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사록
上
광화(光化) 3년(900) 세차(歲次) 갑신에
참학소사(參學小師)인 지엄(智嚴)은 편집한다.
현사록
上
1.
스님께서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示衆].
"여러분은 청정한 본연의 성품과 모습[性相] 그리고 바다 같은 반야지혜를 아는가?
모른다면 여러분은 여기 모여서 눈앞의 청산을 보는가? 본다고 한다면 어떻게 보며,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청산이 어떻게 보지 못한다 말하겠느냐? 알겠는가.
여러 스님네들이여, 그대들의 청정한 본연의 성품과 모습, 그리고 바다 같은 반야지혜에는 보고 들음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다. 안다 해도 그럴 뿐이고 모른다 해도 그럴 뿐이다. 오래들 서 있었다. 몸조심하라."
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법마다 항상 그러하고 성품마다 이러하니 절대로 밖에서 찾지말아라. 큰 신근(信根)을 갖추었다면 모든 부처님이 여러분의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일 뿐이어서, 행주좌와(行住坐臥)가 이것 아닌 적이 없다. 내가 지금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도 벌써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긍정하는가?
긍정하지 않고는 또 어떻게 알겠느냐?
지금 이 말을 하는 것도 벌써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그대들이 이러쿵저러쿵하고 분별하기 때문이다. 오래들 서 있었다. 몸조심하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자수용삼매입니까?"
"그 많은 삼매를 다 어디다 쓰려고?"
"어떻게 해야 옳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옳지 않겠는가?"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산과 물은 면면히 3세(三世)에 막힘없이 통하여 어디든 다 이곳이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산은 산, 물은 물, 3세는 3세인데 어떻게 막힘없이 통한다고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한다. 온 시방세계가 다 이 곳이라고. 이처럼 알아야만 비로소 옳다 하겠으니 어떤 신통변화가 있다 해도 그대를 어찌하지 못한다. 자기 몸을 그대로 밝혀야만 하리라. 오래 서 있지들 말고 각자 노력하라. 몸조심하라."
4.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이 여러분들을 항상 도우신다. 아는가? 안다면 어느 곳에서 알며, 모른다면 또 어째서 모르는가? 그리고 여러분들은 긍정도 하고 소중하게도 여기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어디가 모든 부처님이 학인을 돕는 곳입니까?"
"그대가 나를 돕는구나."
"무엇이 곧장 긍정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어떤 것이 명형(明兄)께서 그대를 긍정하지 않음이더냐."
"어째서 그렇습니까?"
"천리, 만리로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여기서 쓴 고생을 하며 무엇을 찾는가? 내 입을 열게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입은 공(功)이 없고, 말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한결같아야 비로소 도에 부합한다. 말만 기억해서는 안되니 언제 끝날 기약이 있겠는가. 그대로 한 덩어리를 이루어야만 한다. 여러분은 모든 성인의 운용(運用)에 도달해야만 자유를 얻는다고 말하지 말지니, 그대들의 어느 곳이 그와 같지 않더냐."
한 스님이 물었다.
"당장에 한결같이 되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무슨 잠꼬대냐."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 머문 지가 이미 8,9년이
지났으나 하루 종일 한시도 밝은 곳을 떠난 적이 없었으니, 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대는 들어보았느냐? 산중스님(설봉)께서는 '사람마다 모두 예나 지금이나 옛거울[古鏡] 하나씩을 갖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말하노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기에 '옛거울'이라고 부르는가? 늘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으며, 모름지기 일삼아야만 하리니 쉽게 생각하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하루 종일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
"이처럼 전도되다니...."
"전도되지만 않으면 됩니까?"
"그대도 잠꼬대를 하고 있군."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지와 허공이 모두 묘하고 밝은 참마음이니 여러분은 아는가? 듣지 못하였더냐. 산중스님께서 언제나 사람을 보면 불쑥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하셨던 것을.
여러 스님네들이여, 반드시 이것은 스스로 긍정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서 이말 저말을 하면서 한때의 안락만을 얻어서는 안되니 뒤에 사람몸 받기 어려울 날이 있을 것이다. 밤낮으로 열심히 정진하고 도반을 가까이하여 결단을 보아야만 할것이다."
8.
스님께서 새로 찾아온 납자를 만난 차에 물으셨다.
"스님은 요즈음 어느 곳을 떠나왔는가?'
"설봉雪峰에서 왔습니다."
"설봉스님은 요즈음 어떤 법문으로 학인을 지도하시던가?"
"스님께선 요즈음 스님들에게 '여기 나는 마치 한 쪽의 옛거울과 같아서 중국사람이 오면 중국사람으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로 나타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한 스님이 '홀연히 밝은 거울이 찾아왔을 땐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설봉스님께서는 '중국사람이고 오랑캐고 모두 다 숨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라고 하자, 그 스님이 물었다.
"제[彦相]가 스님께 묻겠습니다. 홀연히 밝은 거울이 찾아왔을땐 어떻습니까?"
스님께서는 "산산조각이 난다" 하더니 다시 말씀하셨다.
"언상스님, 산중스님의 말씀이 나의 이 말과 비슷이나 하겠는가. 이 말을 알겠느냐."
"저는 모르겠습니다. 스님의 높은 뜻은 무엇입니까?"
"언상스님이라면 또 어떻게 모른다 말하겠는가."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스님네들이여, 산중스님이 '여기에 나는 마치 한 쪽의 옛거울과 같아서 중국사람이 오면 중국사람으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로 나타난다.'라고 하셨는데, 나는 지금 그대로 여러분들에게 말하겠다. 이 한 쪽의 밝은 거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언상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홀연히 밝은 거울이 찾아왔을 땐 어떻습니까?' 하길래 나는 그에게 '산산조각이 난다' 하였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해하는가? 알았다 해도 그것은 여러분이 본래 참구한 일로서 담담한 경지일 뿐이다. 오래 서 있었으니 몸조심하라."
9.
설봉스님께서 부(府)로 내려오시자 스님께서 나가 맞이하면서 말씀하셨다.
"평탄하지 않은 길인데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그래."
"녜, 녜."
"그대가 아니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본래 고향이기 때문이지 제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나는 그대를 알았다. 그대는 그들에게 말해야만 하네."
"녜, 녜. 그들도 그렇습니다."
설봉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능도자(稜道者 : 혜릉)가 영운(靈雲)에게 물었던 것을 아는가?"
"무엇을 물었는지 모릅니다."
"능도자가 '무엇이 불법의 요지입니까?' 하고 묻자, 그는 '나귀의 일이 가지도 않아서 말의 일이 왔다[驢事未去馬事到來]'라고 대꾸했다."
"능도자는 알았습니까?"
"그는 몰랐다."
"스님께서는 왜 그에게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에게 '그건 바로 너다'라고 말해 주었지."
"그러셨다면 그의 인연이 스님 회하에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내려오라 하십시오. 제가 그에게 말해 주겠습니다."
설봉스님은 떠나면서 이윽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여기에 주지살이하면서 부디 잘 보림保任하게나."
"녜, 스님"
"자연히 구름이 일어날 걸세."
"스님께서도 산에 도착하시면 더욱 몸조심하십시오."
"그러지, 그래."
설봉스님이 산으로 돌아와서 능도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현사의 처소에 가서 그대가 영운에게 물었던 것을 들려주었더니 현사가 알고는 매우 좋아하더군."
능도자가 말하였다.
"현사스님은 무슨 말을 했습니까?"
"그는 '그대가 바로 능도자'라고 했을 뿐이다."
"스님께서는 어째서 저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조금 전에 그대에게 말해 주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제가 잠시 현사스님 처소로 가서 문안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는가, 가거든 그에게 그저 '모르겠습니다'라고만 하게. 잘 갔다가 일찍 돌아오게나."
능도자가 산을 내려와 찾아오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 내려오셨군. 그대가 영운스님에게 불법의 요지를 물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는 그대에게 무어라고 말하던가?"
"그는 '나귀의 일이 가지도 않아서 말의 일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대는 알았는가?"
"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렇게 찾아와 스님의 자비를 청하오니 저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가 능도자인데 무엇을 모른다는 말인가?"
"영운스님이 그렇게 말했던 의도가 무엇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능도자면 그뿐이지 밖에서 찾을 것이 없다."
"스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 이름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니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그대는 양절(兩浙)사람이고 나는 복주(福州) 사람인데 어째서 모르는가?"
"저는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말해 주지 않았던가."
"저는 특별히 찾아와서 스님께 말씀해 주시기를 청하오니 그렇게 놀려대지 마십시오."
"그대는 북소리를 듣는가?"
"저는 불가불 북소리를 알아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그대일 뿐이다."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우선 죽이나 먹게."
능도자가 죽을 다 먹고 나서 바로 올라가더니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설파해 주십시오."
"죽을 다 먹지 않았구나."
"스님께서는 설파해 주시고 농담하지 마십시오.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그대가 올 땐 어느 길로 왔었는가?"
"대목로(大目路)로 왔습니다."
"갈 때도 대목로로 가거라. 어떻게 놀린다고 하는가. 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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