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가부좌한 채 입적한 비구니 / 공실도인(空室道人)
공실도인(空室道人)은 용도각(龍圖閣) 범순(范珣)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워 고요히 참선하는 것을 즐겼다. 예장(豫章) 분령(分寧) 태수로 부임하는 아주버니를 따라 운암사(雲巖寺)의 사심(死心)선사를 찾아뵈었는데, 한마디 말 끝에 요체를 깨닫고 게송을 지어 사심선사를 찬양하였다.
소양의 사심선사
신령한 근원 매우 깊어
귀로는 색을 보고
눈으로 소리 듣는다.
범인은 명철하고 성인은 흔매하며
뒤로는 부귀하나 앞으로 가난하여
중생에 이익되고 만물을 제도하니
쇠를 녹여 황금을 만드는데
단청의 겉모양은
옛 것도 아니고 지금 것도 아니도다.
韶陽死心 靈源甚深
耳中見色 眼裏聞聲
凡明聖昧 後富前貧
利生濟物 點鐵成金
丹靑徒狀 非古非今
사심선사가 그에게 물었다.
"죽은 마음[死心]은 참이 아닌데 어디에다 찬양하는가. 만일 죽은 마음[死心]을 찬양한다면 죽은 마음이란 형상이 없다. 만일 허공을 찬양한다면 허공은 자취가 없다. 형상과 자취가 없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말을 할 수 있다면 친히 사심(死心)을 보리라."
이에 응대하였다.
"죽은 마음은 참이 아니요 참은 죽은 마음이 아니다. 허공이란 형상이 없고 묘유(妙有)는 형체가 없다.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면 친히 사심을 볼 수 있으리라."
이에 사심선사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영원(靈源)선사는 공실도인(空室道人)이라는 법호를 지어주었는데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총림에 알려지게 되었다. 정화(政和 : 1111~1117) 연간에는 금릉(金陵)에서 살았는데, 원오(圓悟)선사는 장산사(蔣山寺)의 주지로 있었고 불안(佛眼)선사도 그곳에 있었다. 거기서 기연이 맞아 두 분 선사께서 칭찬하였지만, 그는 마치 말을 못하는 사람같았다. 도의 운치는 매우 담담하였으나 바른 견해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는 치밀하고 엄격하였으며, 그의 게송 중에는 법계관(法界觀)을 읽고 쓴 구절이 있다.
사물과 나는 원래 둘이 아니니
삼라만상이 거울에 비친 상처럼 똑같구나
밝고 밝아 주체와 상대를 초월하고
분명하고 분명하여 진공(眞空)을 깨쳤네
한몸에 많은 법을 지님은
제석천의 법그물에 얽힌 듯 한데
겹겹이 쌓인 끝없는 뜻은
움직임과 고요함에 모두 통하구나.
物我元無二 森羅鏡像同
明明超主伴 了了徹眞空
一體含多法 交參帝網中
重重無盡意 動靜悉圓通
또한 보령사(保寧寺)에서 목욕탕을 마련하고 문 위에 글을 지어 붙였다.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을 씻는단 말인가. 티끌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오묘한 이 하나를 말해내야 모두가 목욕할 수 있으리라. 옛 신령스런 이는 등을 문지를 줄만 아는데 보살은 언제 마음 밝힌 적 있었던고. 때묻지 않은 곳[離垢地]를 깨닫고자 하면 온몸에서 흠뻑 땀을 빼야 하리라. 물은 때를 씻는다고 모두 말하지만 뭉도 티끌인 줄을 어이 알리. 설령 물과 때를 한꺼번에 없앤다 해도 여기에 이르러 또 한번 씻어야 하리라.
뒷날 고소산(姑蘇山) 서축원(西竺院)에서 삭발을 하고 비구니가 되어 유규(惟久)라는 법명을 받았으며 선화(宣和 : 1124) 6년에 가부좌한 채 열반하였다. 공실도인은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부귀에 얽매이지 않았고 미련없이 월상녀(月上女)를 뒤따라 무상보리(無上菩提)로 달려 나갔다. 또한 비구니로서 철마(鐵磨 : 潙山스님과 법을 거량했던 유철마 비구니)스님과 쌀벽을 이루었고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법력이 비범하였으니, 가을서리 같은 매서운 지조가 없고서야 이렇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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