그래도 닦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고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헛된 지각[妄覺]이며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無記]이다.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허공같이 툭 트여서 넓은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느냐?”

 스님께서는 이 말끝에 깊은 뜻을 단박 깨닫고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

 

2. 남전스님과의 여러 인연들

 

 남전스님께서 상당하시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밝습니까, 어둡습니까?”

 남전스님께서 곧 방장실로 돌아가버리자 스님께서는 법당에서 내려와 말씀하셨다.

 “이 노장이 내 물음에 아무 대답도 못했다.”

 그러자 수좌가 말했다.

 “노스님의 대답이 없었다고 하지 말게. 자네가 알아듣지 못했을 뿐이니.”

 스님께서는 대뜸 후려갈기면서 말씀하셨다.

 이 몽둥이는 정작 당두 늙은이가 맞아야 하는 거지만.”

 

 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불법이) 있음을 아는 이는 어디로 갑니까?”

 “산밑 시주 집에 한 마리 물소가 되는 거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젯밤 삼경에 달이 창을 비췄다.”

 

 스님께서 남전스님 회하에서 노두(爐頭)를 맡았다. 대중이 운력으로 채소를 다듬고 있는데, 스님이 승당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불이야, 불이야!”

 대중이 한꺼번에 승당 앞으로 달려가자, 스님께서는 승당 문을 잠가버렸다. 대중이 어쩔 줄을 몰랐는데 남전스님께서 승당 창으로 열쇠를 던져 넣자 스님께서는 곧 문을 열었다.

 

 스님께서 남전스님 회하에 있을 때였다. 우물 누각에 올라가 물을 푸다가 남전스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기둥을 끌어안고 다리를 매단 채 소리질렀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남전스님이 사다리를 오르면서 말씀하셨다.

 하나, , , , 다섯.”

 스님께서는 잠시 후 다시 가서 사례를 드렸다.

 아까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전스님 회상의 동당과 서당의 수좌가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는데, 남전스님께서 승당으로 들어와서 고양이를 치켜들면서 말씀하셨다.

 말을 한다면 베지 않겠지만, 말하지 못한다면 베어버리겠다.”

 대중이 말을 하였으나 아무도 남전스님의 뜻에 계합하지 못하자 당장에 고양이를

베어버렸다.

 스님께서 늦게야 밖에서 돌아와 인사드리러 가니 남전스님께서는 앞의 이야기를 다 말해 주고 물으셨다.

 그대 같으면 고양이를 어떻게 살리겠느냐?”

 그러자 스님께서 신발 한 짝을 머리에 이고 나가버리니 남전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다른 것[異]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무엇이 같은 것[類]입니까?”*

 남전스님께서 두 손으로 땅을 짚자 스님께서 발로 밟아 쓰러뜨리고 열반당으로 돌아가 안에서 소리질렀다.

 후회스럽다. 후회스러워!”

 남전스님께서 듣고는 사람을 보내 무엇을 후회하느냐고 묻게 하니 거듭 밟아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하셨다.

 

 남전스님께서 욕실을 지나가다가 욕두(浴頭)가 불 때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물으셨다.

 “무얼 하는가?”

 목욕물을 데웁니다.”

 “물소가 목욕하도록 부르러 오는 걸 잊지 말게.”

 욕두는 하고 대답했다. 저녁이 되어 욕두가 방장실로 들어오자 남전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엇 때문에 왔는가?”

 “물소께서는 가서 목욕하시기 바랍니다.”

 고삐는 가져 왔는가?”

 욕두는 대답이 없었다.

 스님께서 문안드리러 오자, 남전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제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러자 남전스님께서 물으셨다.“

 고삐는 가지고 왔느냐?”

 스님께서 앞으로 불쑥 다가가서 남전스님의 코를 틀어쥐고 잡아끌자 남전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옳기는 하다만, 너무 거칠구나.”

 

 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사구(四句 )를 여의고 백비()를 끊고서 스님께서는 달리 한 말씀 해주십시오.”

 남전스님께서 문든 방장실로 돌아가버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노장이 평상시는 잘 지껄이면서 묻기만 하면 한마디도 못한다.”

 시자가 말하였다.

 큰스님께서 대답을 못하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스님께서는 별안간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남전스님께서 갑자기 방장실의 문을 닫아버리고는 빙 둘러 재를 뿌리면서 말씀하셨다.

 말을 할 수 있다면 문을 열겠다.”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하였으나 모두 남전스님의 뜻에 계합하지 못하자 스님께서는 아이고, 아이고!” 하셨다.

 남전스님께서 문을 열자 스님께서 남전스님에게 물으셨다.

 마음이 부처가 아니며 지혜가 도가 아니라면, 그래도 허물이 있습니까?”

 있다.”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남전스님께서 앞서 했던 말을 그대로 하자 스님께서는 바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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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류(異類) : 이(異)는 다른 것, ()는 같은 것, 이류중행(異類中行)은 보살이 성불한 후 6(六道)가운데 윤회하면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행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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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뜰 앞의 잣나무

 

 스님께서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하여 격을 벗어난 장부라도 여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노승이 위산(潙山)에 갔을 때 한 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위산스님은 ‘나에게 의자를 가져다 주게’ 하였다. 종사라면 모름지기 본분의 일로 납자를 지도해야 한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스님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그리고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승이 90년 전 마조(馬祖)대사 문하에서 80여 선지식을 친견하였는데, 모두가 솜씨좋은 선지식들로서 가지와 넝쿨 위에 또 가지와 넝쿨을 만드는 지금 사람들과는 달랐다. 성인 가신 지가 오래되어 한 대(代) 한 대가 틀리게 나날이 다르다. 남전스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이류(異類) 가운데서 행(行)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대들은 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요즈음은 주둥이가 노란 어린 것들이 네거리에서 이러쿵저러쿵 법을 설하여 널리 밥을 얻어먹고 절을 받으려 하며 3백명이고 5백명이고 대중을 모아 놓고는 ’나는 선지식이고 너희는 학인이다‘라고 하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정한 가람입니까?”

 “두 갈래로 머리 땋아올린 소녀다.”

 “누가 그 가람에 사는 사람입니까?”

 “두 갈래로 머리 땋아올린 소녀가 아이를 뱄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남전스님을 친견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까?”

 “진주(鎭州)에는 큰 무우가 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스님께서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서쪽하고도 저 서쪽이지.”

 

 한 스님이 물었다.

 “법에는 별다른 법이없다는데, 그 법이란 무엇입니까?”

 “바깥도 비고 안도 비고 안팎이 다 비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의 참 법신은 무엇입니까?”

 “다시 무엇을 의심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마음자리[心地] 법문입니까?”

 “고금의 표준이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객 가운데 주인[賓中主]입니까?”

 “산승은 색씨를 묻지 않는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객[主中賓]입니까?”

 “노승에게는 장인어른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일체 법이 항상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승은 조상의 휘호(諱號)를 부르지 않는다.”

 그 스님이 또 물으려 하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은 그만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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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2. 남전스님과의 여러 인연들의 각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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