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당법어
16칙
1. 영녕선사(永寧禪寺)에서 하신 설법
스님은 삼각산(三角山) 중흥사(重興寺)에서 6년 동안 계시다가 지정(至正) 병술년(1346) 봄에 천하에 법을 구할 뜻을 품고 연도(燕都)에 들어가셨다. 정해년(1347) 가을에 호주(湖州) 하무산(霞霧山)을 찾아가 석옥(石屋)스님을 뵙고, 법을 이어받고 가사를 전해 받으셨다.
그 해 10월에 대도[燕京]로 돌아오시니 여러 산의 장로들은 대신들에게 글을 올려 알리고, 우승상 타아적(右丞相 朶兒赤)과 선정원사 활활사(宣政院使 闊闊思) 등이 천자에게 아뢰었다. 11월 24일은 태자의 생일이었으므로, 자정원사 강금강길(資政院使 姜金剛吉) · 태의원사 곽목적립(太醫院使 郭木的立) · 선정원동지 열자독(宣政院同知 列刺禿) · 자정원동지 정주겁설(資政院同知 定住怯薛) · 관인 답자혜(官人 答刺海) 등은 천자의 명령을 받들어 스님을 영녕선사(永寧禪寺)의 주지로서 개당(開堂)하게 하였다.
그 날에는 어향(御香)과 금란가사(金襴袈裟), 침향(沈香)으로 만든 불자(拂子)와 제사(帝師)의 향, 삼전황후(三殿皇后)의 향과 황태자의 향이 모두 이르렀다.
스님께서는 주지실[據室]에서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부처님과 조사님을 삶는 큰 풀뭇간이요, 생사(生死)를 단련하는 지독한 집게와 망치이다. 이 앞에 서는 이는 담이 서늘하고 혼이 나갈 것이니, 이 노승에게 얼굴이 없다고 괴상히 여기지 말라."
또 한 번 내리치고 "백천의 부처님네도 이 속에서는 얼음처럼 녹고 기왓장처럼 부숴지느니라" 하시고, 또 내리치셨다. 그리고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이런, 앗[聻] ! 고래가 바닷물을 모두 마셔 산호가지가 드러났구나."
스승에게 전해 받은 가사를 들고 말씀하셨다.
"이 한 조각 쇠가죽은 부처님네와 조사님네의 혈맥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징표이다. 석가 늙은이가 49년 동안 3백여 회상에서 다 쓰고도 남아 맨 마지막 영산회상에서 금빛 얼굴을 가진 늙은 두타(頭陀 : 가섭)에게 전해 주면서 '대대로 전해 말세에 이르도록 끊어지지 않게 하라' 하신 것이니 그 빛이 찬란하구나."
또 금란가사를 들고 말씀하셨다.
"이 금란가사는 무엇 때문에 오늘 왕궁에서 나왔는가. '이 법을 국왕과 대신들에게 부탁하여 맡기노라' 하신 말을 듣지 못했는가."
다시 스승에게 받은 가사를 들고 "이것은 부자간에 직접 전한 사적(私的)인 물건이다" 하시고 다시 금란가사를 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왕궁에서 내리신 공적(公的)인 물건인데, 사는 공을 따르지 못하므로 공을 먼저하고 사를 뒤에 한다."
곧 금란가사를 입으시고는 한 자락을 들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보는가. 내가 기쁘게 받아 머리에 받들고 입을 뿐만 아니라 티끌같이 모래같이 많은 부처와 조사를 몽땅 감싸버리리라."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고는 전해 받은 가사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중은 이것을 분명히 아는가. 이것은 하무산에서 전해 온 나쁜 물건이다."
곧 팔에 걸치고 법좌를 가리키면서 "비로봉 꼭대기에 한 길이 매우 분명하구나. 대중은 그 길을 보는가" 하시고, 법좌의 계단[胡梯]에 오르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셨다.
법좌에 올라가 향을 피우고는 말씀하셨다.
"이 향은 가고 옴이 없지마는 그윽히 3세에 통하고, 안도 바깥도 아니면서 시방에 두루 사무치도다. 받들어 축원하오니, 세상의 주인이신 대원나라 황제, 거룩한 수명이 만세, 만세, 만만세를 누리시고, 바라옵건데 금륜(金輪 : 善政)으로 3천 세계를 다스리시며, 옥엽(玉葉 : 임금의 자손)은 억만 봄에 꽃다우소서."
다음에 또 향을 피우고는 말씀하셨다.
"이 향은 맑고도 조촐하여 온갖 덕을 머금었고 고요하고도 편안하여 온갖 재앙을 누르도다. 삼가 축원하오니, 3궁(三宮)의 황후께서 모두 편안하시고, 그 수명이 하늘과 같아 용자(用子)의 영화를 보시고, 항상 젊고 늙지 않으시어 왕모(王母)의 즐거움을 누리소서."
또 향을 피우고는 말씀하셨다.
"이 향은 들어올리면 하늘이 높고 땅이 두터우며 내려 놓으면 바다가 고요하고 강물이 맑아지도다. 삼가 축원하오니, 아유실리(阿由實利) 태자의 수명을 천세, 천세 또 천세로 늘이소서. 궁궐에 한가히 노니시매 천세의 즐거움이요, 천안(天顔)을 효도로 받들매 만년의 기쁨이 되소서."
또 품었던 향을 피우고는 말씀하셨다.
"이 향은 불조도 알지 못하고 귀신도 헤아리지 못한다, 천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저절로 얻어진 것도 아니다. 옛날 신라에서 행각할 때, 전단원(栓檀園)으로 가서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서 그것을 잡으려 해도 틈이 없고 잡을 곳이 없는 경계에 부딪쳤다. 만길 벼랑에 이르려 온몸을 던져버리고 숨이 전연 없다가 갑자기 다시 살아나 가벼이 날아 내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증명할 사람이 없다며 몹시 의심하니, 간직하려면 더욱 굳고 숨기려면 더욱 드러나 나쁜 소리와 더러운 기운이 천하에 가득하였다.
오늘 삼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이 향을 그대로 들어 사람과 하늘의 대중 앞에서 향로에 피워, 전에는 절강성(浙江省) 서쪽 가흥로(嘉興路) 복원(福源)의 보혜선사(報彗禪寺)에 계시다가 하무산 꼭대기의 첨두옥(尖頭屋) 밑에 누워 계시는 석옥 큰스님께 공양함으로써 증명해 주신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다."
법좌에 나아가자 흥화(興化)의 보은선사(報恩禪寺)에 있는 담당 장로(湛堂長老)는 백추를 치며 말하였다.
"이 법회의 용상(龍象) 대중은 으뜸가는 이치[第一義]를 살펴보라."
스님께서 법문하시되,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며 말씀하셨다.
"으뜸가는 그 이치는 바로 이 주장자이다. 나는 이미 백추치는 스님에게 주어 분명히 말하였으니, 여기에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을 이가 있는가. 나와서 증거를 대라."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예배하려니 사람마다 갖추어져 있는 물건이요, 예배하지 않으려니 사제간에 예의가 빠집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왜 스스로 일어났다가 자빠졌다 하는가."
"오늘 천자의 명으로 개당하여 보배자리에 높이 앉았으니, 사람과 하늘이 두루 보이고 손님과 주인이 서로 만났습니다. 스님께서는 누구의 노래를 부르며 누구의 종풍을 이어 받았습니까?"
"하봉(霞峰) 천고의 달이 대명궁(大明宮)에 와서 비춘다."
"그렇다면 석가의 뒤와 미륵의 앞에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모두 스님의 손안에 있어 놓아주면 3현10지(三賢十地)가 서로 경하하고, 붙잡으면 6대 조사와 28조사를 우러러보아도 문이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놓아주십니까, 붙잡으십니까?"
"천상의 별은 다 북두를 떠 받들고 인간의 물은 모두 동쪽으로 흐르느니라."
"그렇다면 마침내 물은 바다로 흐르고 구름은 끝내 산을 찾아가겠군요."
"좋은 사자가 아직 여우의 울음을 우는구나."
"여래의 몸은 범왕(梵王)의 몸이 되기도 하고 제왕의 몸이 되기도 하는데, 지금 황제의 몸은 어떤 부처가 나타낸 몸입니까?"
"위음왕불(威音王佛 : 空劫 때에 맨 처음 성불한 부처님. 本分向上의 뜻)이니라."
"그래도 그것은 제2구(第二句)입니다. 무엇이 제1구입니까?"
스님께서는 악! 하고 할을 하셨다.
한 스님이 또 물었다.
"옛날의 영산회상과 오늘의 영녕선사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그대가 보기에는 같으냐, 다르냐."
"지금 황제는 정치하는 여가에 선의 종지에 마음을 두어 바른 법을 드날리시니 불법문중의 의지처입니다. 스님께서는 어떤 법으로 황은(皇恩)에 보답하시렵니까?"
"새겨진 바 없는 도장을 자재하게 활용해서 우리 황제의 억만년 수명을 축원하리라."
"이 절의 공덕주이신 원사 상공(院使相公)과 여러 관리와 재상들이 불법을 공경하고 존중하여 이런 훌륭한 인연을 지었으니, 어떤 상서(祥瑞)가 있겠습니까?"
"기린과 봉황은 상서를 바치고, 거북과 용은 대도(大都)에 내리리라."
또 한 스님이 나와 물으려 하자 스님께서는 불자(佛子)로 그를 막고 말씀하셨다.
"문답은 그만두어라. 비록 백천억 아승지의 부처님네가 한꺼번에 나와 제각기 걸림없는 장광설을 내되, 그 혀마다 다함이 없는 말의 바다를 내고 그 말마다 다함이 없는 말재주를 갖추어 한꺼번에 백천 가지로 따져 묻더라도 나를 녹이지 못할 것이요, 호통한 소리로 모두 답할 것이다.
이렇게 묻고 답한다면 미륵이 하생할 때까지 계속하더라도 그것은 업식(業識)의 일이요, 본분(本分)의 일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더구나 난해하고 까다로운 문장으로 날카로운 말을 쓰는 것은 다만 향상의 종승[向上宗乘]을 파묻을 뿐만 아니라, 곧 양생의 비공[孃生鼻孔 : 양생은 어머니, 비공은 콧구멍. 어머니의 태에서 나온
때의 본래면목]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부처님과 조사님네도 문자나 언어를 세우지 않고,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고 법으로 법에 도장 찍어 대대로 이어 쉬지 않고 전했던 것이니, 지금도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만두고, 무엇이 향상의 종승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내가 이일을 들어 보이더라도 이 뒤에 아무도 곧이듣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나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부처라는 이름도 소용없고 조사라는 이름도 소용없으며, 납승이라는 이름도 소용없고, 4과(四果) · 4향(四向) · 3현(三賢) · 10지(十地) · 등각(等覺) · 묘각(妙覺)이라는 이름도 소용없다. 열반이라는 이름도 소용없고 생사라는 이름도 소용없으며, 8만 4천 바라밀이라는 이름도 소용없고 8만 4천 번뇌라는 이름도 소용없다. 그러니 일대장교(一大藏敎)가 이 무슨 부질없는 말이며, 1천 7백 공안이 이 무슨 잠꼬대이며, 임제(臨濟)의 할과 덕산(德山)의 방망이가 이 무슨 아이들 장난인가.
듣지 못하였는가. 옛날 노스님은 '문을 닫고 잘 때에는 상상근기를 지도함이요, 굽어보며 기세를 떨치는 것은 중하근기를 자상하게 위함이라 했거늘, 어찌 굽은 나무평상 위에서 귀신의 눈동자를 굴리겠는가' 하였다. 이것도 변변찮은 말이기는 하나 그래도 다소 근사하다. 내가 이렇게 들어 보이는 것은 마치 꿈이 없는 한낮에 꿈을 말하고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낱낱이 조사해 보면 이 주장자를 맞아야 할 것이다. 지금 매서운 솜씨를 가진이가 없는가. 있다면 갚을 수 없는 은혜를 갚고 함이 없는 교화를 도울 것이며, 만일 없다면 이 명령을 빨리 받아 시행하라."
그리고는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한 번 내리치고 "천하가 태평하리라" 하신 뒤에 또 한 번 내리치고 "부처의 해가 거듭 빛난다" 하고는 거푸 두 번 내리치고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셨다.*
그리고 다시 보수(保壽)스님이 개당할 때의 이야기를 들어 말씀하셨다.
"삼성(三聖)스님이 한 스님을 밀어내자 보수스님이 때렸다. 삼성스님이 말하기를, '그렇게 사람을 위한다면 진주성(鎭州城) 사람들을 다 눈멀게 할 것이오' 하니 보수스님은 방장실로 돌아갔다.
이 두 큰 스님 중에 한 사람은 사갈라(沙갈羅 : 인도의 지명. 혹은 용왕의 이름)의 큰 용왕이 수미간을 뒤흔들어 금시조의 알을 취하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은 금시조왕이 큰 바다를 쪼개고 큰 용왕을 취하는 것과 같다. 각기 신통을 다 드러내어 죽이고 살리는 기틀과 손[賓]과 주인의 예를 갖추고, 주먹과 발이 서로 응하고 음정과
박자가 서로 맞아 큰 길거리로 나가 음식값을 계산하면서 일체에 보시하되 털끝만큼도 빠뜨림이 없다. 좋기는 좋고 묘하기는 묘하지마는 낱낱이 조사해 본다면 거기는 아직도 결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스님의 개당설법에는 화근의 불씨가 생긴 것이다. 삼성스님이 한 스님을 밀어낸 것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이요, 보수스님이 때린 것은 여전히 정신을 희롱한 것이며, 진주성 사람들을 모두 눈멀게 하리라고 말한 것은 제 허물도 모른 것이요, 보수스님이 방장실로 돌아간 것은 호랑이 꼬리에 불을 놓은 격이다.
말해 보라. 내게 과연 사람들을 만나 점검해 준일이 있었던가.
게송 한 수를 들어 보라."
남쪽 성 밑에 집을 빌려
얼근히 취해 누웠더니
홀연, 천자의 조서가 내려
축원을 마치고 빈 항아리 마주했네
에일 듯한 추위는 뼛속에 돌고
날리는 눈발은 창을 두드리는데
깊은 밤 질화롯불에 차를 달이니
향기가 차관을 새나오는구나.
借室南城下 陶然臥醉鄕
忽聞天子詔 祝罷對殘缸
凜凜寒生骨 蕭蕭雪打窓
地爐深夜火 茶熟透缾香
불자로 선상 모서리를 내리치고 백추를 세 번 치고 말씀하셨다.
"법왕의 법을 자세히 보라. 법왕의 법은 이런 것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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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가 보완해 넣었다.【편집자 주】
* 인사한 말은 적지 않는다.【원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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