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태고록太古錄

[태고록 下] 게송 4.

쪽빛마루 2015. 7. 2. 07:00

은계(隱溪)

 

구름이 자욱한 골짝에 세상 번뇌를 끊었는데
밤낮으로 흐르는 시냇물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구나
소부(巢父)* · 허유(許由)*를 배워
부질없이 물가에서 귀 씻지 말고
우뚝이 앉아 임금과 신하의 대의(大義)를 잊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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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부(巢父) : 중국 요(堯)임금 때의 고사(高士). 요임금이 천하를 맡기고자 하여도 사양하고 받지 않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물에 나가 귀를 씻었다 한다.

* 허유(許由) : 고대 중국 전설상의 인물. 요임금이 천하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거절하고 기산(箕山)에 들어가 숨었다 한다.

 

 

중리(中理)

 

때에 맞게 행동함이 그 가운데 있어
온갖 변화로 중생들을 고루 이롭게 한다
어디에서 손을 놓을까, 천성 밖이로다
그러한 큰 일로 우리 가풍을 이어라

 


반운(伴雲)

 

위에도 밑에도 잘 어울리매
펴고 말아들이며 나가고 숨음이 한가하고 맑아라
크게 펴면 끝이 없고 작기로는 틈이 없나니
청산은 첩첩하고 평야는 만 리에 뻗쳤네

 

 

화원(化元)

 

물물마다 그대로가 참이라 본래 아무 것도 없어
근원에 돌아오면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마하반야의 존귀하신 법왕(法王)이
바로 지금의 화신불(化身佛)이다

 


요암(了菴)

 

경계는 없어지고 사람도 없으며 새도 드문데
지는 꽃은 조용히 푸른 이끼에 떨어진다
노승은 일이 없어 소나무 달을 바라보다가
때로 오가는 흰 구름 보고 한 번 웃는다

 


소암(紹巖)

 

온몸이 바로 쇠로 된 심간(心肝)으로
언제나 달 곁에 찬 외로운 솔을 짝한다
돋아나는 영지(靈芝)에 봄비는 내리는데
온갖 꽃다발 속의 구름 끝에 기대 있다

 

 

현암(顯巖)

 

바로 이것, 모양과 바탕이 고요하고 편안하여
오래 잠자코 있는 그 마음을 꿰뚫어보기 어렵구나
겁화가 왕성히 일어 털끝마저 다 태워도
완연히 예와같이 흰 구름 속에 있으리

 


무려(無厲)

 

사자의 외침 같은 두려움 없애주는 말씀에
천마(天魔)도 합장하고 모두 다 항복하네
방망이 끝과 호통소리로 봄바람을 날리나니
붉은 꽃, 흰 꽃이 피어 좋은 때임을 알린다

 


운석(雲石)

 

오음(五陰)의 뜬 구름 사이에
꼼짝 않고 바보인 듯 고요하고 편안하네
꽃과 달의 좋은 시절 몇 번이나 지났던가
마음이 죽은 지 오래이거니 무심히 보네

 

 

석암(石菴)

 

천연으로 만들어져 저절로 단단하거니
비바람 겪는 것을 두려워하랴
오고 가는 흰 구름은 몇 날인 줄 알겠지만
암자의 주인은 지금까지 모른다네

 


하설(何說)

 

모든 법은 이름과 모습이 끊겼는데
물소리와 산빛은 가장 가까우니
가장 가깝다는 이것은 무엇인가
스스로 기뻐할 뿐, 내 무슨 말을 하랴

 


소봉(小峯)

 

수미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어라
활활 타는 겁화도 태우지 못하나니
옛처럼 푸르게 흰 구름 속에 있네

 

 

사도(斯道)

 

지난날 영산회상에서 직접 부촉하신 것
오늘도 여전히 띠풀집에서 마주하네
만일 마음을 가지고 헤아리려 한다면
믿음만 더욱 고되게 할 뿐이리
 

 

과운(過雲)

 

평생의 행동이 아주 자유롭나니
구함이 없으면 어디서나 편안하다
그 행이 천하에 가득해도 자취가 없이
오늘도 예처럼 푸른 산에 누워 있다

 

 

즉공(卽空)

 

허(虛)이면서 신령하고 공(空)이면서 묘하니
지각 없는 밝은 깨달음 도리어 환하도다
비록 모든 법에 상대를 끊었으나
상황에 따라 한량없는 삼매 바다를 나타낸다

 

 

단암(斷庵)

 

청산에 길이 막혀 세상 인연 끊었더니
부처도 조사도 문 앞에 오지 않네
꽃을 문 온갓 새도 오가지 않고
임금을 축수하는 향불만 타오르네

 

 

무외(無畏)

 

겁화(劫火)로도 태우지 못하고
큰 바람[毘藍風]*으로도 움직이기 어려워라
우뚝이 앉아 일이 없어 푸른 산을 마주하니
사해(四海)에 높은 눈, 천마도 예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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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람풍(毘藍風) : 매우 빨라 지나는 곳마다 모두 파괴되고 흩어지게 되는 폭풍

 


은계(隱溪)

 

영천(潁川)* 물에 귀를 씻지 말고
수양산(首陽山) 고사리를 먹지 말아라
세상의 시비에 전연 관계하지 않고
날마다 맑은 물로 밝은 달을 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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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潁川) : 소부(巢父) · 허유(許由)가 귀를 씻었다는 강.

 

 

석암(石菴)

 

큰 바람[[毘藍風]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겁화가 일어나도 더욱 든든하나니
무위(無爲)의 참사람이 무주(無住)에 머무르매
흰 구름만 부질없이 그 문 앞을 찾는다

 

 

은봉(隱峯)

 

백억의 수미산이 그 안에 있나니
둘러싼 흰 구름은 몇 천 겹인가
저녁 별 아득한 그 어느 밖에
우뚝이 높이 서서 옛 바람을 날리는가

 


하주(何住)

 

두 쪽에 모두 머무르지 않거니
중도인들 어찌 편안해 하랴
물마다 산마다 자유로이 노닐면서
물결 위의 한가한 흰 갈매기를 웃는다

 

 

남곡(南谷)

 

아이가 찾아왔던 지 천 년 뒤
적막하고 텅 비어 맑기만 한데
늙은 중은 일이 없어 구름 속에 누웠나니
한낮의 푸른 산만이 암자를 마주하네

 


무지(無智)

 

항상 혼자 앉으면 멍청한 이 같더니
찬 바위 마른 나무가 청춘을 맞이하듯 하네
홍진(紅塵)의 길에서 치달리기를 그만두고
한결같이 구름산에 이 몸을 숨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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