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큰 스님을 잡아당기고 걷어차다 / 복(復)수좌
임공(臨功)의 복(復)수좌는 넓직한 이마에 깊은 눈매, 그리고 작달만한 키에 날카로운 재치를 지닌 사람이었다. 회산(淮山) 백운사(白雲寺)에 잘 다녔는데 백운 단(守端)스님은 그를 큰 그릇이라 하여 매우 중히 여겼다. 어느 날 함께 산행을 하는 길에 백운 스님이 걸어가면서 말하였다.
"자네는 어느 큰스님을 찾아 뵈었는가? 나에게 한 번 말해 보게."
"얼마전 호상에 있을 때, 복엄 아(福嚴 雅)선사 · 상봉 붕(上封 鵬)선사 · 북선 현(北禪 賢 : 운문종)선사를 잠깐이나마 친견한 적이 있습니다."
백운스님이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선지식들을 만나고 왔군. 그러면 내가 그대에게 묻겠는데, '현사스님이 고개를 나가지 않았다[玄沙不出嶺]'한* 뜻은 무엇인가?"
복수좌는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가 백운스님의 손을 덥석 잡고 한차례 잡아당겼다. 그러자 백운스님이 다시 물었다.
"영운(靈雲)스님이 복숭아 꽃을 보고 도를 깨달은 일은 어떤가?"
복수좌가 곧장 백운스님을 걷어 차며 "이런 놈이라 생각했었지..."라고 하니 백운스님은 일어서며 웃을 뿐이었다.
그 뒤로 총림에서 그를 존경하여 오조 법연(五祖法演)선사까지도 그를 아버지의 친구 대하듯 하였다. 또한 불안(佛眼)선사에게 그의 말을 몸소 듣도록 하여, 불안선사가 "불법의 큰 뜻이 무엇이냐"고 묻자, 복수좌는 "안인현(安仁縣)에서 짚신이 나온다"고 답하였다.
복수좌는 그후 고향으로 돌아가 80여 세에 입적하였다. 백운선사와의 기연을 살펴보면 그의 내면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는 시종 절개를 지켰으니 과연 불교계에 아름다움을 더해준 일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높은 자리에 앉는 것만이 영예로운 일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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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사불출령(玄沙不出嶺) : 현사스님이 설봉에 있다가 영(嶺)을 떠나 행각을 하려고 영마루까지 갔으나 발가락을 돌뿌리에 걷어채이고 설봉으로 돌아와서 다시는 영을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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