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17. 대중과 함께 생활하다 / 호국 원(護國元)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10

17. 대중과 함께 생활하다 / 호국 원(護國元)선사

 

 태주(台州 : 浙江省臨海) 호국사(護國寺)의 원(此庵景元 : 임제종 양기파)선사는 총림에서 '원포대(元布袋)'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처음 장산(蔣山) 원오(圜悟)선사를 찾아뵈었을 때였다. 한스님이 사심(死心)선사의 소참법문 읽는 소리를 듣던 중, '미혹하다면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깨달음을 얻으면 깨달음 속에 미혹과 미혹 속에 깨달음을 알아야 하며, 미혹과 깨달음을 다 잊어버리고서 미혹과 깨달음이 없
는 그곳에서 모든 법을 세워야 한다'는 구절에 스님은 의심을 품은 나머지 법당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 젖히다가 크게 깨쳤다. 그리고서도 계속 원오선사를 모셨는데, 그의 기변(機辯)이 뛰어났다. 원오선사는 촉(蜀)지방 말을 쓰는 스님이었으므로 원선사는 스스로를 '오두(聱頭) 원시자(元侍者 :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원오스님 초상화에 스스로 글을 지어 바쳤다.

 

일생동안 얘기한건 오로지 오두선
오두를 두들겨보니 철벽같은데
그물을 벗어던지고 발 밑을 잘라버리니
대지는 먹칠처럼 검기만하다.


늙어서는 더더욱 도(刀)자 조(刁)자를 가리지 않고
금강 방망이를 휘둘러 격식을 부셨구나
뒷날 원오스님의 진면목을 알고 싶거든
그대를 위해 한 번 꺼내보리라.

 

生平只說聱頭禪  撞著聱頭如鐵壁

脫却羅籠截脚跟  大地撮來墨漆黑

 

晩年轉復沒刁刀  奮金剛椎碎窠窟

他時要識圜悟面  一爲渠儂倂出

 

 원오스님은 촉나라로 돌아가고 원선사는 절강 동쪽으로 돌아가 자취를 묻고 살며 명예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괄창(括蒼) 태수 경연희(耿延禧)가 원오선사에게 도를 묻고 그의 어록을 보다가 '초상(肖像)'에 대해 쓴 글을 보고서야 원선사의 인품을 알고는 남명산(南明山)에서 법회를 열게 하였다.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 원선사를 찾다가 태주(台州) 보은사(報恩寺) 대중방에서 원선사를 만나 명을 받도록 하였다. 보은사 방장 고(古)선사는 영원(靈源)선사의 상수 제자였는데 그때 법문을 듣고 몹시 놀랐으며 그를 대단하게 여겼다. 이 일로 당시 가는 곳마다 훌륭한 스님들이 앞다투어 모여들었다. 원선사는 높은 도를 지니고서도 대중스님들과 섞여 살며 끝없이 수행을 쌓았다.그러다가 때를 만나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므로 세상에 뛰어난 인물이 된 것이다. 오늘날 겉만 귀하게 하고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자신을 내세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원선사의 몸가짐을 본다면 부끄러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