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태고록太古錄

[태고록 上] 3. 법어 13~18.

쪽빛마루 2015. 7. 2. 06:19

13. 담당 숙장로(湛堂淑長老)에게 답함

 

 삼가 개천당(開天堂)의 사도(司徒)* 노스님의 문안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 "늙고 병들어 자못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기에 한마디 법어를 구하여 마지막 노자로 삼으려 합니다" 하였으니, 이 말이 어찌 한갓된 말이겠습니까. 나 또한 한탄스런 마음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은 섣달 그믐날이 되면 묵은 해는 끝나고 새해가 온다 하면서, 그런 축하로써 그 정을 표합니다. 선사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또 그런 일로 이 세대의 조류를 깨우치려고 그런 진실한 말을 하신 것입니까.

 노선사께서 모를 리 있겠습니까. 밝고 신령스런 자기 마음은 위엄있고 의젓하며 솔직하고 산뜻하여 잡을 데가 없는데 거기에 어찌 고금의 차이가 있고 낡은 것과 새 것의 구별이 있겠으며, 본래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견해가 없는데 허망한 생사에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옛사람은 그것을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 불렀으나 그것도 맞지 않으니 그렇다면 무엇이라 불러야 하겠습니까? 물을 마시는 사람이 차고 따뜻함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거늘 한번 웃어 보십시오.

 조주스님은 '없다'라는 말로 천하 납승들의 눈을 열어 주었는데 개천당에는 지금 몇 사람의 납자가 있으며, 그 눈이 어떤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 중에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이가 있으면 나는 그를 위하여 다음의 게송을 읊습니다.

 

만 가지 일 모두 버리고
조주의 관문을 뚫어야 하리
아무 것도 모르는 곳까지 참구해 가면
그것은 그대로 드러나리라.

放下萬事端   須度趙州關
參到百不會   便是露團團

 

그대로 이렇게만 해나가면
잠깐 사이에 의심덩이 부수리니
납승의 집안일이
이렇게 한가하고 편안하리.

直截如斯去  須曳破疑團
衲僧家中事  如是乃安閑

 

섣달 그믐날
깨끗한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어울려 축하하네만
어찌 스스로 즐거워함만 하리오.

月三十日  亦可爲情飱
對人相慰賀  何似自怡看

 

맨발로 얼음이나 눈을 밟아 보아야
비로소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아나니
스님도 역시 미리 준비하였고
나도 또한 그 동안 도와 주었소.

赤足踏氷雪  方知徹骨寒
師豈不預備  余亦助其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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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司徒) : 예교(禮敎)로 백성 교화하는 일을 맡은 관직

 

 

14. 문선인(文禪人)에게 주는 글

 

 그대는 이미 잘못인 줄 알고 명리(名利)를 버렸으니 이 생에서 불조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 만일 오늘 조금하고 내일 조금하면 언제 무명의 뿌리를 완전히 끊겠는가. 그대는 이제 대장부의 뜻을 세웠으니 때때로 다시 취모리검(吹毛利劍)을 뽑아 들어야 한다. 언제나 그렇게 공부해 가면, 어떤 악마와 외도가 그 이치를 어지럽히겠는가. 바로 길이 막힌 데 이르러 철벽에 부딪치면, 마주하는 생각과 허망한 생각이 아주 고요해질 것이다. 그 공부는 물을 뚫는 밝은 달빛 같아서, 자나깨나 한결같은[寤寐一如] 경지에 점차 이르면 번뇌는 쉬고 빛은 나려 할 것이다. 거기서는 슬퍼하거나 기뻐하지도 말고, 또한 깨달았다는 마음도 내지 말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는 마음을 내면 공부한 힘을 잃는다. 그저 또록또록하게 화두를 들되, 그것의 형상이 어떠한가 되풀이해 관찰하면 어느 새 불조의 관문을 넘어 뜨리고 한바탕 웃을 것이다.

 그런 뒤에 진짜 종사를 찾아뵙고 고삐[巴鼻]를 결택하면 같은 가지[條]에 태어날 것이다.

 

 

15. 소선인(紹禪人)에게 주는 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 몸과 입과 뜻을 깨끗이 해야 한다. 몸의 세 가지와 입의 네 가지와 뜻의 세 가지 업을 하나도 짓지 말고, 깨끗한 계율을 지니면서 생각생각에 조주스님의 무자화두[無子話]를 들어라. 언제나 그 '없다'에 어둡지 말고, 다니거나 섰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대소변을 볼 때나 옷 입고 밥 먹을 때나 항상 '없다'는 화두를 들되,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닭이 알을 품듯 해야 한다. 조금도 어둡지 않고 그저 '없다'는 화두만 들어서 이렇듯 그 화두가 끊길 틈이 없게 해야 한다.

 무엇때문에 '없다' 하였는가 하고 의심을 일으키되, 그 의심이 깨뜨려지지 않을 때에는 마음 속이 매우 답답할 것이다. 바로 이럴 때에도 그저 화두만 들어라. 화두가 계속되면 바른 생각이 이루어질 것이니, 참구하고 또 참구하면서 화두를 들어야 한다. 의심과 화두가 한 덩이가 되어 어묵동정에 항상 화두를 들면 점점 자나깨나 한결같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때에는 화두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생각이 없고 마음이 끊어진 것에까지 의심이 이르게 되면, 금까마귀[해]가 한밤중에 하늘에 날 것이다. 이때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말고 진짜 종사를 찾아 의심을 해결해야 한다.

 

 

16. 가선인(可禪人)에게 주는 글

 

 그대는 반드시 장부의 뜻을 세워 이 생에서 부처님의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 이제 바른 법이 끊어지려 하니, 빨리 등불을 이어 미혹의 나루를 건너야 한다. 천하의 삿된 그물을 모두 찢어버리고, 부디 눈 밝은 사람을 찾아보아라. 눈 속에는 금가루를 넣지 말고, 마음 밭에 번뇌의 뿌리를 다 뽑아서 괴로움의 바다에 항상 반야의 배를 띄우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부가 날로 새로워질 것이다. 장부의 공부는 다만 이럴 뿐이나 이 도리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17. 상선인(祥禪人)에게 주는 글

 

 그대가 내게서 머리를 깎을 떄 양친은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의 사랑과 은혜는 산처럼 중하니, 그대 놓아 보낼 때에 그 심정이 어떠했겠나. 그대는 그러한 부모의 은혜 알았거든 부지런히 정진하여 닦되 불난 것처럼 다급히 해야 한다. 그대가 명리를 구해 도를 소홀히 하면 그것은 무간지옥의 업을 짓는 것이다.

 인생은 그 누가 영원히 살 것인가. 가여워라, 뜬 목숨이 호흡사이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 본사 세존께서는 왕의 지위를 버리고 왕궁을 떠났었다. 산에 들어가 6년 동안 고행할 때는, 거미는 눈썹에 거미줄 쳤고, 새는 어깨에 둥지를 틀었다. 갈대 싹이 무릎을 뚫었으나 조용했나니, 털끝만큼인들 명리에 엎어졌으랴. 그대 지금 스승께 의지해 그런 행을 배우면 양친과 9족이 천상에 날 것이나, 스승의 교훈을 어겨 머리털 없는 속인이 되면 스스로 스승과 부모를 안고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18. 안산군 묘당부인(安山郡 妙幢夫人)에게 주는 글

 

 참선하려면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하고, 도를 배우려면 마음 길이 끊긴 데까지 가야 합니다. 마음 길이 끊어질 때 바탕이 그대로 나타나니, 물 마시는 사람만이 차고 따뜻함을 스스로 압니다. 그 경지에 이이르거든 아무에게나 묻지 말고, 진짜 종사를 찾아 기봉을 다 털어내 보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