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5. 한마디 할(喝)로 화엄5교를 설명하다 / 만암 성(蹣庵成)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03

5. 한마디 할(喝)로 화엄5교를 설명하다 / 만암 성(蹣庵成)선사

 

 만암 성(蹣庵 成 : 임제종) 선사의 속성은 유(劉)씨이며 의춘(宜春) 사람이다. 유생의 의관을 벗어 버리고 앙산사(仰山寺)에서 승복을 입었으며, 보유사(寶融寺)의 도평(道평)선사를 스승으로 출세간법을 배웠다.

 선화(宣和 : 1119) 초 동경(東京) 정인사(淨因寺)에 주지로 있을 때 태위(太尉) 진양필(陳良弼)대법회를 열자 모든 선사와 강사들이 모여들었다. 이때 현수종(賢首宗)에서 추앙받던 선(善)법사라는 이가 여러 선사에게 물었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소승에서 원돈(圓頓)교까지 공(空)과 유(有)를 쓸어 버리고 진상(眞常)을 깨친 뒤 모든 덕을 장엄해야 비로소 부처라고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종에서는 할(喝) 하나에 범부를 성인으로 바꾼다 하니 여러 경론의 설과 위배되는 듯합니다. 이제 이 할(喝) 한마디가 5교(五敎)에 들어간다면 그것을 바른 말이라 할 수 있지만 5교에 들어가지 못하다면 틀린 말이 될 것입니다."

 이때 그 좌석에 있던 여러 선사 중 법진 일(法眞守一 : 운문종)선사가 자수 회심(慈受懷深 : 운종)선사에게 눈짓하자 심선사는 또 다시 팔꿈치로 만암선사를 쿡 찔러 대답하게 하였다. 만암 선사쩔 수 없이 선법사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법사의 질문을 듣자하니 여러 큰스님에게까지 노고를 끼칠 것없이 정인사의 어린 장로인 나로서도 법사의 의혹을 풀어 줄 수 있겠소. 5교(五敎)라는 것에서, 법에 어두운 소승교[愚法小乘敎]* 같은 것은 유(有) 도리이고, 대승시교(大乘始敎) 같은 것은 공(空) 도리입니다. 대승종교(大乘終敎)는 유도 공도 아닌 도리이며, 이른바 대승돈교(大乘頓敎)는 유이면서 공인 도리입니다. 이른바 일승원교(一乘圓敎)란 '공'이되 '유'가 아니며 '유'이되 '공'이 아닌 도리입니다. 우리 선문의 한마할은 5교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세간의 제자백가, 그리고 일체 기예(技藝)까지도 모두 포함할 는 것입니다."
 이어 악! 하고 할을 한번 하고는 들었느냐고 물었다. 법사가 들었다고 하자 성선사가 말하였다.
 "그대가 들었다고 한다면 이 한마디 할은 유(有)가 되니, 이것으로 소승교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또 다시 선법사를 불러 말하였다.
 "지금도 할 소리가 들립니까?"
 "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들리지 않는다면 조금 전의 한마디 할 소리는 무(無)가 되니, 이로써 대승시교에 들어갈 있습니다. 내 처음 할을 한마디 했을 때 그대가 그것을 유(有)라 하였고, 조금 지나 소리가 사라지자 다시 무(無)라 하였습니다. 없다고 하지만 애초에는 사실상 있었으며,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사실상 없어졌습니다. 결국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니 이것으로 대승종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할을 했을 때 '있다[有]'고 말한 것은 그저 '유'가 아니라 '무'로 인한 '유'이며, 할 소리가 사라졌을 때 '없다[無]'고 한것은 그냥 '무'가 아니라 '유'로 인한 '무'입니다. 이것이 곧 '유'이자 '무'이니 이로써 돈교(頓敎)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의 이 할은 할로서의 작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유 · 무로는 미치지 못하고, 생각과 이해를 모두 잊은 것입니다. '유'라고 할 때도 실오라기 하나 설 수 없고 '무'라고 할 때도 허공에 가득하니, 이 하나의 할에 백천만억의 할이 들어가고 백천만억의 할이 하나의 할에 들갑니다. 이것으로 원교(圓敎)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선법사는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였다. 스님은 또다시 선법사를 불러 말하였다.
 "어묵동정 하나하나와 옛부터 오늘날까지의 시방 허공과 삼라만상, 육취사생과 삼세제불, 일체현, 그리고 팔만사천의 법문과 백천삼매와 무량묘의에 이르기까지 그 이치와 기연을 깨달아 천지만물과 한 몸인 것을 '법신(法身)이라 합니다. 또한 삼계유심(三界唯心)과 만법유식(萬法唯識)을 깨달아 사시팔절(四時八節)의 음양과 일치됨을 '법성(法性)'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화엄경도 '법성이란 모든 곳에 두루하여 유상(有相)과 무상(無相), 소리 하나 물건 하나까지도 모두 한 티끌 속에 있으며, 네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사(事)와 이(理)는 끝이 없어 남김없이 두루하니 어우러졌으나 뒤섞이지 않고 섞여있으나 하나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도 '할' 한마디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건화문(建化門)의 뜰에서 기연을 따라 세운 방편이어서 잠시 쉬어가는 곳일 뿐, 보물이 있는 것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조사의 문하에서는 마음에 마음을 전하고 법으로 법을 인가할 뿐 문자를 세우지 않고 견성 성불하며 모든 성인도 전하지 못하는 향상일로(向上一路)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것입니다."

 선법사가 다시 물었다.
 "향하일로(向下一路)란 무엇입니까?"
 "그대는 우선 향하(向下)부터 알아차리시오."
 "보물이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대가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오."
 "선사께서는 자비를 베푸소서."
 "설령, 저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된다 해도 그대에게 이 소식을 통해줄 수 없을 것이오."
 이에 선법사는 입을 꼭 다문 채 허탈한 모습으로 핼쓱해졌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에 물러가고야 말았다.

 아! 성선사는 풍부한 학문과 밝은 도안으로 어디서나 근원을 보아 많은 대중 앞에서 상황에 따라 날카로움을 꺾어버렸으니 설사 종문을 지켜준 훌륭한 스님이 계셨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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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법소승(愚法小乘) : 소승교에서는 아(我)가 공(空)임을 통달했으나 법(法)이 공임을 알지 못한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