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착어(着語)*
스님께서 "산 밑에 한 조각 쓸데없는 밭이다" 하신 옛 분의 말씀을 들려 주고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물건이 주인을 보고 눈을 번쩍 뜨고, 차수(叉手)하고 간절히 조옹(祖翁)에게 묻는구나."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기 집의 본래 계약서는 어디다 두고서 몇 번이나 팔았다가 도로 사는가."
또 말씀하시기를, "경쇠소리 끊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나니, 가여워라, 송죽(松竹)이 맑은 바람을 끌어오도다" 하고는 또 "이익은 군자(君子)를 움직인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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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어(着語) : 옛 글귀에 대해서 붙이는 짤막한 평.
23. 결제에 상당하여 설법하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자리를 걷어가지고 그냥 해산한다 해도 그것은 일 없는 데서 일을 만들고, 바람 없는 데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는 일정한 것이 없고 일에는 한결같음이 없으니,이 산승의 잔소리를 들으라.
담담하여 본래부터 변하는 일이 없고, 확 트여 스스로 신령히 통하며, 묘함을 다해 공(功)을 잊은 공(空)한 곳에서, 적조(寂照)의가운데로 돌아가는 이 하나는 말 있기 전에 완전히 드러나, 하늘과 땅을 덮고 소리와 빛깔을 덮고 있었다. 서천의 28조사도 여기서 활동을 잊어버렸고 중국의 여섯 조사도 여기서 말을 잃어버렸다. 몹시 어수선한 곳에서는 환히 밝고, 환히 밝은 곳에서는 몹시 어수선하니 왕의 보검과 같고 또 취모검(吹毛劍)에 비길 만하여 송장이 만 리에 질펀하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땅이 산을 만들고 있으나 산의 높음을 모르는 것과 같고, 돌이 옥을 간직했으나 옥의 티없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큰 코끼리[香象]가 강을 건널 때, 철저히 물결을 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3현 · 3요 · 4료간 · 4빈주로서 완전히 죽이고 완전히 살리며, 완전히 밝게 하고 완전히 어둡게 하며, 한꺼번에 놓고 한꺼번에 거두며,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으면서 하며, 진실이면서 거짓을 덮지 않고 굽으면서 곧음을 감추지 않소."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니 어디로 가나 티끌이 아니다."
주장자를 내던지고,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라 한다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범이 걸터앉고 용이 서린 형세요, 산의 얼굴에 구름의 그림자로다. 방(龐)거사가 딸 영조(靈照)에게,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라 하였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을 때, 영조는'이 늙은이가 머리는 희고 이는 누르면서 이따위 견해를 가졌구나' 하였다. 다시 거사가 '너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니 영조는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입니다' 하였다.
거사는 말은 지극하나 뜻이 지극하지 못하고, 영조는 뜻은 지극하나 말이 지극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말과 뜻이 지극하더라도 나옹의 문하에서는 하나의 무덤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말해 보라. 그 허물은 어느 쪽에 있는가."
한참 있다가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오.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4. 해제에 상당하여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主句)인가, 빈구(賓句)인가, 파주구(把住句)인가, 방행구(放行句)인가. 대중스님네는 가려낼 수 있겠는가. 가려낼수 있으면 해산하고 가려낼 수 없으면 내 말을 들어라.
맨 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機]은 3세의 부처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없는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어떤 부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제해야 할 어떤 중생도 없다. 그런데 무슨 장기 · 단기를 말하며 무슨 결제 · 해제를 말하는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두 쪽을 다 끊고 중간에도 있지 않네
빈 손으로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타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니
다리는 흐르는데 물은 흐르지 않네.
閒斷兩頭不居中 空手把鋤頭
步行騎水牛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할을 한 번 한 뒤에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5. 시중(示衆)*
땅은 땅, 하늘은 하늘
추운 겨울 더운 여름을 누가 와서 전했나
여기서 누군가 이 분명한 것을 알아낸다면
달마는 동쪽에 오지 않고 이조는 서쪽에 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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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산 월정사판 「나옹집」에는 실려 있지 않으나 각뢰(覺雷)가 집록한 「나옹화상 어록」(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있는 것을 여기에 싣는다.【편집자 주】
26. 휴휴암(休休庵) 주인의 좌선문(坐禪文)*
휴휴암은 나옹화상이 강남(江南)에 가서 행각할 때 여름결제를 한 철 보낸 곳이다.
좌선하는 이는 지극한 선(善)에 도달하여 저절로 또렷또렷해야 한다. 생각들을 완전히 끊어버리되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며, 욕심 속에 있으나 욕심이 없고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을 떠난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에서는 함부로 들어오지 않고 안에서 함부로 나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집착없이 항상한 빛이 나타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으로는 흔들려도 움직이지 않고 안으로는 교요하여 시끄럽지 않음을 좌(坐)라 하고 빛을 돌이켜 되비추고 법의 근원을 철저히 깨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좋고 나쁜 경계에 뇌란하지 않고 빛과 소리에 끄달리지 않음을 좌(坐)라 하고, 일월보다 밝게 어둠을 밝히고 천지보다 큰 힘으로 중생을 교화함을 선(禪)이라 한다. 차별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정(定)에 드는 것을 좌(坐)라 하고,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지(差別智)를 가짐을 선(禪)이라 한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불꽃같이 작용하나 본체는 여여하고 종횡으로 오묘하나 일마다 거리낌 없음을 좌선(坐禪)이라 한다. 간략히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상세히 말하자면 글로써는 다하지 못한다.
나가대정(那伽大定 : 부처님의 선정)은 동정(動靜)이 없고 진여의 묘한 바탕은 생멸이 없어서, 바라보지만 볼 수 없고 귀기울이지만 들을 수 없으며 텅 비었지만 빈 것이 아니며 있으면서도 있는 것이 아니다. 크기로는 바깥 없을 정도로 큰 것을 감싸고 작기로는 안이 없을 정도로 작은 데에도 들어가며, 신통과 지혜는 그 광명이 무량하고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무궁무진하다. 뜻 있는 사람은 잘 참구하되 정신을 바짝 차려 확철대오하겠다는 마음으로 입문하여 와! 하는 한마디가 터진 뒤에는 수많은 신령함이 모두 본래 구족하리라. 이 어찌 마군이와 외도들이 스승 제자 되어 전수하는 것과 같겠으며, 유소득심으로 궁극의 경계를 삼는 것과 같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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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산 월정사판 「나옹집」에는 실려 있지 않으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하편에 있는 것을 여기에 싣는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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