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현사록玄沙錄

[현사록 中] 30~31.

쪽빛마루 2015. 6. 18. 23:25

3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보는가, 아는가. 천가지 오묘한 작용이 그 바탕은 다름이 없다.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어떻게 알아보겠느냐. 말은 실답지 않음이 없고 이치는 두루하지 않음이 없어서 대지와 허공에 다시는 다른 것이 없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시방세계가 모두 이와 같다. 쉽게 알고 싶은가. 내 지금 그대들에게 말해 주겠다. 스님네들이여, 그대들은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데 어째서 모르는가? 알고 모르는 것이 어떤 경계이더냐? 일 없으니 오래 서 있지 말고 몸조심하라."

 

31.

 초경스님이 차 마시는 자리를 마련하고 바래다 주는 길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초경, 오늘 초대에 감사하네."

 "소소한 것이라서 매일 마신다 해도 분수 밖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일은 오로지 차만 마시겠네."

 "누가 그렇게 말해 주던가요?"

 "그건 왜?"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확실한가?"

 "초경더러 무어라 말을 하게 해야만 되겠습니까?"

 "그렇지, 그래."

 "부끄럽습니다."

 태위가 차를 준비하여 보내는 길에 객사(客司)더러 편지를 보내며 스님에게 드리라 하였다.

 스님께서 객사에게 말씀하셨다.

 "태위에게 말 전하게. 공(功)이 있는 자가 차지하는 법인데, 어떻게 하려느냐고."

 태위가 스님께 말을 전하였다.

 "있지 않는 자는 공이 아닙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태위에게 말하게.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려느냐고."

 태위는 다음날 보자마자 말하였다.

 "어제는 대사께서 완전한 기틀로 이끌어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있는 자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차지합니까?"

 "어떤 사람더러 알게 하겠습니까?"

 "같은 길을 가는 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같은 길을 가는 자입니까?"

 "대사께서 비춰 보십시오."

 "음음, 불법은 그런 도리가 아닙니다."

 "저는 이러할 뿐입니다. 대사께서는 어떤 사람이 같은 길을 가는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뭐라고요?"

 태위가 유람선에서 노닐기를 청하니 스님께서는 배에 오르자마자 주장자로 배를 치면서 말씀하셨다.

 "태위,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벗어나겠습니까?"

 "대사께서는 안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시는군요."

 "태위의 소문을 들은 지가 오래인데 이처럼 실마리를 어지럽힐 줄만 아는군요."

 "그렇다면 대사께서 대신 말씀해 주십시오."

 "분수 밖이 아닙니다."

 

 태위가 초경원에서 나와 작별인사를 나누던 차에 스님께서 물으셨다.

 "태위는 초경대사를 보았습니까?"

 "이미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불법은 그런게 아닙니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존체 만복하소서."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태위여, 사람마다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감히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도리는 아닙니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태위도 빠짐없이 갖춰 있고 나도 빠짐없이 갖춰 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태위는 대꾸가 없었다. 이때에 홀연히 한 사미(沙彌)가 주렴을 쳐들고 들어오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미는 몽둥이 스무 대는 족히 맞아야겠군."

 태위가 "저는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라고 하자 스님께서는 "무엇입니까?" 하셨다.

 "대사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불법은 그런 도리가 아닙니다."

 "저는 이러할 뿐입니다. 스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분수 밖이 아닙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태위여, 법마다 항상하여 이것이 옳지 않음도 없고 이것이 틀리지 않음도 없으니 온전한 기틀인 자체의 성품은 이렇습니다. 말은 실답지 않음이 없으며, 행동은 통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한 법이 그러하여 만법이 모두 빠짐없이 완전하니 나도 태위도 어느 곳이 이렇지 않습니까.

 대지와 허공 모두가 묘하고 밝은 진심이 나타남이어서 감응이 자재하여 시방법계의 중생들을 널리 이익되게 하면서 불사를 크게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빠짐없이 완전한 도를 갖추었고 사람마다 빠짐없이 부처를 갖추었습니다. 만리 산천이 성품마다 그러하여 겹겹으로 끝이 없으며, 생사에 드나들고 성색에 응합니다. 어느 것도 옳지 않음이 없으니 다른 것이라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초경스님이 물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때때로 어떻게 빠짐없이 갖춘 도리를 설명 하십니까?"

 "빠짐없이 갖추지 않은 도리는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까?"

 "뭐라고, 뭐라고? 그래도 갖춰져 있지 않다고?"

 "그렇다면 긍정하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무엇을 설명하는가?"

 "빠짐없이 갖춤을 설명하였습니까?"

 "설명을 안하지 않았는가, 초경."

 초경스님이 다시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째서 때때로 사람마다 빠짐없이 도를 갖추었고, 사람마다 빠짐없이 부처를 갖추었다고 말씀하십니까? 스님께서는 다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흉한지 길한지를 알고 싶습니다."

 "초경, 그대의 여기는 대중이 천명이 아닌가."

 "이것이 빠짐없이 갖추어진 도이고, 빠짐없이 갖추어진 부처입니까?"

 "어찌하여 사람마다 빠짐없이 갖추어진 도이고, 빠짐없이 갖추어진 부처라고 새삼 논하는가?"

 "그렇다면 스님께도 역시 팔백 사람이 있습니다."

 "초경, 그대도 오히려 빠짐없이 갖추어진 도라고 설명하는구나."

 "요즈음은 스님께서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다시 무어라고 설명해야 되겠습니까?"

 "이와 같다면 나의 주관[我之能]이 있는 것이다."

 "스님께서 한 법도 보지 않는 것이 큰 허물이 됩니다."

 "허물이 무언데?"

 "꼭 말씀해야 합니다."

 "누구더러 알게 하지?"

 "바로 스님이신데 무얼 말씀하십니까?"

 "그대로 꺼내 들 수 있는가?"

 "다시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보십시오, 봐요."

 "그대가 그렇다면 완전한 기틀이 빠짐없이 갖추어진 부처이리라."

 "그렇다 해도 그것은 분수 밖은 아닙니다."

 "그대는 앞을 통달했는가, 아니면 뒤를 알았는가?"

 "옳기는 옳습니다만 스님께서는 앞을 통달하고 뒤를 아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만약 한 부분의 진상(眞常)을 갖춘 것이 흘러들어 예와 지금에 항상하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시방세계가 다 바로 그 사람, 자기의 본체일 뿐이다. 항상 그러하여서 다른 것은 없으니 이를 본래지혜의 불성이라고 부른다.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면서 응용이 자재하여 하루 상응하면 하루 불성이며, 한때 상응하면 한때의 불성이라.

 모든 법이 나는 것은 바로 마음의 나타남이어서 보이는 바 경계는 모두 마음이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원래 요동하지 않는 성상(性相)을 이루고 생사에 드나들지만 본래 평등하며 한 부분[一分]의 법신은 한 부분의 진리여서 양이 똑같고 밝기가 마치 임금의 도장과도 같다. 한 법도 밖으로부터 옴이 없으며 한 법도 안으로부터 나옴이 없다. 사람마다 이와 같으므로 사람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을 스스로 믿어야 하며, 사람마다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음을 스스로 믿어야 하니, 이는 나, 일진법계(一眞法界)일 뿐. 그 밖에 다른 법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한 부분의

진여가 흘러들어 끊임없이 항상 절로 통하고 절로 앎'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도 인(因) 가운데 인일 뿐, 앞은 밝혀도 뒤는 밝히지 못하여 살려낼 기틀이 없으니 이를 죽은 말[死中句]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를 자세하게 헤아려 본다면 끝날 기약이 없다. 이러한 이론은 한 부분의 진여가 10신(十信)의 첫단계에 들어간 모습(行相)이니 이를 의지해 수행하면 인(因) 가운데 한 부분을 갖출 뿐이다. 초경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렇겠느냐?"

 초경스님이 다시 물었다.

 "한 부분의 성상(性相)이 없으면 진상(眞常)이 흐르는 불성이 아니니 이를 본래 그러한 자기의 지혜라고 합니다.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고 기봉(機鋒)이 닿지도 않았는데 빼앗아 바꾸어서 그 뒤를 밝히는 일은 어떤 도리입니까? 다시 스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 초경도 불사를 짓는 형제가 되어 불법의 자세하고도 큰 요지를 알게 해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움직이면 뒤를 밝히는 구절은 기봉이 닿지 못하는 2분법성(二分法性)이다. 원래 항상하여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면서 응용이 자재하여, 진여는 한결같고 평등하다는 견해와 인식에 응한다는 헤아림을 떨어버렸다.

 심법(心法)을 다 떨어버리고 살려내는 기틀을 움직여 평등하고 실다운 유심(唯心)인 일진법계에 앉지 않는다. 인(因) 가운데 인인 죽은 말은, 연(緣) 가운데 나아가면 인과의 성상이 있음을 알게된다. 항상 살아 멸하지 않으니 모두 이래야만 살

려내는 기틀의 작용이라 부른다. 이렇게 헤아리지 않으면 인을 밝혀 과(果)를 아는, 틀에서 벗어나는 말이다. 한 법도 자비에서 지혜를 일으키지 않음이 없으며, 한 법도 지혜에서 자비를 일으키지 않음이 없다. 다시 한 법도 이분성상(二分性相) 아님이 없으며, 평등하고 실다운 모든 심법에 앉지 않는다.

 오늘 그대에게 이러한 이론을 지어 주었는데 성인의 말과 부합되는지를 모르겠구나. 그대는 또 어떻게 생각하는가?"

 초경스님이 다시 물었다.

 "이러한 이론이라야 앞을 밝히고 뒤를 밝혀 이분법성의 살려내는 기틀이 되고 틀에서 벗어난 범위이며 이분법성의 움직임이라 하겠습니다.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이 기봉이니 응용이 자재하여 주객을 간직하지 않으며, 유무에 통하여 나

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습니다.

 이분법성은 다시는 한 법도 이렇지 않아서 자비와 지혜가 동시에 밝지 않음이 없고 자비와 지혜의 범위에 눌러앉지도 않습니다. 그리하여 자비삼매의 문[慈定門]에 들어가 뭇중생을 널리 이익되게 합니다. 어떤 이론을 지어야만 옛스님들의 말씀에 고리처럼 맞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다시 낱낱이 분명히 설명해 주시어 온 대중에게 설봉스님께서 언제나 나무공 세 개를 한꺼번에 던져버리신 대용(大用)의 도리를 알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울러 뒷날 참구하는 형제들에게 요점이 되는 귀결처를 알게 해주십시오. 다시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부분이 빠짐없이 갖추어진 성상[三分具足性相]이라면 한 법도 옳지 않음이 없으며, 한 법도 틀리지 않음이 없다. 원래 항상하여 생멸한 적이 없고 자재하게 출몰하면서 모든 중생을 널리 이익되게 한다. 세 부분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예와 지금에 통하면서 숨고 나타남이 밝다. 한 법도 옳지 않은 법이 있다고 보지 않으며, 한 법도 틀리지 않은 법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법신 · 보신 · 화신의 상응이 모두가 이러하여 밝으신 성인의 도량을 돕고 일승의 도를 돕는다.

 그럼에도 진여의 법계에는 자신도 없고 남도 없으니 그러므로 한결같은 성상[一如性相]이라고 부른다. 지혜와 자비라는 범위에 눌러앉지 않고 자비삼매[慈定]의 문에 밝게 통하여, 현재 실현되는 삼매이며 바다 같은 화장세계의 법회로서 시방에

중중무진한 가풍이다.

 알아듣겠는가? 옛 성인의 뜻에 맞았는가? 초경스님,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시 무얼 설명해야 하겠으며 다시 무얼 말해야 옳겠는가. 나는 지금 조금만 설명했을 뿐인데, 다른 이야기는 없다."

 스님께서 다시 초경스님에게 말씀하였다.

 "그대는 언제나 한 번에 설명해야만 한다."

 초경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다시 무엇을 설명하면 되겠습니까?"

 "그대가 이처럼 한 것이 바로 한 번에 설명한 것이다."

 "천만에요, 부끄럽습니다."

 초경스님이 다시 물었다.

 "모든 법의 고요한 모습은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말로써 모든 법을 표현하는데 어떻게 고요하겠는가?"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모든 법을 말로써 표현하셨습니다."

 "모든 법 그대로가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습니까?"

 "체험이라면 없지는 않다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는가?"

 "모든 법의 고요한 모습은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옳지, 옳아."

 "녜, 녜."

 

 스님께서 떠나면서 물으셨다.

 "내 주장자는 어디 있으냐?"

 도(瑫) 장로가 말하였다.

 "제 손안에 있습니다."

 "내 주장자가 어찌해서 너의 손안에 있느냐?"

 "주장자를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전(展) 장로가 말하였다.

 "붙잡았다 한들 안될 것이 있겠습니까?"

 "음음, 불법은 그런 도리가 아닙니다."

 행부(行怤)스님이 말하였다.

 "응하는 곳에 일정한 방향이 없는데야 또 어찌합니까?"

 "그런 도리는 아니라네."

 영조(靈照)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주장자가 필요없으십니까?"

 "그런 도리는 아니라네."

 도장로는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조리 스님의 뜻에 부합되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의발을 걸머지고 행각을 하고 싶습니다."

 도장로가 "어디로 가시렵니까?" 하자 스님께서는 "부(府)로 돌아가렵니다" 하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이여, 당장에 한 덩어리가 되어버려야 한다. 이처럼 일을 이해하지 말라. 끝날 기약이 없으리라. 각자 잘해 나가고, 몸조심하라."

 그리고는 '허공같이 원만하여 부족함도 남음도 없다[圓同太虛無欠無餘]'라고 하신 조사의 말씀을 들려주면서 말씀하셨다.

 "볼품없는 조사가 한마디 반마디를 했을 뿐이로군."

 

 한 스님이 물었다.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불렀던 뜻이 무엇입니까?"

 "도리어 시자가 안다."

 스님께서 앉아 있는데 중탑(中塔)스님과 지장(地藏)스님이 모시고 섰다. 스님께서는 중탑스님에게 대뜸 몽둥이를 한 대를 후려치면서 말씀하셨다.

 "명칭이냐, 자체냐?"

 중탑스님이 대꾸가 없자, 다시 지장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어떤가?"

 지장스님이 말하였다.

 "이 스님이 몽둥이를 맞았는데, 그것이 온 곳을 모르겠습니다."

 

 

복주 현사 종일대사광록 중(福州玄沙宗一大師廣綠中)

 

 광록(廣錄)의 판이 해를 거듭하면서, 오래되어 글자가 닳아 없어진 것을 30여 판이나 되었다. 설조(契祖)는 이 일로 산에 있는 수좌를 찾아가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모연을 하고, 판에 새겨 이를 보충하여 마침내 전질을 이루어 보는 이들의 편의 도모하였다. 척 보면 거기에 도(道)가 있을 것이다.

 같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이름들을 뒷면에 기록한다.*

 

태정(泰定) 을축(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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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문에서는 이름은 생략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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