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정 17년 정유 정월 15일
왕궁의 진병(鎭兵)을 위한 설법
법좌에 올라서 축원하는 향을 사르고는 자리에 나아가 축원문[疏文]을 들고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삼매는 어떤 부처님도 알지 못한다. 지금 국왕은 불법을 보호하니 삼매가 모두 그 속에 있거늘 누가 그것을 분명히 하는가. 만일 자세히 알지 못하면 유나(維那)를 번거롭게 하여 낭독하게 하리라."
그러자 유나는 축원문을 다 읽었다.
스님께서 불자를 세워 들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내려온 종승을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는가. 5교(五敎)와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敎)는 다만 오랑캐 석가가 싸 놓은 오줌이며, 부처님이나 조사님네는 다만 꿈속에서 꿈을 말하는사람들이었다. 만일 도의 이치로 헤아리면 종승을 파묻어버리게 될 것이며, 세속의 이치로 헤아리면 과거의 성인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이렇다 하여도 안되고 이렇지 않다 하여도 안되며, 안된다는그것도 안된다 해도 역시 안될 것이니 만일 본분의 납승이라면 4구백비(四句百非) 밖에서라야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장자를 가로 들고 말씀하셨다.
"3세의 부처님네도 이러했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이러했으니 만일 본국 대왕의 청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설파(說破)하지는않았을 것이다. 국왕 대신들이 여기서 이렇게 믿는다면 그 부처님네의 보호를 받고 모든 하늘이 복을 내릴 것이다. 국왕은 수명이길어지고 문무 신하들은 왕의 교화를 도우며, 어진 신하와 재상들은 수명과 녹(祿)이 더욱 늘어나 그 덕화가 백성들에게 미쳐 집집마다 표창을 받을 것이다. 백천의 요괴들은 그 자취가 사라지고,간사한 혼과 원한을 품은 도적은 그림자와 얼굴을 감추어 천지는다시 변하고 일월은 더욱 맑으며, 산하는 더욱 튼튼하고 사직은거듭 홍왕할 것이다. 그리하여 때를 맞추어 비가 내리고 때를 맞추어 볕이 나 온갖 곡식은 잘 영글고 백성들은 즐거워하며, 상서로운 기린과 고운 빛깔을 가진 봉황은 상서의 징조를 다투어 나타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조(先朝)의 성현들이 말씀하신 그 말과같이 부처님을 믿고 하늘의 이치에 순종하여 저절로 큰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하는 말이 길어진다. 주장자에 부촉하여, 국왕 · 공주 · 왕후 · 대신 · 장상(將相) · 안팎의 신하 · 모든 관리들을 위해 다시 분명히 설파하리라."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내리쳤다가 다시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이 주장자는 마음[精識]이 없는 물건인데 어찌 시비가 있겠는가. 청컨대 국왕이나 대신들은 마음을 거두어 잡아 잘 듣고 부디빠뜨리지 마시오."
또 한 번 내리치고는 "만일 조금이라도 의심에 끄달리면 훌륭한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하시고 또 한 번 내리치고는 "지극히공경하여 사사로운 마음이 없으면 하늘이 보호할 것이다" 하셨다.
또 한번 내리치고는 "부처를 공경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면 뉘라서 편안하지 않겠는가" 하시고 또 한 번 내리치고는 "여기에 어긋나면 입이 있어도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셨다.
또 한 번 내리치고는 "성군(聖君)이 한 번 화를 버럭 내시면 온백성이 모두 따를 것이다" 하시고 또 한 번 내리치고는 주장자를세우셨다.*
다시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옛날 소설산에 있을 때에도 사람을 위해 한 법도 말하지 않았고, 지금 사나당(舍那堂)에 머무르면서도 남에게 한 법도 말하지않았다. 나라의 은혜를 받기만 하고 조금이나마 갚을 덕이 없어그저 이렇게 경황없이 날마다 부질없는 신(神)과 들귀신들과 도깨비 따위와 더불어 한데 섞여 지낸다. 다만 이익을 도모해 생활돕는 일을 듣고, 뒤바뀐 망상으로 뜬 세상을 헤아리면서 이렇게 대응해 나가느라 조금도 쉬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과거의 업이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주장자를 세워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는 이 나를 스스로 꾸짖은들 무엇하겠는가."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정월[王政之月] 15일에 왕궁으로 나아가 높은 보좌(寶座)에 앉으니 사람과 하늘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자, 도를 물어도 좋고 선을 물어도 좋다. 그러나 이치로는 그렇지마는 실제로는그렇지 못하다.
이 달은 찬 기운이 이미 물러가고 아침 볕이 빛을 날리니, 우리위대한 임금께서 명당(明堂)에 오르시어 총명(聰明)을 두루 펴신다. 아무리 멀어도 살피지 못할 것이 없으시며, 어진 정치를 베풀어 선을 상주고 악을 벌주시니, 이것이 왕이 된 자의 큰 정치이다.
국가에 일이 있을 때에는 불법의 힘을 의지해야 비로소 그 삿됨을 누를 수 있으니 그러므로 먼저 불법의 일을 바로해야 한다. 도가 있는 이를 상주어 가람을 맡아 대중을 거느리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국가를 복되고 이롭게 하게 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선왕께서 행한 법이자 왕도정치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집을 떠나 도를 닦는 이는 이름을 구하지 않고 이익을 구하지 않으니, 주지되기를바라지 않고 의식을 꾀하지 않아야 한다. 남의 공경이나 찬탄을구하지 않고, 즐겨 절도를 지켜 나쁜 옷을 입고 나쁜 음식을 먹으며 바위 틈에 몸을 감추고 출세하기를 꾀하지 않아야 비로소 집을떠나 도를 배우는 이의 할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새 사람들은 제 힘만으로 구할뿐 아니라 남의 세력을의지하여 구하기까지 하니 낸들 어찌하겠는가."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내리치고 또 말씀하셨다.
"호랑이는 얼룩얼룩한 짐승을 먹지 않는데 그것은 제 무리를 해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 말씀하셨다.
"속인 가운데에도 임금께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재주를품고 덕을 알지마는 세상의 버림을 받아 초야에 묻혀 살면서도 시대를 걱정하고 나라를 근심하여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구제하려는 사람이 있다. 내가 비록 어리석고 어질지 못하나 끊이지 않는 슬픔을 참지 못하여 그 뜻을 아뢰는 것이다.
어질고 착한 이를 상주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이를 벌주면, 누가충성하지 않고 누가 효도하지 않으며, 누가 무도(無道)하고 누가배우지 않으며, 누가 자기의 덕을 닦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지금당장 산을 뽑는 힘과 세상을 덮는 기개를 가진 이가 있으면 나와서 이 태고와 힘을 겨루고 승부를 다투어도 무방하리라. 나라를위해 몸을 버려 큰 공을 세운다면, 어찌 제후에 봉(封)해질 뿐이겠는가.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으면, 이 태고 노승은 한 마리의말과 한 자루의 창으로 몸소 국경의 적을 치러 갈 것이다. 자, 말해 보라. 가기는 어렵지 않지마는 어떤 것이 큰 공을 세운다는 그한마디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막야검(鏌鎁劍)을 비껴 잡고 바른 명령받들어 태평천지에 미련한 놈 베리라" 하시고는 주장자로 법상을두 번 내리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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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답한 것은 적지 않는다.【원문 주】
* 인사한 말은 적지 않는다.【원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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