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음명(가음명)
1. 태고암가(太古庵歌)
내가 사는 이 암자 나도 몰라라
깊고 은밀하나 옹색하지 않구나
천지를 모두 가두어 앞뒤가 없이
동서남북 어디에도 머물지 않네
구슬 누각, 옥 전각도 비길 바 아니고
소실(小室 : 소림사)의 풍모를 본받지도 않았는데
8만 4천의 문을 부수니
저 쪽 구름 밖에 청산이 푸르네
산 위의 흰 구름은 희고 또 희며
산 속의 흐르는 샘은 흐르고 또 흐르네
흰 구름의 형용을 누가 볼 줄 아는가
개이고 비 오며, 때로 번개치듯 하는구나
이 샘물 소리를 누가 들을 줄 아는가
천 구비 만 구비를 돌고 돌아 쉬지 않고 흐르네
생각이 일기 전이라 해도 이미 그르쳤거니
게다가 입까지 연다면 어지러우리
봄비 가을 서리에 몇 해를 지났던고
부질없는 일이었음을 오늘에야 알겠네
맛이 있거나 없거나 음식은 음식이라
누구나 마음대로 먹도록 놔두네
운문(雲門)의 호떡,* 조주(趙州)의 차*라 해도
이 암자의 아무 맛 없는 음식만 하랴
본래부터 이러한 옛 가풍을
누가 감히 그대에게 대단하다 말할건가
한 털끝 위의 태고암은
넓다 하려니 넓지 않고 좁다 하려니 좁지 않네
겹겹 세계들이 그 안에 들어 있고
뛰어난 기틀의 길이 하늘까지 뚫렸는데
삼세의 부처님도 전혀 알지 못하고
역대의 조사들도 뛰쳐나오지 못하네
어리석고 말 더듬는 주인공은
법도 없이 거꾸로 행하니
청주(靑州)의 헤진 베장삼 입고
등넝쿨 그늘 속에서 절벽에 기대 있네
눈앞에는 법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아침 저녁 부질없이 푸른 산색을 마주하며
우뚝 앉아 일 없이 이 노래 부르나니
서쪽에서 온 그 가락 더욱 분명하여라
온 세계에 그 누가 이 노래에 화답하리
영산(靈山)과 소실(小室)에서는 부질없이 손뼉만 치네
누가 태고 적의 줄 없는 거문고를 가져와서
지금의 구멍 없는 피리에 화답하리
태고암 속 태고 적 일을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지금 이렇게 밝고도 분명한데
백천의 삼매가 그 가운데 있어
만물을 이롭게 하고 인연에 응하면서 항상 고요하네
이 암자는 이 노승만 사는 것이 아니라
티끌 수 모래 수 불조들이 풍모와 격식을 같이하네
결정코 말하노니, 그대는 의심치 말라
지혜로도 알기 어렵고 지식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네
빛을 돌이켜 비추어 보아도 더더욱 아득하고
당장 그대로 알았다 해도 자취를 남기며
그 까닭을 물어도 더 크게 어긋나니
움직이지 않아 여여함은 굳은 돌과 같으리
모든 것 놓아버리고 망상을 피우지 않으면
그것이 여래의 크고 원만한 깨달음일세
오랜 겁 중에 그 어느 때, 이 문을 나왔던고
잠시 지금의 이 길에 떨어져 머물고 있네
이 암자는 본래 태고라는 이름이 아닌데
오늘이 있으므로 태고라 하네
하나 속의 모두[一切]이며 많음[多] 속의 하나이나
하나라 해도 맞지 않되 항상 분명하여라
모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여
흐름따라 변하는 곳 모두가 그윽하니
그대 만일 나에게 산중 경계 물으면
솔바람 시원하고 달은 시냇물에 가득 찼다 하리라
도도 닦지 않고 참선도 하지 않고
침수향(沈水香)은 다 타서 향로에 연기 없네
그저 자유롭게 이렇게 지나거니
무엇하러 구차스레 그러하기를 구하랴
뼛속에 사무치고 사무친 청빈함이여
살아갈 계책은 원래 위음왕불 전에 있었네
한가하면 태고가*를 소리 높이 부르며
무쇠소를 타고서 인간과 천상을 노니네
아이들 눈에는 모두가 광대놀이라
끌고 가지 못하고 부질없이 눈여겨보네
이 암자의 누추함은 그저 이러하여
거듭 말할 필요가 없는 줄로 알겠거니
춤을 그치고 삼대(三臺)로 돌아간 뒤에는
푸른 산은 여전히 샘과 수풀 마주하네
고려 남경 중흥 만수선사(南京中興萬壽禪寺) 장로의 휘(諱)는 보우(普愚)이며 호는 태고(太古)이다. 그는 일찍이 이 큰 일에 뜻을 세우고 고생해서 공부하여 안목[見處]이 뛰어났다. 마음의 움직임이 끊어지고 생각을 벗어난 그 경계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는 숨어 살기 위해 삼각산에 암자를 짓고 자기의 호를 따서 그 현판을 '태고'라고 붙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도를 즐기고 산수의 경치에 마음을 놓아 「태고가(太古歌)」 한 편을 지었다.
병술년 봄에 고국을 떠나 이곳 대도(大都)에 이르자, 먼 길의 고생도 꺼리지 않고 자취를 찾아오다가, 정해년 7월에 나의 돌 많은 산 암자에 이르러서는 고요히 서로를 잊은 듯 반달 동안 도를 이야기하였다. 그의 행동을 보면 침착하고 조용하며, 말을 들으면 분명하고 진실하였다.
이별할 때가 되어서 전에 지었던 「태고가」를 내보였는데, 나는 그것을 밝은 창 앞에서 펴 보고는 늙은 눈이 한층 밝아졌다. 그 노래를 읖어 보면 순박하고 무거우며, 그 글귀를 음미해 보면 한가하고 맑았다. 이는 참으로 공겁(空劫) 이전의 소식을 얻은 것으로서 날카롭기만 하고 의미없는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요즘의 글에 비할 것이 아니었으니 '태고'라는 이름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화답하는 일을 끊고 지내왔는데 붓이 갑자기 날뛰어 모르는 결에 종이 끝에 쓰고 아울러 노래를 짓는다.
먼저 이 암자가 있은 뒤에
비로소 세계가 있었으니
세계가 무너질 때에도
이 암자는 무너지지 않으리
암자 안의 주인이야
있고 없고 관계없이
달은 먼 허공을 비추고
바람은 온갖 소리를 내네
지정(至正)7년(1347) 정해 8월 1일, 호주(湖州) 하무산(霞霧山)에 사는 석옥노납(石屋老衲)은 76세에 쓴다.
---------------------------------------------------
* 한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무엇이 부처와 조사를 초월한 말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운문스님이 "호떡이니라" 하였다.
* 조주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곳에 와 보았는가?" 그 스님이 "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니 "차나 마셔라"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와 보았습니다" 하니 "차나 마셔라" 하였다. 원주가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항상 스님네에게 물어서, 와보았다거나 와본 적이 없다거나 간에 차나 마시고 가라 하시니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였다. 이에 조주스님은 "원주!" 하고 불렀다. 원주가 "예" 하자, 조주스님은 "차나 마셔라" 하였다.
* 다른 본에는 '태고의 아름다움'으로 되어 있다.
'선림고경총서 > 태고록太古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고록 上] 4. 가음명 4~6. (0) | 2015.07.02 |
---|---|
[태고록 上] 4. 가음명 2~3. (0) | 2015.07.02 |
[태고록 上] 3. 법어 19~22. (0) | 2015.07.02 |
[태고록 上] 3. 법어 13~18. (0) | 2015.07.02 |
[태고록 上] 3. 법어 8~12. (0) | 2015.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