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16. 법에 대한 선택과 결단 / 소수(小秀)스님과 대수(大秀)스님

쪽빛마루 2015. 8. 21. 13:10

16. 법에 대한 선택과 결단 / 소수(小秀)스님과 대수(大秀)스님

 

 위산 소수(潙山小秀)선사는 법운 대수(法雲大秀 : 法秀)선사와 함께 천의 회(天衣義懷)선사에게 오랫동안 공부하여 '포참(飽參)'이라 불리웠다. 그 당시 둘다 명성이 높아 총림에서는 그들을 '소수' '대수'라 하였다. 두 사람은 도반이 되어 제방 스님들을 찾아 다니게 되었는데 맨 먼저 부산사(浮山寺)의 원감 원(圓鑑法遠)선사를 찾아갔다. 원선사는 그들을 붙잡아 두고자 자기가 지은 게송과 「선문구대집(禪門九帶集)」을 펴보이며, "지혜가 날카로운 상근기가 아니라면 이 책에 대하여 이야기 할수 없을 것이다"하였다. 대수스님은 마음 속으로 그의 뜻을 짐작하고 게송을 지어 답하였다.

 

하루에 두차례 빗질하는 이 그 누구인가
상투만 단단히 묶어두면 그만인 것을
좋은 풍채로 돌아가려 하는가
화장하지 않는 것이 진짜 멋이라네.

孰能一日兩梳頭  繓得髻根牢便休

大底還他肌骨好  不搽紅粉也風流

 

 당시 황벽사 적취암(積翠庵)에 남(慧南)선사가 계셨는데, 소수스님은 한 스님이 삼관어(三關語)에 대해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찾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대수스님은 "나는 의심하지 않네"라고 하여 소수스님 혼자서 남선사를 찾아갔다. 그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대수스님은 남몰래 한 스님을 보내 남선사가 하는 일을 엿보게 하였다. 그 스님은 한달동안 적취암에 머물면서 남선사가 혼자 조용히 앉아 정진하는 것을 보고 돌아와 대수스님에게 말하였다.
 "그 늙은 이는 다른 장기는 없고 그저 도 닦는 스님일 뿐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대수수님은, 그 못난 놈이 중도에 뜻을 지키지 못하고 우리 스승을 배반했다고 대수스님을 욕했다. 그길로 대수스님은 회상(淮上)지방을 돌아다니다가 백운사(白雲寺)에서 수좌가 되었는데 단(守端)선사가 그를 사면산(四面山)의 주지로 추천하였다. 소수스님은 황벽사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도를 깨쳤다. 그는 대수스님이 서현사(棲賢寺)로 옮겨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게송을 보냈다.

 

칠백 고승이 법싸움 하는 전쟁터에서
노행자(육조)의 한마디에 모두 항복하였네
황매의 길을 끊을 사람 없으니
저 멀리 구강을 건너가네.

七百高僧法戰場  廬公一偈盡歸降

無人截斷黃梅路  剛被迢迢過九江

 

 다시 삼관화(三關話)에 대해 송하였다.

 

나의 손과 부처님 손
없는 이 그 누군가
분명해서, 그대로 쓰면 될 것을
무슨 까닭에 미친듯 내달리나


나의 다리와 당나귀 다리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모두 밟아왔네
비 지나가니 이끼 푸르고
구름 걷히니 햇살이 눈부셔라


내게 태어난 인연[生緣]을 묻는다면
어디서나 의심이 없다 하리라
말은 곧고 마음엔 병이 없는데
그 누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랴.

 

我手佛手  誰人不有

分明直用  何須狂走

 

我脚驢脚  高低踏著

雨過苔靑  雲開日爍

 

問我生緣  處處不疑

語直心無病  誰論是與非

 

 소수스님은 과양 응시(戈陽應氏)자손이다. 대대로 유교 집안이었으며 환안원(環安院)은 그의 옛집이다.
 대수선사사 남의 말 때문에 적취암의 종사를 몰라보았으나 백운 단(白雲端)선사에게 귀의한 일은 그가 택한 길을 성취한 것이다. 한편 소수스님이 삼관화두에 의문을 품고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진실로 자기를 속이지 않은 일이다. 뒷날 두 분 모두 불법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그들의 선택과 결단에 무슨 시비가 있겠는가.